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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인권이 ‘메아리’였으면 좋겠다

인권이 ‘메아리’였으면 좋겠다

효래(자원활동가)

누구나 산 정상에서 서면 당연하다는 듯이 ‘야호’ 라고 외친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자발적인 소리다. 그러면 그 소리는 산과 산을 넘고 여기 저기 부딪혀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돌아온 그것을 우리는 메아리라 부른다. 메아리는 울림이 있다. 단발적으로 외친 소리가 공기를 타고 바람에 실려 소리의 꼬리를 품는다. 나를 떠난 소리는 더 큰 울림이 되어 돌아온다.

나에게 인권이 그랬다. 나는 당연하게 인권을 말했다. ‘야호’라는 뜻도 모르고 산에 올라 무작정 외치는 사람들처럼. 나 역시 아무렇지 않게 인권을 ‘인권’이라 내뱉었다. 그러던 중 나는 궁금했다. 무엇이 인권인지. 누군가의 인권이 더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는지. 또 그래야만 하는지.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그 권리를 지켜나갈 수 있는지.

그렇게 내뱉은 내 소리는 가장 처음 친구에게 부딪혔다. 친구는 재일교포 3세였다. 항상 밝았던 그 아이는 조선인을 비하하는 욕설을 듣고 자랐고 언제나 외국인 신분증을 들고 다녀야 했으며 앞으로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없다고 했다. 아무렇게나 인권이라고 내뱉은 소리가 처음으로 실체에 부딪힌 순간이었다. 난 친구가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간에 남들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자를 꿈꾸면서 난 무작정 그 소리를 외치는 게 점점 두려웠다. 사회의 일에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노동자, 예술가, 장애인 등 서로 다른 이름으로 인권을 지켜달라고 온 몸으로 말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나름대로 인권을 위해 그들의 편에 써서 기사도 쓰고 자원봉사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할수록 더 큰 사회 현실의 벽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우리의 인권에 대한 외침이 그냥 허공 속으로 사라져버릴까 걱정되고 두려웠다.

그러나 울림을 가진 소리는 큰 힘이 있다. 울림은 아무렇게 흐트러지는 소리가 아니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마음에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나는 인권이 그런 소리였으면 좋겠다. 비록 인권을 말하는 일이 현실에 부딪혀 금방 사그라지더라도 인권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이를 지키고자 할 때 이 소리는 감동이 될 것이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외친 소리는 반드시 되돌아온다. 바로 그 때, 난 소망한다. 인권이 ‘메아리 같이 울림 있는 소리’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