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조국 후보자는 "국민 눈높이에 부족한 점이 많지만 심기일전하여 문재인 정부의 개혁 임무 완수를 위해 어떤 노력이든 다하겠다"며 사퇴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한편 검찰은 후보자를 둘러싸고 의혹이 제기된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사학재단 웅동학원, 사모펀드 자산운용사 등 20여 곳을 전방위 압수수색 했다. 국민적 관심이 큰 공적 사안의 사실관계를 규명할 필요를 느꼈다는 검찰의 압수수색 요지에 대해 조국 후보자는 수사를 통해 모든 의혹이 밝혀지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과연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질 사실관계가 이 모든 의혹을 해소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까?
'국민정서'와 '불법여부' 사이에서
국민정서, 한국 정치권에서 이토록 요긴한 말이 또 어디 있을까. 조국 후보자 역시 '국민 정서상 괴리'를 인정하며 하루가 다르게 몸을 낮추며 '많은 혜택을 누려온 과거를 돌아보겠다'고 한다. 사회가 공유하는 일반적인 감정이라는 의미로 국민정서는 정치권이나 공직 사회에서 주로 활용된다. 차별금지법 제정과 같은 소수자들의 사회적 요구를 잠재우는데 활용되기도 하고, 권력층이 누리는 특권에 대한 대중의 불만과 분노가 높아질 때 사과의 수식어로 사용된다. 이들은 국민 정서 운운하며 몸을 낮추지만 불법이 아니라 적법한 행위임을 강조한다. 이는 오히려 이들이 누리는 특권이 합법적인 틀 안에서 작동하는 구조적 불평등임을 보여준다.
현재의 '국민정서'를 공적으로는 공정이라는 가치를 내세웠지만 사적으로는 그러한 가치와 거리가 먼 후보자에게 느끼는 배신감이라고도 하고 불평등하고 불의한 현실을 바꿔줄 것으로 기대했던 정치인에 대한 실망이라고도 한다. 다른 한편으론 '생각보다 많이 가진' 후보자(의 딸)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결합된 분노라고 말하기도 하고 사회적 지위와 네트워크가 있다면 누군들 '조국처럼' 하지 않았겠냐며 이 사회에서 잘 살고 싶은 욕망에서 자유로운 자만이 후보자에게 돌을 던지라 한다. 이런 여론은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와 정치세력이 그동안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주입하고 있는 욕망은 결국 '조국처럼 되기'가 아니었는지 되묻고 있다.
그러나 대중의 삶은 '조국의 삶'과 너무 거리가 멀다. 악착같이 노력해야 낭떠러지로 밀려나지 않는다. 올해 2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가 말해준다. 중산층과 최하위 계층의 빈곤 격차는 2003년 이후 최대로 벌어졌다. 비/정규직을 비롯해 사회 계층과 계급은 매우 촘촘하게 서열화 되었고 그 얕은 한 단계를 오르는 것이 불가능해진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하청, 불법파견 노동자들은 고공 철탑에 오르거나, 단식을 택하거나, 펄펄 끓는 한여름 도심 콘크리트 바닥에서 삼보일배를 하며 '같이 좀 살자'를 외친다. 이렇게 외치다가 집시법 위반, 업무방해, 일반교통방해라는 죄목으로 죄인이 된 이들에게 특권적 혜택을 누려서 미안하지만 '적법'했다는 해명은 해명이 되지 못한다. 국민정서는 정치인들이 고개 숙이며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는 말의 포문을 열기 위해 존재하는 단어가 되서는 안 된다. 이 끔찍한 생존경쟁 사회에서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이 느끼는 분노와 울분이 이번 사태의 '국민정서'다.
검소한 엘리트를 바라는 게 아니다
조국 후보자는 23일 가족 명의의 펀드를 공익법인에 기부하고, 문제가 되고 있는 가족 소유 웅동 학원 관련 일체의 직함을 내려놓겠다고 발표했다. "이 사회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쓰이도록 하겠다며, 가진 사람으로서 사회적 혜택을 누려와 그 혜택을 사회로 환원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익숙한 풍경이다. 공적인 검증대에 선 인물들이 난관을 돌파할 때 자주 쓰는 방법이다.
