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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참 사랑방답네요.”

“참 사랑방답네요.”

사랑방의 30주년 기념사업을 진행하며, 사랑방 운동의 동료들로부터 참 많이 듣고 있는 말입니다. 사랑방-다움, 그리고 사랑방활동가-다움. 사랑방 활동가 중 한 명으로서 다른 사랑방 활동가들을 보면,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가까이에 있어서인지, 혹은 아직 그리 오래 본 사이가 아니어서인지 저에게는 각자가 그저 각자답게 느껴지는 게 큽니다. 이 두 가지, 신입활동가 교육기간 동안에도 그토록 찾아 헤맸는데 여전히 어렵습니다.

저의 입방 총회로 거슬러 올라가, 이처럼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나다움을 가진 사랑방으로부터 제가 생각하는 활동가상을 질문받았을 땐 꽤나 난감했습니다. 어쩌면 괜찮아 보이는 단어를 대충 섞어놓으면 말이 될 수도 있는 이 ‘활동가다움’, 왠지 스스로에게 다시금 질문하게 되더라고요. 정의롭다거나 책임감이 강하다거나 하는, 맞지만 뻔한 답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활동가라는 자각 같은 걸 하면서 활동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냥 마음이 쏠리는 곳으로 움직였을 뿐이거든요. 활동가라는 정체성은 사실 아주 대단한 무언가가 필요한 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순간순간의 사소한 선택과 선택이 쌓여, 그렇게 삶을 운동해나가는 게 활동가 아니려나. 고민 끝에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활동가는 먼저 ‘감히’ 질문하는 존재입니다. 권리를 박탈하는 여러 조건과 구조에 감히, 두려움을 무릅쓰고 감히, 질문하는 존재. 그다음으로는 ‘기꺼이’ 듣기로 약속한 존재들입니다. 운동과 그로 인한 변화는 함께여야만 가능하기에, 활동은 독백이 아니라 소통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 활동가는 혼자 질문을 던지는 데서 멈추지 않고, 다른 이들의 질문과 이야기를 기꺼이 듣기로 약속하고 이를 책임지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다시 30주년 준비를 하는 시기로 돌아와서, 저의 이 대답과 사랑방 30주년의 연결고리를 뒤늦게 찾았습니다. 30주년 콘셉트에서 ‘엮다’라는 단어를 정하고선 상임활동가들이 머리를 쥐어짰던 적이 있습니다. 이 ‘엮다’ 앞에 뭔가 붙으면 좋을 텐데… 기어이? 기어코? 아냐, 너무 지독해 보여. 기어이 엮이자고 하면 다들 도망 갈라. 근데 솔직히 끈질기기는 하잖아. 그러다가 문득 “기꺼이?”라는 단어가 내뱉어진 순간, 다들 이거다! 그렇게 <기꺼이 엮다>가 탄생하게 된 거죠. 기꺼이. 어렴풋하게나마 사랑방과 저는 기꺼이로 엮인 관계라는 생각을 합니다.

짧은 기간이나마 사랑방에서 활동하며 제 나름대로 발견한 ‘기꺼이’가 있는데요, 바로 ‘기꺼이’라고 미처 판단하기도 전에 ‘기꺼이’ 움직이려고 하는 순간들이 참 많았단 겁니다. 기꺼이 엮인, 그리고 기꺼이 엮이고픈 얼굴들을 떠올리며, 그래. 일단 가봐야 하지 않겠니.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어. 질문을 나눠보고 싶어. 이 시대를 우리가 함께 겪어내기 위해.

‘사랑방다움’의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조차도 기꺼이 어딘가로 몸을 이끌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랑방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입활동가가 몸을 사릴(?) 생각도 않고 대뜸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록하는 작업에 함께 하고 싶다고 했었죠.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며 지금의 시대에 질문을 던졌던 그 얼굴들이 궁금했습니다. 또, 기후정의동맹 선언운동 집담회에 온 전장연 동료가 “단 한 번이라도 지하철 행동에 와서 현장이 어떤지 직접 함께 겪어봐 달라.”고 했던 이야기가 떠올라 1월 3일에는 사무실이 아닌 4호선 탑승구로 움직이기도 했습니다. 상임회의에서 지하철 행동에 한번 가보려고 한다는 저의 말에 다른 활동가들이 좋아요, 그런데 왜요? 하며 궁금해했을 때, 저의 가장 솔직한 대답은 “그냥, 가봐야 할 것 같아서요.”였습니다. 짐작건대, 사랑방의 30년도 이런 기꺼운 움직임들이 엮어준 인연들과 차곡차곡 이야기, 질문을 쌓아온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지금 사랑방은 30주년을 맞이하여 후원인을 한창 모집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곧 엮임에 기꺼이 응해준 얼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새로운 얼굴들이 소식지를 기다리고 있을 걸 생각하면, 사랑방의 신입활동가이자 소식지의 편집인으로서 아주 약간의 부담을 느끼게 됩니다. 피하고 싶은 부담이 아니라, 기꺼이 감내하고 싶은 부담입니다.

이 얼굴들의 이야기를, 질문을, 각자의 자리에서 겪어내고 있는 시대를 사랑방도 함께해야겠지요. 기꺼이 엮이길 요청하는 일은 곧 그들의 응답에 엮이는 일이기도 할 테니까요. 가끔 ‘기꺼이’의 마음이 지칠 때는 ‘기어이’의 마음을 다짐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기꺼이 해내보려고 합니다. 하나씩 재며 따져보기에는 너무 소중한 인연들이니까요.

기꺼이 엮이길 선택해 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 더 요청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여러분들의 이야기와 질문을 사랑방과 기꺼이 나눠주셨으면 합니다. 무조건적인 응원도 너무 감사하지만, 이 글을 쓴 저는 날카롭지만 ‘정확한 사랑’을 기대하고 있답니다. 저희가 항상 말했던 것처럼, 사랑방의 운동은 사랑방 혼자서 엮어온 게 아니니까요. 사랑방이 초대해야 하는 이야기에 사랑방을 초대해주시고, 사랑방이 던져야 할 질문을 사랑방에 물어주셔요. 앞으로도 사랑방이 불화와 조화, 심지와 고집, 필요와 욕심, 책임과 부담 사이에서 열심히 줄타기하는 운동을 할 수 있게, 지독히 엮여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제가 생각하는 이 ‘사랑방다움’을 우리 함께 만들어갑시다.

그럼, 다음 편지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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