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정확히는 글이라고 해야 하려나요. 눈도 침침하고, 목도 아프고, 대부분 재미도 없고, 재미가 있으면 사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글을 읽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고…. 그런 제가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매주 발행하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 편집인이라는 역할을 2021년 무사히 마쳤답니다. 왠지 이 뿌듯함을 어딘가에 자랑해야만 할 것 같은데 마땅히 할 곳이 없어서 여기에 적고 있네요.
사랑방에 처음 들어와서 가장 어려운 일은 글쓰는 일이었습니다. 사랑방에서 상임활동가가 되기 전까지는 내 생각이 분명하다고 느꼈고, 필요하다면 글쓰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는데요. 운동 단체에 들어와보니 어떤 입장을 정리하고 글을 쓴다는 일이 너무 어렵더라고요. 평소에 쓰던 말이 아닌 단어에 익숙해져야 했고, 분명해 보였던 입장이 문장으로 정리하면서 흐려지고, 실컷 흰 백지를 검정색 글자로 채우고 나면 이제 소재들이 나왔으니 주장으로 정리해야 하는 과제가 다시 시작되기도 하고요. 사랑방에서 활동을 고민하고 있을 때 사회운동 활동가들을 위한 글쓰기 강좌를 추천받아 들은 적이 있는데요. 첨삭의 과정에서 당시 학교에서 썼던 글을 보내드렸는데 강사이자 활동가였던 분께서 정말 모든 문장에 빨간줄을 그었던 기억은 잊히지 않네요. 나름 잘 쓴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큰 좌절을 맛봤달까요.
그렇지만 ‘글 못쓴다고 활동 못하는 거 아니니까’ 하면서 사랑방에 들어왔는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사랑방은 매주 돌아가면서 글을 쓰고, 이를 위해 2시간이 넘도록 토론하며 글쓰기가 매우 중요한 조직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어떤 글을 하나 쓸 때마다 논문도 여러 편 찾아 읽고, 괜찮은 책을 찾아 읽기도 하고, 어떤 주제는 해당 이슈와 관련된 한 일간지의 모든 기사를 모아서 정독한 적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야만 A4 2장 남짓한 글이 겨우 나오는 것이었죠. (사실 못 나올뻔한 적도 많습니다.) 그렇게 겨우 글을 쓰던 저의 어려움은 여전히 진행형이지만, 활동 연차가 쌓이고 역할은 돌고 돌다보니 저에게도 드디어 ‘인권으로 읽는 세상’ 편집인이라는 자리를 마다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마저도 회의 전부터 이 역할 다른 사람이 할 수 없을지 암투를 벌이고, 정작 그 자리에서 편집인은 못한다고 드러누웠다가 며칠 뒤에 다시 하겠다를 번복까지 하면서 아주 우스운 모양새로 편집인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년을 내가 또 타인이 글을 쓰는 일을 꾸준히 지켜보면서 조금 다른 감각이 생기더라고요. 요즘은 축구와 같은 단체 운동이랑 왠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축구는 최하단에 골키퍼부터 수비수, 중앙에 배치된 선수, 공격 역할을 부여받은 선수들까지 여러 명이 대형을 만들잖아요. 그래서 골키퍼부터 패스를 시작해서 차근차근 위로 공을 밀어 올려 슈팅을 해서 골을 넣거나, 수비수 위치에서 한 번에 멀리 공을 차서 공격수가 슈팅을 할 수 있는 위치로 바로 전달하기도 하는데 이게 글쓰기랑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주장을 하고 입장을 만드는 것을 슈팅에 비유한다면 이 슈팅까지 만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죠. 논리적인 방식으로 차근히 글을 전개하기도 하고, 사례를 들어서 설득하기도 하고, 통계를 가져오기도 하고, 중간에 쉬고 작전을 새로 짜기도 하죠. 그렇게 여러 가지 내용과 방법을 조합해서 어떻게든 슈팅을 시도하는 일이 글쓰기라면 결과마저도 언제나 골인이 아니라는 점까지도 비슷하게 느껴졌달까요.
굳이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 건 기존에는 저에게 글쓰는 일은 혼자 생각하는 일이나 창작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글을 쓰는 일은 정해진 틀과 방식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과정이었던 거 같아요. 물론 똑같은 틀, 똑같은 방법만을 사용한다면 그 수가 읽혀서 슈팅을 할 수 없도록 가로막힌다는 점도 놓쳐선 안되겠지만요. 그럼에도 기사를 쓸지, 보고서를 쓸지, 에세이를 쓸지에 따라서 어느 정도의 틀이 있고, 그 틀에 잘 맞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 글쓰기라면 쥐어짜기보다는 두드리면서 찾아 나가는 것이 방법이겠구나 싶었고, 편집인은 이 과정을 ‘잘 조력하는 사람’이란 점을 알아차리는 과정이었달까요. 이런 확인을 거치고 나니 여전히 글쓰기는 힘들지만 조금 다른 힘듦으로 변했던 것 같아요. 그 다름이 또 절대 못할 것 같은 시간을 견딜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하고요.
하지만 지난 1년 ‘인권으로 읽는 세상’으로 발행된 모든 글이 골인을 많이 하는 글이 되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편집인으로서 저의 목표는 일단 슈팅을 때리는 것이었으니까요. 이제 다음 스텝은 소위 결정력이라고 부르는 슈팅을 때려서 골인을 시키는 것이겠지요. 이제 글을 잘 쓰기 위해 다른 사람의 글을 많이 읽는 게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으니 이 감각이 사라지기 전에 조금은 더 열심히 읽고 채우는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건 스포츠에선 재능의 영역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글쓰기는 또 스포츠이기만은 하지 않으니까. 다른 글도 많이 읽고, 또 트레이닝 하다 보면 골인도 늘지 않을까요. 물론 글도 마감이 끝을 내준다고는 합니다만 스포츠보다는 아무래도 시간제한은 덜한 종목이 글쓰기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