사회 기득권층이라 불리는 자들이 자신이 누리고 있는 지위와 부의 원천을 깨닫고 성찰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깨닫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삶을 돌아볼지언정 내가 서 있는 높은 계단을 없애고 보다 평등한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기존 시스템에 균열을 내는 노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깨달음은 그저 위기에 대응하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조국 후보자가 쏟아지는 비판 속 신속하게 내놓은 대안이 재산의 사회 환원이라는 점에서 국민정서를 매우 편협하게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조국 사태'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논란이 공정과 특권 사이를 오가는 동안 자신이 가진 자원을 모두 동원해도 '공정한 과정'으로 진입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듣기 어렵다. '능력'에 따른 '정의로운' 결과로써 얻어지는 사회적 지위나 계층은 어디까지나 그 '공정한' 과정 속에 들어간 사람들 사이에서만 획득된다. 불평등한 체제를 바꾸는 시도는 하지 않고 지금의 틀 속에서 평등, 공정, 정의를 주창하는 것은 '공정하게' 사람들을 '줄 세우자'는 형용모순일 뿐이다. 불평등의 현상유지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다짐과 개혁
"지금껏 저와 제 가족의 부족한 점을 꼼꼼히 들여다보지 못한 채 대한민국 법과 제도 개혁을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이 말을 듣고 보니 중요한 질문 하나가 남는다. 과연 개혁을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려왔다는 후보자의 달리기 결승점은 어디인가. 현 정권의 개혁은 누구를 위한 달리기인가?
법무부는 부패를 근절하고 약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범국가적 종합인권계획을 세우고 범죄 예방 정책을 통하여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자기 소명인 조직이다. 하지만 현실은 재벌과 권력의 편에 서 온갖 부정부패를 저질러온 검찰의 지휘조직이기도 하다.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한, 그래서 사회적 소수자, 약자와 함께하기는커녕 탄압해 온 검찰에 대한 개혁은 필요하고 중요하다. 무소불위의 권력도 문제지만 그 권력을 누구에게 휘둘렀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런 부처의 장관 후보자가 제시할 수 있는 정책 공약은 열거하기 미안할 정도로 많다. 바로잡아야 할 과오가 많은 탓이다. 예컨대 권력형 성범죄로 여성의 삶을 파괴한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 입시비리와 채용비리 수사, 평화적 집회시위와 노동자 단체행동에 대한 탄압과 기소행위 중단,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반인권적 단속 중단,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차별금지 사유로 포함하는 차별금지법 발의 등 법무부 고유의 인권정책과 제도 개선 방향에 대한 전망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지난 20일 내놓은 국민의 안전을 위한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5가지 다짐은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그에 따르면 '우리 가족과 나의 안전과 행복'은 성범죄자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정신 장애인과 같은 소수자에 대한 낙인과 배제를 강화함으로써 이뤄질 수 있다고 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구조적인 문제라기보다 위험한 개인을 관리 감독하면 해결될 것이요, '입은 자유롭게, 폭력에는 단호하게'라는 보도자료 소제목처럼 투쟁하는 이들의 외침은 과격한 행위라는 이유로 엄정한 심판대에 오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이런 정책 다짐은 인권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아니 반인권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 누구를 위한 개혁인가
청문회 개최 시기를 놓고 벌이던 여야 공방이 끝나고 드디어 청문회 기일이 정해졌다. 분명한 건 후보자에 대한 모든 의혹은 합법적이었다는 말로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청문회는 이제 조국 개인의 법무부 장관으로서 자질과 자격을 검증하는 것을 넘어 문재인 정부가 이루고자 하는 개혁이 무엇인지를 묻는 장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이른바 촛불 대중의 지지를 얻으며 탄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특권과 부정의에 대한 사회적 각성 속에서 역대 최다 표차로 당선되며 2017년 5월 임기를 시작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천명한 대통령의 취임사는 불평등이 고착화되어 현재보다 나은 삶을 기대하기 어려운 계층과 세대들에게 '나라다운 나라', '평등하고 정의로운 나라'에 대한 희망을 조금이나마 가지게 했다.
그런 문재인 정부는 개혁를 추진할 적임자로 조국을 지목했다. 하지만 그에게서 이전과는 다른 세상에 대한 기대를 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정의로운 법 집행을 공언하는 장관 후보자 앞에는 불법파견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를 따르지 않는 공공기관들, 현대기아차, 한국GM에 맞서 수십일 째 단식과 고공농성을 이어가는 노동자들이 있다. 누구를 위한 어떤 개혁인지 밝히라. 그 개혁,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의 삶과 무관하지 않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