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에 진행했던 ‘세월호 운동 워크숍’에 이어 8월에 두 번째 워크숍 자리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워크숍은 세월호 운동 6년을 돌아보면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요구의 현재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논의를 했고, ‘안전사회 건설’을 외치며 생명과 안전의 권리에 기반한 요구와 운동이 세월호 이후에 시작되었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특히 세월호 이후 메르스, 구의역 노동자 사망과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 등을 경유하며 사회 전반적으로 ‘생명과 안전의 권리’가 주된 화두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월호가 ‘촉발’한 시대적 변화 그 자체에 대해서 좀 더 들여다봐야겠다는 마음으로 두 번째 워크숍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세월호는 무엇을 ‘촉발’했나
사회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인데요, 자유나 평등보다 최근에 가장 많이 요구되고 외쳐지는 가치는 ‘안전’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전에는 커다란 녹십자 마크에 안전 제일이라고 쓰인 건설현장에서나 볼 법한 ‘구호’가 이제 ‘생명과 안전의 권리’, ‘안전 공간 만들기’, ‘안전한 조직문화’와 같이 어떤 지향이자 가치로 전면에 등장한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올해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까지, 정말 세상이 갑자기 달라지고 망할 것 같은 상황이 된 걸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세상이 살만하다는 게 아니라, 사실 예전부터 그랬던 세상인데 우리가 ‘세월호’를 겪으며 달라진 거라는 생각입니다.
단일 사고로는 세월호와 비슷하거나 더 많은 사망자를 낸 사고도 있었습니다. 올 여름 기록적인 장마와 홍수, 연이은 태풍까지 많은 이들이 이상기후의 심각성을 느꼈고, 이를 기후변화와 연결지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2002년 월드컵 열기가 가시기도 전에 태풍 루사로 250여 명이 사망했습니다. 태풍 하나에 250여 명이 죽다니요, 그런데 기후변화, 위기에 대한 불안은 언급조차 없었습니다. 사실 그 때도 남태평양은 잠기고 있었고, 북극곰은 지구온난화의 상징이었는데도 말이죠.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김영삼 정부 시절에 대형사고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아시아나, 대한항공 여객기 추락, 구포역 열차 전복, 서해훼리호 침몰,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가스 폭발까지 수백 명의 사망자를 낸 대형 재난 사고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위기’, ‘안전’, ‘위험사회’와 같은 말들이 회자되기보다는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 ‘건설업의 비리와 부실공사’와 같은 것들이 더 많이 이야기되면서 선진국에서는 볼 수 없는 후진국형 사건사고라는 식의 평가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는 두 가지 면에서 달랐습니다. 먼저 2014년 한국사회는 2002년 월드컵이 상징하는 경제적(IT 버블)-문화적 자신감도, 외환위기 전까지 지속되던 90년대 초중반의 장기간 고도성장의 경험은 사라진지 오래였고, 신자유주의 20년이 남긴 격차와 경쟁에 지칠 대로 지친 자살률, 산재사망률 OECD 1위 국가였습니다. 지금은 힘들어도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찾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다른 하나는 세월호 ‘사고’를 온 국민이 실시간 지켜보면서 국가가 말 그대로 국민을 죽게 내버려두는 상황을 목격하게 된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누군가’는 실직하고 사업에 망하더라도, ‘누군가’는 범죄의 희생자가 되고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그것은 한낱 가능성일 뿐이고 사회 전체적으로 이러한 위험을 관리하면서 더 나아지고 있다는 신뢰가 깨진 것입니다. 이렇게 ‘리스크 관리체계’가 붕괴되면 이제 ‘누군가’는 ‘누구나’가 됩니다. 위험의 가능성은 위험의 현존이 됩니다. 바로 세월호가 ‘촉발’한 그 무엇입니다.
생존을 위한 선택, 안전 공간 만들기
세월호 이후 구의역 김군,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이 아주 어려운 처지에 있는 특수한 노동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될 수도 있었다는 감각,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후 붙은 포스트잇에 가장 많이 적힌 내용 중 하나인 ‘거기 내가 있을 수 있었다’,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와 같은 서사는 그렇게 등장합니다. 이러한 감각과 요구는 변화를 촉구하는 운동으로 이어져 산업안전법 전면 개정을 이뤄냈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운동으로 이어졌고 젠더 폭력에 맞선 여성들의 강력한 운동도 불법촬영문제, 사이버성폭력 관련법 개정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감각은 사회변화를 촉구하는 운동으로도 드러나지만, 반대로 자신과 그 주변으로 한정되는 특정한 정체성에 기반한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안전 공간 만들기’라는 형태로도 등장합니다. 일정한 ‘자격’을 인증해야 하는 다양한 안전 공동체들이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게 ‘성별’, ‘학력’, ‘고용형태’입니다. 생물학적 여성으로 자격을 제한한 불편한 용기 시위, 트랜스젠더 여성의 입학을 반대했던 숙대 학생들, ‘공정성’을 외치며 결집하는 소위 ‘명문대생들’과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급기야 미사여구는 다 버리고 결집한 ‘젊은 의사와 의대생들’까지 말입니다. 망해가는 세상에서 ‘나’라도 살아남기 위해 뭉치자는 이들이 만들어낸 배타적인 ‘안전 공간’입니다. 이 때 안전은 생명을 넘어서, 불안을 제거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위들 속에서 얻어낼 수 있게 됩니다.
어떤 ‘우리’가 될 것인가
이렇듯 우리가 직면한 안전에 대한 감각은 양가적입니다. 생각해보면 세상의 변화를 바라고, 체제를 바꾸고자 하는 운동이라면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상황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지구온난화가 국제문제로 떠오른 건 90년대 초반입니다. 유엔을 중심으로 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체제가 작동합니다. 기나긴 지구적 시간대에서 보자면 3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국제사회가, 이 체제가 기후문제를 해결하거나 대안을 만들기 어렵다는 사실을 30여 년의 시간을 통해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괜히 지난 10여 년 동안 국제적으로 기후운동이 불붙은 게 아닙니다. 기존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게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리스크 관리체계’의 붕괴라고 불렀던 한국 사회의 지금 모습도 숱한 사회문제들을 지금 체제가 해결해나갈 수 없다는 절망과 직관에 따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힘든 시간을 겪고 있지만, 그래서 새로운 체제,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만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현실적’ 가능성의 기로에 서 있기도 합니다. 배타적이어서 안전한 것 같은 ‘우리 만들기’에 뛰어들 것인지,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