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를 비관하여 일가족이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 빈번하게 신문 사회면을 오르내린다. 주검이 되어서야 사회적 존재로 그 모습을 드러낸 사람에게서 이 세계는 복지 제도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읽어내지만, 망자가 살아생전 어느 자리에서 무엇을 해 왔고,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사회는 그 가능성을 어떻게 막아왔는지, 그 죽음의 의미를 읽으려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가난한 삶의 선택
김대중 정부의 치적이라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2000년에 시행되었다. 2001년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 최옥란은 기초생활보장법이 정한, 당시 1인 가구 기초생활수급자의 형편없이 낮은 최저생계비에 대해 문제제기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찾아가 당시 생계급여 26만원을 반납하며 그 돈으로 어디 한번 한 달 살아보라 했다. 수급당사자로는 처음으로 최저생계비의 현실화를 요구하며 그해 겨울 명동성당 농성을 결의했던 최옥란은 겨울과 봄의 기운이 교차했을 이듬해 3월, 1년 전에 써 놓은 유서를 남기고 제도가 내모는 삶을 죽음으로 역설했다.
그리고 2014년, 송파에 살던 세 모녀의 죽음은 사회에 또 다른 계기를 마련했다. 최옥란이 국가가 보장하는 기초생활수급자의 삶이 완전한 빈곤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을 폭로했다면 기초생활수급권자가 아니었던 송파 세 모녀는 억척스럽게 살아도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삶이 있음을 사회에 알렸다. 그 결과 위기 가구들을 미리 발굴하고, 가가호호 찾아가는 서비스도 제도화되었다. 그러나 세 모녀가 복지 제도로 진입을 고려한 상담을 받은 적이 없으며, 집세도 밀린 적이 없을 만큼 성실하게 살았지만 죽음을 선택한 이유, 그들이 품었을 삶의 절망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단순히 복지 사각지대가 만들어낸 비극으로 회자되는데 멈췄다.
그러다보니 지난해 11월 주거수급대상자였던 인천의 어느 가정의 죽음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도입한 위기 가정 발굴 시스템의 한계로만 해석하거나, 같은 달 성북동에 살던 네 모녀의 죽음도 공과금 연체내역과 같은 정보가 공유되지 않은 문제로만 짚어졌다. 복지 제도는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확대되고 보완되어 왔다. 그러나 이들의 죽음을 또 다시 성긴 복지제도의 그물망을 촘촘히 만드는 문제로 환원할 수 없다.
제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경제적 ‘무능’을 전시해야하고, 더 이상 손 쓸 방법이 없는 불행한 삶이라는 사실이 인정받을 때 수혜의 자격을 얻게 된다. 그러니 제도로의 진입이 삶의 새로운 가능성으로의 진입이 아니라 삶이 바닥에 떨어졌다는 사회적 의미로 해석된다. 절대 빈곤과 차상위 계층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은 삶과 죽음이라는 양극단 사이의 선택지가 없는 절망스러운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 가난한 사람이 이 세계에서 존엄하며 다양한 욕구를 지닌 동등한 정치적 주체가 아닌 시혜의 대상이 되고 복지가 그것을 제도화할 때, ‘복지 수급자’라는 낙인과 나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은 계속해서 ‘사각지대’를 만들어낼 것이다.
가난과 빈곤은 사회가 만들어낸다
지난해 11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실업자 수는 약 86만 명이다. 왕성한 경제활동 세대라고 일컫는 30~40대 취업자의 감소 추세는 지속되는 반면 60대 이상 고령층 취업자의 주당 1-17시간 단기간 질 낮은 일자리는 늘어나는 추세다. 노인 고용률은 OECD 회원국 중 압도적으로 높은 편에 속하지만 동시에 빈곤율 또한 절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한국에서 노인들은 일하지 않고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 들어 최저임금이 인상되어 1분위 소득의 시간당 임금인상률은 19.9%로 가장 높았지만 월 임금인상률 은 1.9%로 가장 낮았다. 기업들이 노동시간 쪼개기와 같은 꼼수로 임금인상에 대응했기 때문이다. 2017년 정부가 발표한 「제1차 기초생활보장종합계획」에 따르면 소득이나 재산은 빈곤선 이하이나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93만 명이다. 누군가는 자본주의의 이런 생존 경쟁에서 승리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다른 누군가가 쓰러지게 되는 이 사회 구조의 문제를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가난은 개인의 노력이나 의지의 문제로만 환원될 수 없는 구조적 불평등의 구체적인 결과다.
