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쓰
청소년 때 도보여행을 한 적이 있다. 여행의 제목은 '걸어서 바다까지', 여행의 내용도 걸어서 바다까지 가는 것뿐인 심플한 여행. 서울에서 출발해 동해바다에 가닿기까지 몇 날 며칠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걷기만 했던 기억이 강렬하다. 사전에 여행 준비를 하며 물집이 잡히지 않고 오래 걷는 법, 걷기의 노하우와 주의점 등을 배우기도 했다. 그 때 이후 걷는 일에는 이골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차제연 도보행진에 하루 결합하고 난 뒤 몸살이 난 걸 보니 십여년 전 배운 노하우는 이미 몸에서 빠져나간지 오래인가 보다.
디요
발목이 나빠지고부터 걷기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 조금만 걷다가 아파도 '아 오늘 괜히 무리했나. 앞으로 어떻게 하지?' 이런 산만한 생각들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최근에 전국을 걷고 있는 동료들과 함께 걷기 위해 아주 조금, 짧은 구간에 합류했다. 오만 생각을 하며 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는 바로 깨달았다. '잘했다.' 전체 길이에 비하면 아주 짧지만 조금이라도 함께 걸어 다행이다. 차별금지법 제정도 다르지 않을 텐데, 합류해보면 알 텐데. '함께해야 하는 일이구나' 라는 것을! 아직도 망설이는 분들 후회 말고, 늦기 전에 합류하시길. 특히 국회 사람들...!
세주
언제나 나에게 걷는 것은 딜레마. 그래도 과거에 행진이 있을 때 열심히 함께 했던 것 같다. 일상으로 걷기와, 행진시의 걷기, 운동으로의 걷기의 느낌이 다 다르다. 뭔가 확실히 함께, 행진 하는게 좀 더 힘내서 할수 있는 느낌이랄까? 느낌이라기 보다 실제로도 그런 것 같고. 어쨌든 최대한 걷는 것을 피하는 것은 사실. 과거에 6개월간 아침저녁으로 10분씩 걸었는데 이게 결국 몸이 상해버린 경험이 있는 나에게는 그러나 역시나 나에게는 걷는다는 것은 고역인 것 같다.
민선
팔자걸음인 제 걸음걸이에 대해 얼마 전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가만히 서있을 때도 그렇고 걸을 때에도 양 발 둘째 발가락이 서로 평행이 되게 하라는 조언을 들었네요. 자연스레 양 대각선을 향해 있는 발가락을 일자가 되도록 하는 게 쉽지가 않더군요. 의식하다보니 평소 보이지 않던 사람들 걸음걸이도 살피게 되더라고요. 늘 신발 밑창이 바깥쪽만 닳곤 했는데, 걸음걸이를 바꾸면 어떻게 달라질까 궁금해하며 발을 다시 떼봅니다.
다슬
어릴 적 예쁘게 걸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걸음걸이는 몸의 균형과 연결된다고 평소 앉은 자세도 신경 써 서야 한다는 당부도 같이 들었어요. 걸음걸이를 의식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어요. 걷는 걸음이 멋져 보이고 싶다. 자꾸 뒷모습을 상상하면서 걷다 보면 발끝부터 머리까지 균형이 확인해보게 돼요. 물론 이것도 너무 힘들 때는 그냥 걷다 보면 잊을 때도 많아요. 결국은 힘이 있어야 잘 걸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네요.
가원
모친은 내가 배를 내밀고 건들건들 걷는 게 불만이라며 그 모양을 과장되게 흉내냈다. 애써 배를 넣고 사람들 눈에 특이한 점이 없이 걸으려 노력했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사람이 생겨먹은 게 제각각인데, 걸음걸이라고 어찌 같을쏘냐.
아해
걷기, 하면 뭐가 생각날까, 가물가물한데, 사실은 우리 정말 많이 걷는 것 같네요. 요즘 많이 생긴 둘레길들 친구들과 걷기도 하고, 행진에 참여해서 며칠씩 걷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도 결국 많이 걷고 있잖아요.
그런데 내가 걷는다는 것도, 그저 아직까지 운이 좋아서 그렇구나, 싶었던 것이, 급성허리디스크가 와서 방에서 꼼짝 못하다가 119에 실려갔을 때. 조금은 움직일 수 있을 것도 같았는데, 통증이 순간적으로 팍! 치고 오니까, 참고 견디고 이딴 거 없이 그냥 으악악악~! 꼼짝도 못했었어요. 그리고 몇 주 동안, 일할 때도 목발에 의지해야 했고요. ㅎㅎ
지금은 많이 좋아지긴 해서 잘 걸어다니긴 하지만, 또 모두가 "걸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휠체어 지나가기에도 걸림돌이 많은 세상이라서, 걷든 안걷든 우리 다같이 건강하고 행복하면 좋겠어요! ^0^
정록
좀 오래 걷고 나면 두 가지 사실에 놀란다. 걷는 게 생각보다 빠르다는 것과 단지 걸었을 뿐인데 꽤 힘들다는 것. 그런 점에서 도보는 자동차, 기차와 같은 분명한 이동방식이다. 점점 그런 생각을 못하게 될 뿐이지.
몽
오랜 두 동료 미류와 종걸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부산에서부터 서울까지 걷고 있는 지금, 새삼스레 '걷기'라는 단어가 애틋하고 소중하다. 매일매일 반복되지만 멈출 수 없는 두 사람의 걸음, 그리고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해왔던 수많은 일들이 떠오른다. 우리는 계속 또 함께 걷겠지. 아무리 차별금지법이 반대세력과 국회에 막혀 있을지라도, 그 사실이 위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