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약국, 식당, 카페, 미용실, 일상생활에 긴밀하고 친숙한 공간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상의 공간이 모두에게 열려있을까? 누구나 쉽게 진입하고 이용할 수 있을 것처럼 여겨지는 1층에 자리한 공간들 앞에서 장애인은 멈춰 선다. 입구에 놓인 턱과 계단 때문이다. 모두가 이용해야 할 공간이 여전히 장벽으로 존재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장애인들은 싸워왔다. 1997년 제정된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편의증진법)은 공중이용시설에서 경사로와 같은 편의시설 설치 의무 대상을 시행령을 통해 규정하고 있다. 지난 6월 보건복지부는 편의시설 설치 의무 대상의 기준을 강화하는 시행령 개정을 입법예고했다. 편의시설 설치가 확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개정안이지만 반대와 규탄이 이어지고 있다.
권리를 서비스로, 개인 간의 문제로
2018년 국가인권위는 사업장의 규모와 건축년도를 기준으로 편의시설 설치 의무 적용을 달리 하는 편의증진법이 장애인의 권리를 침해한다며 개정을 권고했다. 소규모에도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과 함께 편의시설 설치를 촉진하기 위한 세액 공제와 비용 지원, 관련 공무원을 비롯해 사업장에 대한 인식 개선 교육, 그리고 의무 대상이 아닌 경우여도 대안적 조치를 강구하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3년이 지나 정부가 내놓은 답변은 면적 기준 변경이 전부다. 2022년부터 새로 짓거나 고치는 건물에 한해 편의시설 설치 의무 대상 면적 기준을 기존 300제곱미터 이상에서 50제곱미터 이상으로 변경한다는 것이다. 50제곱미터 미만 사업장에는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일률적으로 제외한다.
공중이용시설은 누구나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을 현실에서 실현해가기 위해 제도와 정책이 존재한다. 5만 개의 편의점에서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는 편의시설이 설치된 곳이 2%가 채 되지 않는 현실 뒤에는 300제곱미터 이상인 경우에만 편의시설 설치를 의무화한 현행 규정이 있었다. 하지만 20여 년 만에 정부가 공중이용시설의 접근성 확대 방안으로 내놓은 것은 50제곱미터라는 여전히 면적을 기준으로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달리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기존의 건물과 공간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도 없다. 일상과 밀접한 공간을 누구나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향 속에서 접근성을 확보해갈 방안을 찾고 계획을 수립해야 하지만, 그 경로와는 거리가 멀기만 한 개정안이다. 더욱이 정부는 개정 이후 별도의 예산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했는데, 이는 편의시설 설치 의무 대상을 확대한다고 생색낼 뿐 실질화하기 위한 의지와 계획이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면적에 따라 기준을 여전히 달리 한 이유에 대해 정부는 ‘소상공인 보호 조치’라고 말한다. 이는 접근성을 장애인과 소상공인 간 구도로 왜곡한다. “소상공인의 과도한 부담”이라거나 “보행자의 불편 초래”를 이야기하면서 개인 간 권리와 이익이 충돌하는 문제처럼 말하고 정부는 그사이 중재자인 것처럼 군다. 정부가 해야 할 것은 소상공인 보호를 핑계 삼는 것이 아니라, 면적 기준을 폐기하고 해당 공간의 현황과 사업주의 부담 능력 등을 고려해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실행하는 일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고려는 전혀 하지 않고, 손쉽게 예외지대를 줄였으니 충분하다는 식이다. 예외지대는 접근성을 권리가 아니라 조건에 따라 달리 제공되는 서비스로 뒤바꾼다. 모두가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흔들면서 제공자의 형편에 따라 달리 제공될 수 있는 혜택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접근성을 권리로 만들어가는 과정
접근성의 배제는 물리적인 공간으로부터의 배제라는 차원에 국한하지 않는다. 공간에서의 배제는 곧 존재의 배제이기 때문이다. 2001년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 사고로 촉발한 이동권 투쟁은 더 이상 사회와의 단절을 강요받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가 설치하고 저상버스도 도입하라는 요구가 그저 서비스 확장이 아니라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동등한 성원으로 인정하라는 외침인 이유다. 공중이용시설에 대한 접근성을 권리로 보장하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정한 기준에 만족해야 하는 수혜자의 위치에 머물도록 놔둘 때 사회적 배제는 끝나지 않는다. 이 배제를 끊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많다. 2016년 국가인권위의 ‘일정기준 미만 공중이용시설에 대한 장애인 접근성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터뷰에 참여한 사업주가 대부분 편의시설 설치에 대해 의무라는 인식이 없었고 “소수의 장애인을 위해 많은 비용을 사용할 순 없다”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소수를 위해 감수해야 하는 번거롭고 불필요한 규제가 아니라, 공중이용시설을 소유하고 운영할 때 갖춰야 할 조건으로, 지출해야 할 비용으로 인식을 바꿔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만들어가야 하는 역할이 바로 정부에 있는 것이다. 지출한 비용이 만들 효과와 의미를 짚으며, 개인에게만 그 부담이 내맡겨지지 않도록 지원하고, 그렇게 접근성의 확장을 이끌어야 한다.
최근 ‘무장애도시’를 선언하며 관련 조례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지자체 차원에서 경사로 설치를 지원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한다. 이렇듯 최소조건으로서 이동식 경사로를 설치하는 것에서부터 이행과정에서 필요한 상담과 지원까지 정부가 해야 할 것들은 무궁무진하게 많다. 당장 모든 곳에서 접근성을 확보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계적으로 확장해갈 수 있는 방향을 세우며 이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간이 지나치게 협소하거나 지리적인 위치, 안전상의 문제 등 편의시설 설치를 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그냥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조건에서 어떻게 이용과 접근이 가능할지 대면이나 방문 등 대안적인 조치를 고민하고 마련해야 한다.
접근권이 만들어갈 다른 사회를 향해
장애인이라서 겪는 문제 혹은 ‘취약’ 집단을 위한 특별한 혜택이 아니라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로서 접근성을 보장할 때 어떤 변화를 그릴 수 있을까? 권리로 접근한다는 것은 동등한 성원으로 관계 맺는 경험을 쌓아가며, 평등하게 함께 살아가기 위한 사회의 역량을 키우는 과정이다. 이를 더 너른 일상으로 확대해가자는 요구에 이번 시행령 개정안이 결코 응답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접근성을 권리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장애인만의 몫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사회를 바라는 모두에게 요청되는 시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