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2007년 차별금지법 논란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정부에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고 의지를 밝혔지요. 그런데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이들이 들고 일어나 항의했습니다. 그 세력은 기업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 등이었는데 그들이 특히 문제 삼았던 것은 성적지향, 학력, 출신국가 등이었어요. 반대에 밀린 정부는 ‘출신국가, 언어,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범죄 및 보호처분 경력, 성적지향, 학력, 병력’을 차별금지 사유에서 삭제하고 차별금지법을 만들겠다고 물러섰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물러선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저 7개의 항목에 대해서는 차별을 금지하지 않아도 된다고 선언한 셈이니까요. 정부가 일부 차별금지 사유를 지움으로써 우리 눈 앞에 차별의 현실이 분명히 드러났지요. 그래서 당시 성소수자들이 먼저 나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회가 조용했지요. 누구나 차별은 나쁘다고 말하면서 정부의 차별금지법안이 보여주는 차별에 대해 거센 저항이 번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마치 삭제당한 차별금지 사유에 해당하는 사람들‘만’의 문제인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차별금지법은 그들‘만’을 위한 법인 것처럼 이해됐고요. 이런 상황에서는 그 사람들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가 나머지 사람들의 선택에 의해 결정됩니다. 동성애는 ‘문란한’ 것이라며 ‘반대’하는 세력이나, 그것은 ‘타고난’ 것이니 ‘관용’해야 한다는 주장 모두, 우리가 근본적으로 동등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차별에 대해 다르게 이야기할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정체성’들이 고루 포함될 수 있도록 인터뷰이를 섭외했습니다. 우리가 이미 익숙해져버린 차별의 서사와는 다른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수소문했습니다. 열 명의 인터뷰이들에게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어요.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한 명 한 명 인터뷰를 하고 녹취록을 함께 읽으면서, 우리가 들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차별에 대한 보고서를 낼 작정이었거든요. 그런데 보고서라는 형식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툭툭 끊어 우리가 말하고 싶은 주제를 중심으로 엮는 형식일 수밖에 없잖아요. 물론 그런 형식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이야기를 들으면서 얻게 되었던 어떤 느낌 자체를 옮겨볼 방법은 없을까 고민이 됐던 것이에요.
그때 이야기를 그냥 이야기로 전해보자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1년 동안 글쓰기를 하면서 후회할 때도 없지 않았지요. 막상 시작하고 보니 정말 어려웠거든요. 글쓴이가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자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위치에 놓였으니까요. 하지만 차마 글쓰기를 멈출 수 없었던 것은,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인터뷰이들에 보답할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차별이 특별한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임을 말하고 싶었고, 그래서 함께 싸우고 싶었거든요.
어떤 이야기들을 담았는지 여기에서 다 말씀드리면 책을 읽을 때의 설렘이 반감되겠지요? 열 명의 인터뷰이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아홉 편의 이야기로 만들었고, 각각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 드는 고민을 함께 풀어볼 활동가들의 글이 엮였습니다. 맨 뒤에는 ‘차이는 인정하고 차별은 반대한다’는 말을 다시 생각해보는 글과, 일터에서 우리가 어떻게 만나는지 되짚어보는 글을 실어 프로젝트 전체를 가로지르는 문제의식을 정리해보았습니다. 맨 앞에 실린 추천 글은 프로젝트가 시도한 이야기라는 형식의 의미를 짚어주기도 합니다.
책이 나오면 후원인 분들에게 한 부씩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그동안 인권운동사랑방의 활동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고 지지해준 후원인 분들이 있어서 이 작업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니까요. 음음, 그리고 여기저기에 입소문을 내달라는 부탁이기도 하지요. 막상 책이 나올 날이 가까워지니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 우리의 고민과 마음이 전해질까 긴장이 된답니다. 아마 우리의 역량이 부족해 충분치는 않겠지만, 어떤 기운만큼은 전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아, 이 사람, 나에게 말을 걸고 있구나, 나와 너 사이에 함께 싸워야 할 차별이 있구나, 그렇게 ‘우리’구나…….
책 기다리는 시간이 더 설레도록 추천 글을 조금 옮겨봅니다. 곧 책으로 찾아갈게요!
이·어·말·하·기. 그/녀의 삶은 이렇게 우리에게 전송되었다. (…) 모든 글에서 우리는 내 귀를 가볍게 두드리는 전언을 만나게 된다. 내·게·수·신·된. 이제 ‘나’는 그 전언이 꼭 짚어서 바로 ‘나’를 향한 것임을 인정해야 하고,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몸을 비스듬히 기울여야 한다. 언젠가 내가 보낸 전언을 향해 귀를 열 나의 이웃, 당신을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