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공단 노동자 조직화를 고민하는 이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작년에 전국의 공단들에서 함께 조사했던 임금요구안 내용을 정리해서 공단노동자들에게 나눠주는데 어떤 노동자가 선전물 내용에 다 동의한다면서, 그런데 임금을 올리는 건 사장이니까 자기가 아니라 사장에게 선전물을 나눠주고 설득해달라고 했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머리가 멍해지더군요. 우리 이야기에 공감한다면 자연스럽게 함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참 순진한 생각이었습니다. 월급을 주는 사람은 사장이니 사장을 설득해달라니…… 당황스럽지만 너무 당연한 요구 아닌가요? 자기가 이야기해서 사장이 월급을 올려줄 거면 진작 이야기했겠죠?
세월호 사고 이후에 우리 사회 곳곳의 안전과 관련된 문제들이 뉴스에 연달아 나오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노후공단 중 하나인 반월시화공단의 안전문제에 대한 뉴스도 간간히 나오고 얼마 전에는 시화공단에서 일어난 화재사고가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기도 했었죠. 사실 안전문제라는 게 사고가 터지기 전에는 다들 그러려니 하는 문제이긴 하지만, 반월시화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공단의 시설이 오래되었고, 그리 안전한 작업환경은 아니라는 생각 정도는 다들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공단 노동자들의 임금이 적다는 것, 위험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세상의 다른 누구보다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알았고, 세상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진실이었을 겁니다. 그래도 공단을 뜰 게 아니라면 일해야죠, 어쩌겠어요?
노동자들이 현실을 체념하고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잘못된 말이에요. 임금이 적어도 참고 묵묵히 일하는 게 아니라 기회만 된다면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 수 있는 곳으로 이직을 하려고 다들 노력합니다. 아직 젊다면 각종 자격증이나 학교 편입 등을 해서라도 더 좋은 직장으로 가려고 소위 자기개발을 열심히 하고 있는 거죠. 위험한 노동환경이라면 실제로 그 곳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안전하게 일하기 위해서 뭔가 방법을 강구하지 않을까요? 마스크나 장갑과 같은 안전장비 지급이 잘 되지 않는다면, 사비를 들여서라도 사서 일할 거예요. 공단 노동자들에게 다친다는 건, 단지 건강과 관련된 문제가 아닌 당장의 생계가 위험해지는 일이니까요. 노동자들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고 있고, 이미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런데 그 노력과 행동이 생존게임을 하듯, 고립된 개인으로 너무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게 문제 아닐까요? 자본은 그걸 놓치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노동자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데 이용하는 거구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내가 반월시화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월담이라는 단체 활동은 어떻게 비칠까? 이런 고민들을 하다보면 생각이 마구 뻗어나가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게 개인적인 고민이 아니라, 월담에 함께 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고민이라는 게 위안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매월 초에 배포하는 선전물을 만들고 있어서일까요? 선전물을 받는 노동자들에게서 이거 재미있다는 칭찬을 꽤 듣고 있어요. 동료 노동자에게 권하는 것도 들었어요.^^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거리에서 선전물 나눠주면서 받는 사람에게서 칭찬 받은 선전물을 배포해 본 경험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아무튼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들이 월담 선전물을 읽고서 '알고 있는 뻔한 내용'이라거나 '그래서 어쩌라고'와 같은 감정이 들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당장 뾰족한 수는 없지만, 공단의 이런 상황을 바꿔내기 위해서 각자가 열심히 사는 것 말고 함께 공단을 바꿔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걸 찾아야겠다는 마음이 들도록 월담도 더욱 분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저희가 주로 선전물을 배포하는 아파트형 공장 경비아저씨와 안산역 청소노동자들이 벌써부터 노동 상담을 해오고 있어요. 일단은 매월 선전물과 문화제로 꾸준히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들과 함께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