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올 1월 1일 자로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독립한 서울인권영화제의 자원활동가 화신이라고 합니다. 이제 사랑방 속 어느 팀에도 속하지 않지만, 작년 연말부터 올해까지 '함께살자 농성촌'이나 '서울역 노숙인추모제'와 같은 사랑방 사업에도 함께 해서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이거 쓰면 올해 사랑방 엠티 끼워주겠죠? 히히.
제가 처음 활동을 시작한 건 2009년이지만 이후 개인적인 일 때문에 쉬다가 작년부터 활동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땐 활동에 대한 고민보다는 고등학교 자퇴 후 유일하게 있는그대로의 나를 봐주었던 공간으로 사랑방이 좋아 활동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 다시 활동을 시작한 작년은 고되면서도 내가 하는 활동에 대한 자긍심을 느껴간 한해였어요. 이전처럼 마냥 즐겁기보다 부담감이 컸고, 알바 후 사무실에 간 날이면 일하기 싫어서 선글라스를 쓰고 사랑방 마당을 배회하던 적도 여러 번이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 부담감의 이면에는 활동을 한 기간이나 공공연히 말해왔던 영화제에 대한 애정들이 무색해질 정도로 이 사업에 대해 잘 모른다는 부끄러움과, 또 그러한 일들에 대해 코디로서 책임감있게 활동해야한다는 조심스러움이 있었어요. 그런 멘붕의 시간 덕에 예전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이 활동의 의미에 대해, 그리고 '인권'이라는, 말로는 쉽게 하는 이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지만요.
그렇게 무사히 영화제를 마쳤고, 판매부스 담당이었던 저는 마지막으로 티셔츠 완판 후, '아아 영화제 끝났다'고 외쳤지요.
스스로에 관대한 편이지만 그래도 올해는 열심히 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제 성격은 장단이 확 나뉘는 스타일인데, 그래도 장단 모두에 해당하는 성격을 꼽으라면 '생각안하고 하기'예요. 사랑방에 첫 발을 들이밀 때도 인권운동은 무서운 운동이라 생각을 가진 채 작은오빠의 추천으로 들어왔어요. 내 생각과 다르게 사람들이 농담도 하고 잘 웃어서 의아했던 기억이 있을 정도로. 영화제를 시작한 것도 그렇고, 또 작년 연말 서울역노숙인추모제를 준비할 때도 시작은 오모 활동가의 제안에 넘어가 시작하게 되었어요. 사실 영화제는 인권영화가 찾아가는 대상이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이었기에 그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는 제게 일 자체에 대한 부담을 제외하곤 다른 게 없었어요.
하지만 '노숙인'은 2호선의 역들에서 본 게 다였고, 각종 기사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이런 내가! 노숙인의 생애사를 인터뷰하고 그것을 글로 쓰고 인터뷰의 대상도 또 추모제가 찾아가는 대상도 노숙인이 다수인 이 활동을 해야한다니! 글을 쓰고 기사를 정리하는 것은 사실 몸만 힘들었어요. 연말이니까요. 그렇지만 내가 혹시나 오만하거나 불편한 단어를 쓰진 않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나. 관심을 이제서야 가지게 되었고 겨우 며칠 전부터 그네들의 삶의 궤적을 이해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글을 써서 노숙문제에 대해 잘 아는척 관심있는척 하는 것이 위선적 행동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멘붕 속 글을 쓰고 나서도 부끄러움이 계속 밀려들었습니다.
저는 꼭 열심히 혹 열정적으로 살 필요가 있나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나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가지고선 치열해질 필요는 있다는 것을 작년 한해 배웠어요. 내가 무슨 일을 할 때, 그 원동력은 사람이기도 활동 자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그 앞에서 떳떳할 만큼 치열하게 고민했는지에서 비롯되는 것 같아요. 저 올해 대학에 입학하는데요, 작년만큼 활동하지는 못하고 공부하느라 바쁘겠지만 제가 있는 자리에서 치열하게 활동하려고요. 하하하! 감기조심하세요!
멘붕 속의 치열함
화신(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