이러한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일상적으로 생산되는 차별은 곧 절망과 공포의 경험이 된다. 임대아파트 거주 아동들과 같은 학군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집단 소송을 내기도 하는 세상에 사는 아이들은 생애 아주 이른 시기부터 노골적인 차별과 불평등의 감각을 축적한다. 음식배달 노동자에게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라는 아파트처럼, 가난한 이들이 구체적인 삶의 터전에서 겪는 일상적 차별의 경험은 가난과 빈곤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지면 이제 끝이라는 공포로 연결된다. 사회는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본인의 삶이 이전보다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체계적으로 박탈한다.
가난한 이들은 제도에 기대 살아가는 사회적 짐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가 수많은 사람들을 가난과 빈곤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제도’가 사람들의 역량과 욕구를 짓밟고 가난과 빈곤을 개인의 무능과 태도의 문제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복지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이 죽음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가난한 이들의 죽음은 ‘무능한 복지 수급자’로 살거나 평생을 가난과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절망에서 나온 ‘선택’이다. 그러니 사회는 그대로인데, 복지 예산을 확충하고 제도를 보완한다고 한들, 안타까운 사연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무엇을 들어야 하나
최근 인천의 한 마트에서 절도로 입건된 부자의 사연, 이른바 인천 장발장 사건은 미담이 될 뻔 했다. 배가 고파 우유와 빵, 사과를 훔쳤다는 고백에 사건 담당 경찰관은 국밥 한 그릇을 대접했다. 일면식도 없는 한 시민은 돈 봉투를 전하고 사라지고, 마트로 이들에게 전달해달라는 생필품이 쏟아졌다.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는 온정적인 메세지가 온라인을 도배했다. 사연이 알려진지 얼마지 않아 한 매체는 그의 사연을 추적 보도했다. 그가 택시기사로 일했을 당시 근면성실하지 않았다는 증언과 기초생활수급자이면서 구직활동에 매달리지 않고 평소 PC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보도했다. 여론은 급격하게 나빠졌다. ‘사람들의 선한 마음을 배신했다’ 내지는 ‘저러니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식의 비난이 쇄도했다. 국민 소득 3만 불 시대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개하던 사람들은 돌연 그를 근로 능력이 있음에도 노동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가짜 빈민 내지는 부정수급자라고 비난했다. 단숨에 까다로운 기초생활수급자 기준이 정당화되었다. 정작 대중들은 그가 어떤 삶의 경로를 거쳐 현재의 곤궁을 맞닥뜨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수급자 생활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일말의 동정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의지만이 팽배해졌다. 그저 불쌍한 이웃이었다면 좋았을 그는 이제 동정과 시혜를 받을 자격마저도 박탈당하고 만 것이다.
가난이 사람에게 일어나는 부당한 일, 구조적이 불평등이라는 감각, 인간답게 살 권리가 훼손당하는 일이라는 감각이 사회 공통의 것이 되지 않을 때, 가난은 개인이 태만한 탓이 된다. 이런 사회에서 ‘더 열심히 살면 기초생활수급자 신세를 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은 가능성과 상관없이 맞는 말이 된다. 가난한 이들의 죽음을 ‘극단적인 선택’이라 이름 붙이며 ‘죽을 용기로 악착같이 더 살아보지’라며 사회의 책임을 죽은 자들에게 미룬다.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의 잇따른 죽음 앞에 곤궁한 가정을 더 잘 발굴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 한다. 가난은 발굴할 만큼 찾기 어렵지 않다. 가난한 이들의 ‘죽음’이 한국 사회에 던진 메시지가 과연 가난을 더 잘 찾아내라는 것일까? 어불성설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그 죽음이 의미하는 바를 읽어내는 수고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사회가 만들어낸 가난과 빈곤이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삶의 변화가능성을 앗아가는지,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절망과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강요된 무능이 누군가에게는 죽음으로, 누군가에게는 공포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