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담회에 초대하고 싶은 후원인 분들이 너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꼭 만나고 싶었던 한 분이 있었으니 바로 매달 <사람사랑> 소식지를 인쇄해주는 한울타리 인쇄소 고성원 님이다.
중림동 시절부터 최소 십여 년의 인연을 이어왔다. 소식지 외에도 각종 행사 자료집을 부탁드리는데, 늘 빠듯하게 요청하는 상황에도 꼭 시간을 맞춰주신다. 사랑방을 비롯해 수많은 단체들이 한울타리 인쇄소를 이용하는데, 이곳을 거쳐 간 인쇄물들을 한데 모아 볼 수 있다면 그야말로 운동권들의 연대기일 것이다. 그 한 켠의 시간을 사랑방도 함께 해온 것인데, 2016년부터는 사랑방의 후원인으로 또 다른 인연이 시작됐다.
유일하게 쉬는 일요일에 열리기에 집담회에 참여할 수 있어 기쁘다고 하셨는데 급작스런 일이 생겼다고 연락이 왔다. 덕분에 다녀왔다. 언젠가는 가봐야지 하며 궁금해 했던 그곳, 한울타리. 고대 맞은편 인쇄소를 열고 들어가니 늘 수화기에서 익숙하게 들어왔던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고성원 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공부하고 싶어서 인쇄 일을 하게 되었어요. 일하며 만난 인연으로 1989년 1월 14일 인쇄노동조합을 함께 만들었지요. 일하면서 노조 활동을 하는데 무척 힘들었어요. 밤에 일 끝나고 새벽까지 노조 회의를 하거나, 노조 일 하고 밤새 인쇄 일을 하거나 그랬어요. 그땐 또 지금처럼 자동화되지 않아서 내내 인쇄 돌아가는 것을 봐야 하니 노동강도가 굉장히 셌죠.”
인쇄기 돌아가는 소리가 가득한 공간, 그 사이사이로 따뜻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종이와 잉크가 만나 새겨지면서 나는 따뜻한 냄새가 좋다고 말하니, 얼마 전 찍은 단체 카달로그를 보여주시면서 지금처럼 자동화되기 전 어떻게 인쇄 작업을 했는지 이야기해주셨다.
“지금은 디지털 인쇄라 여러 색이 있어도 한 번에 나오고 입력 값대로 그대로 출력이 되잖아요. 예전에는 4색을 넣으려면 4번 돌려야 했어요. 그런데 여러 번 돌리니까 기계에 눌리면서 종이가 늘어나잖아요. 그럼 엇나가게 돼요. 잉크 상태나 그 날 그 날 일하는 사람의 기분과 상태에 따라 달라졌어요. 우리는 인쇄기 돌리는 사람을 ‘기장’이라고 불렀어요. 비행기 모는 것처럼 기장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랐으니까요. 기장 밑에서 서너 명이 같이 하면서 일이 돌아갔지요. 지금은 기계가 다 하는 것으로 환경이 바뀌었어요. 산업화 흐름이고 일이 편해지긴 했지만 참 아쉽긴 하죠.”
마침 보여주신 카달로그는 가까운 이웃단체 것이었다. 알록달록 예쁜 디자인에 절로 읽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긴다. 그 옆에 놓인 사람사랑, 이렇게 보니 동시대 인쇄물처럼 보이지가 않는다. 수많은 인쇄물을 접하는 만큼 우리 소식지는 어떻게 보고 계실지 궁금했다.
“사랑방 소식지는 딱 아날로그 느낌이 나죠. 물론 깔끔하고 예쁘면 보기는 좋겠지만 예전에는 다 이렇게 나왔잖아요.”
예전이라면 얼마나 거슬러 올라간 것일까. 10년? 20년? 10년 전에도 이렇게 만들면 사람들이 읽겠냐는 걱정을 들었는데, 그 이후에도 꿋꿋이 디자인에 변화를 시도하지 않아왔다. 이번 300호를 맞아 십수 년을 고수해온 편집 디자인을 바꾸기로 했다. 물론 그런 재주와 감각이 있는 활동가가 생겼기 때문. 이번 300호부터는 달라질 거라는 소식을 전해드렸더니 응원의 말을 덧붙여주셨다.
“같은 흑백이라도 예쁘게 만들 수 있어요. (웃음) 사람사랑은 돈 냄새가 안 나서 좋았어요. 화려하게 나오는 것도 좋지만 그럼 돈이 많이 들잖아요. 오히려 그런 돈 있으면 다른 데 의미 있게 쓰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안 그러려고 노력하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언제나 일정을 빡빡하게 부탁드리는 것이 늘 죄송했다. 다급했던 우리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 차질 없어야 한다고 더 서둘러 작업을 해주시고, 부탁한 수량보다 조금 넉넉하게 뽑아주면서, 단가도 빼주면서, 한울타리는 인쇄로서 이미 사랑방의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2016년 사랑방의 후원인이 된 이유가 궁금했다.
“작업했던 인쇄물들을 다 모아놨었어요. 이것들도 운동의 기록이잖아요. 역사이고 문화인 거니까. 은퇴하면 전시하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죠. 그랬는데 인쇄 일 하면서 너무 많은 부침이 있었어요. IMF 때 부도나고 어렵게 다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불도 났어요. 정말 힘들었는데 그럴 때마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일어설 수 있었어요. 어느 정도 수습하고 다시 자리를 잡아가면서 제가 받았던 것을 기억하며 돌려주고 싶었어요. 액수는 적지만 단체 10곳 정도에 후원하고 있는데, 마음 같아서는 더 많은 곳에 후원하고 싶어요. 그만큼 여유가 있는 건 아니라서 ‘언젠가는’ 이라는 마음으로 기약하고 있어요.”
집담회에서 사랑방 사무실도 보고 사람들도 만나길 기대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는 고성원 님, 다음을 기약하며 사랑방에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들었다.
“사랑방이 잘 되고 활동하는 분들이 좀 궁핍하지 않게, 좀 더 안정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후원도 좀 하고 그러면서 성장해가는 거잖아요. 인권에 관심을 갖고 함께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사회가 그만큼 좋아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 사랑방 여러분들이 열심히 활동하는 거고요. 그런데 열심히 활동하더라도 활동하는 분들이 다 희생하면서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재능기부’ 이런 말을 많이들 하는데, 노동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게 참 아쉬운 것 같아요. 운동하는 분들의 노동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소중하게 생각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