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인권감시단으로 밀양에 다녀왔습니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경찰과 주민이 얼굴을 붉히고 한전 직원은 주민을 피해서 도둑질 하듯이 공사를 진행하고 지역 공무원들은 주민이 아니라 정부의 입장만 대변하고 지역공동체가 무너져 주민과 주민이 반목합니다. 송전탑 건설은 작은 전쟁입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사업이 전쟁이 되어버렸습니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에 독일은 원자력발전소를 폐쇄를 선언했습니다. 현재 독일에서는 북쪽의 풍력발전소에서 남쪽으로 전기를 송전할 장래의 송전선로 건설이 이슈입니다. 길준규, 〈독일에서의 고압송전선로 수용 및 보상에 대한 절차법적 고찰〉, 《토지공법연구》 제55집, 토지공법학회, 2011 독일 국토를 남북으로 가로지르겠지만, 우리와 같이 심각한 사회 혼란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독일 시민들은 이타적이고 우리나라 시민들은 이기적이어서 일까요? 아닙니다. 독일은 입지선정부터 시작하여 지중화선로, 보상, 향후 대책까지 송전선로 건설에 관련된 모든 부분에서 피해지역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민주적 절차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형식적인 주민 참여가 아니라 실질적인 주민 참여입니다.
독일 시민들은 매일 산에 오르며 공사를 막지 않아도, 경찰·용역·한전직원들에게 모욕을 당하거나 폭행을 당하지 않아도, 길거리에서 집회를 하지 않아도, 생명을 걸고 무기한 단식을 하지 않아도,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아도 자신들의 의사를 민주적인 절차 안에서 효과적으로 반영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송전탑 분쟁의 원인은 피해지역 주민들에게 있지 않습니다. 여전히 개발독재 시절의 타성에 젖어 있어서 군사작전을 펼치듯이 공사를 진행하는 정부와 한전에게 송전탑 분쟁의 책임이 있습니다.
고압 송전선로가 설치되는 지역은 주로 지방, 특히 시골입니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고압 송전선로를 보기가 힘듭니다. 시골에서 땅을 일구며 자식을 산업역군으로 키워 우리나라가 압축적인 경제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신 분들이 송전탑 건설로 눈물을 흘리는 어르신들 입니다. 이들은 경제성장의 열매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더 챙겨주지는 못할망정 더 이상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나라 이제 먹고 살만한 나라입니다.
송전선로가 지나가면 항공방제 지역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밥농사를 못 짓게 된다는 어떤 할아버지의 탄원서를 읽었습니다. 저는 의심이 많습니다. 밤농사를 짓는 다른 지역의 상황을 확인했습니다. 약을 치지 않으면 벌레가 너무 많이 생겨서 상품성 있는 밤을 생산할 수 없다고 합니다.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에게 항공방제만 선택지인데 송전선로 150미터 이내 지역은 항공방제 제한지역입니다.
할아버지는 밤농사로 한해에 700~800만원 법니다. 수입의 전부입니다. 한전에서 보상금 154만원 나왔습니다. 단 한번만 주는 보상금입니다. 밤나무가 심어진 산은 이제 팔리지도 않습니다. 할아버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수십년간 밤나무 심으며 일궈온 산을 껴안고 그냥 죽어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도시로 와서 뒷골목에서 쓰레기를 주으며 연명해야 하는 걸까요?
밤농사 짓는 할아버지는 글을 모릅니다. 이웃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탄원서의 말미에서 할아버지는 ‘나라의 도리’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믿고 기대고 싶은 ‘나라의 도리’가 우리나라에는 없습니다.
피해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아선 안 되며 듣고 침묵해서도 안 됩니다. 지금이라도 인간을 파괴하는 송전탑 공사를 멈추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원점에서 재검토하여야 합니다. 단순히 재검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논의의 장에 참여해야만 합니다. 외국의 사례를 참고하여 제도를 정비하고 광범위한 실태 조사를 진행하여 피해 지역 주민들의 고충과 공익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더 이상 다치는 사람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활동가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