9월 3일 오후 회의 때문에 기륭전자 여성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농성장에 갔습니다. 한 여성 노동자가 저를 보더니 아는 체를 합니다.
"팔목 다쳤어요? 병원은 가 보셨어요?"
얼굴과 몸이 바짝 말라서인지 팔이 반팔 티에서 헐렁헐렁 흔들립니다. 67일 동안 단식을 하다가 폐에 물이 찼다는 의사 소견 때문에 중단한 조합원입니다. 기륭전자 회사 앞 경비실 옥상에 천막 하나 치고 그 폭염과 폭우의 시간을 고스란히 견디다가 김소연 분회장의 권유로 단식을 중단할 때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었던 조합원입니다. 그런 그가 나를 걱정합니다. 나의 팔이 저린 것은 컴퓨터 자판 작업만 쉬면 나을 수 있는 것인데, 제 몸부터 챙기지….
기륭에 갈 때마다 그 천막에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김소연 분회장이 병원에 갔다가 다시 돌아와 계속 곡기를 끊고 있는데, 그의 손이라도 잡아주고 위로도 하지 못하겠습니다. 너무도 깡마른 그의 모습, 피골이 상접하고, 반쪽이 되었다는 말을 실감할 수밖에 없고, 그런 그를 보고는 차마 목울대로 말을 낼 수가 없어서, 너무도 안타까워서 차마 들여다보지도 못하겠습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그렇게 목숨을 걸어야 되는 일인지, 옥상 천막 옆에는 시커먼 관이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죽을 각오로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지,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면서 힘이 되어 주지 못하는 인권운동의 무기력함으로 인해서 또 말을 못합니다.
기륭에 가면, 그렇게 말문이 막히고는 합니다. 조합원들은 복식을 하면서도(10명이 시작했고, 지금은 김소연 분회장만 링게를 맞으면서도 이어가고 있다) 해맑게 반겨주는데, 그리고 이제는 농도 섞어가면서 말도 건넬 수 있을 만큼 친분도 쌓았는데 말이지요.
조합원들은 말합니다. 노예처럼 살려면 일할 데는 많다고 말이지요. 최저임금보다 10원 더 많은 임금을 받던 노동자, 너무도 두들겨 맞아 119 구급차가 하루에도 몇 번씩 와서는 동료들을 싣고 가는 모습을 본 사람들, 그들의 가슴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들이 차곡차곡 쌓여 이겠지요.
이럴 때마다 후회를 하고는 합니다. 좀 더 거리를 두고 멀찍이서 지켜보는 것인데 하고 말이지요. 처절한 싸움을 할 수록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모습을 보는 게 두렵습니다. 그들은 나도 존엄한 인간이라면서 훼손된 인간적 존엄성을 찾기 위해 싸운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그날 기륭에 가기 전에는 서울역에 갔습니다. 45미터의 높이 철탑에 올라간 KTX 새마을호 승무원들의 투쟁을 지지하기 위해서지요. 집회는 끝났는데, 저 아득한 높이에서 손을 흔드는 그들을 보면서, 그리고 열차가 지날 때마다 흔들림이 감지되는 철탑의 싸늘함을 느끼면서 참담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런 그들의 투쟁보다 더 참담한 것은 그날 철도노조를 방문하여 빨리 교섭에 나서줄 것을 촉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국 노조위원장과의 면담은 무산되었습니다. 기륭 때도 금속노조위원장을 만나기 위해서, 민주노총 위원장을 만나기 위해서 찾아갔다가 헛방 치고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절차를 문제삼아서 만나주지 않는 그들을 보면서 화도 나났습니다. 왜 마지막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을 외면하는지, 이유는 왜 그리 많은지, 무엇이 꼬였는지, 일단은 사람부터 살려야 하는데 왜 그리 철옹성인지 모르겠습니다. 운동이 참 어렵게 되어가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것이죠.
그런데 기륭의 노동자가 목숨을 담보로 투쟁을 하니까 먼저 네티즌들이 움직이고, 시민들이 움직였습니다. 매일 저녁 기륭 앞에서 촛불이 켜지고 있습니다. 지역에서도 자발적으로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오는 9월 9일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1차 행동이 오후 7시에 서울역에서 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이 모두 결합하는 1만인 선언대회가 23일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나마 희망입니다. 그렇지만 기륭이나 KTX, 그리고 이랜드 노조의 교섭 상황은 교착 상태입니다. 인간의 존엄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측의 기세는 완강합니다. 법적인 책임이 없다는 말도 빠지지 않고 합니다. 그런 그들이 기륭의 저 조그만 깡마른 노동자가 같이 존엄함을 지닌 인간임을 인정하도록 사회적으로 압박하자는 것이지요.
이 시대 비정규직은 너무도 많고, 그들의 투쟁은 지난합니다. 물론 우리 사회에 아직 자신의 존재조차 드러내기를 두려워하는 소수자들은 시민으로 인정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들도 곳곳에서 투쟁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함을 사회적으로 승인받기 위해서겠지요.
빨리 이런 투쟁들이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빨리 그들의 천막이 거두어지면 좋겠습니다. 투쟁하지 않아도 인간이 인간을 짓밟는 세상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세상을 꿈꾸는 것이 볼온한가요. 어쩔 수 없지요. 그런 세상이 올 때까지 불온한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저의 운명인가 봅니다.
활동가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