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시작된 인권운동사랑방 30주년 후원인 모집사업 <기꺼이 엮다>부터 3월 31일 진행된 후원의 밤 <기꺼이 엮인 우리>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습니다. 30주년을 맞이하여 더 많이 엮고, 엮이자는 마음을 온갖 방식으로 담아 말을 건넸을 때 걱정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준비한 기획이 결과를 담보하긴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엮고 엮여달라는 말이 ‘지지하고 후원을 해달라는 요청을 왜 이렇게 거창하고 부담스럽게 꺼내는 거냐’며 뒷걸음질 치게 만들면 어쩌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지난 두 달은 인권운동사랑방이라는 조직이 얼마나 많은 엮음과 엮임 속에서 존재해왔는지를 깨닫고, 기꺼이 엮이겠노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을 끝없이 만날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모여서 움직이기 위하여
제가 사랑방에서 상임활동가를 시작할 때 사랑방은 20주년의 슬로건이기도 했던 ‘모여서 움직이자’는 고민을 화두로 삼았습니다. 지금 와서 당시를 떠올려보면 참 분주했지만 헤매기도 했던 시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이고 움직이자는 구호가 구호를 넘어 실천적인 차원에서 사랑방은 어떠한 시도를 할 것인지, 개별 활동가 차원에서는 어떻게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 막연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두드렸던 것 같습니다. 돌다리를 두드리듯, 닫힌 문들 사이에서 열린 문을 찾듯 말이죠. 두드리고 평가하기를 반복하면서 의제를 발굴하고, 잘 할 수 있는 활동의 방식을 찾고, 주변의 동료를 살피는 방법을 습득했습니다. 지난한 반복으로 이제야 조금은 조직 차원으로 모여 움직이기 위한 스위치를 올릴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꼬박 10년이 걸린 셈이죠. 사랑방이라는 조직의 ‘활동가1’인 저에게 인권운동사랑방 30주년은 조직의 시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조직의 시간, 개인의 시간
사랑방은 운동 전략을 계속해서 다듬고, 방향을 벼리고, 지도를 펼쳐 새로운 탐색을 모색하기도 합니다. 지난 10년 사이에 사랑방의 운동 전략을 논의하고 함께 시도하던 성원과 지금 사랑방의 운동을 만들어가는 성원의 구성에는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질문이 생기더라고요. 과연 조직의 과제는 누가, 어떻게, 만들어가며 책임질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죠. 사랑방은 대표 선출 체계도, 회원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도 아니다 보니, 상임활동가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사랑방의 조직적 의사결정과 이에 따른 책임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조직은 사람의 합인 만큼, 결국 조직의 구성원이 할 수 있는 만큼이 곧 조직의 역량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직의 과제가 구성원들의 욕구나 질문의 합만으로 구성될 수는 없다는 점을 이해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지난 7년의 활동만큼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지난 활동을 요약하면 사랑방이라는 조직이 세상에 문제를 던지고, 또 풀어가려 했던 과정이 무슨 의미였는지 따져 묻고, 다시 현재의 구성원인 저와 동료들은 나름의 답을 내놓기 위해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도에 대한 자취를 남겨온 것이죠. 그렇게 수많은 사람과 엮고 엮이는 시간을 쌓아온 결과가 30년의 조직을 만들어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30년이라는 시간은 그저 조직이 오래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만큼 엮고 엮이는 이어달리기를 멈추지 않아 왔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30주년을 준비-맞이하며 새삼스럽게 저는 인권운동사랑방의 활동가로서 저의 시간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랑방 활동가가 하고 싶었지, 활동가가 되어 어떤 활동을 만들어 나갈지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막상 활동을 시작한 이후는 매일이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사랑방이 마주하는 의제는 다양한데 반해, 어떤 주제에 관심이 적었던 저로서는 왜 모든 의제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지, 앞선 활동의 관계나 조건을 사랑방 구성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꼭 책임져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활동가로서 저의 자질을 의심하는 동안, 조직의 요구가 과도하다고 느끼며 원망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것이 시간의 힘일까요? 엮고 엮이며 이어 달리다보니 지금은 ‘내가 왜 조직을 책임져야 하지?’가 아니라, 어떤 모양의 책임이 가능할지 묻게 되고, 그 안의 관계를 살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머리보다 몸이 먼저 체감하게 됩니다. 조직과 나 사이의 거리를 지키며 대상화하기보단, 내 몫의 역할과 영역을 만들기 위해 뛰어들고 함께하는 방향으로 말이죠. 스위치가 켜진 조직의 방향에 활동가로서 리듬을 맞춰 함께 스위치를 켜기 시작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안식년이라는 반전
반전은 지금부터입니다. 이제서야 사랑방이 어떤 조직인지, 그 안에서 어떤 역할과 고민을 해나가야 하는지 실마리를 발견한 것 같은데 사랑방은 밀어붙이기보다는 잠시 멈춰 숨을 고르라고 합니다. 2023년 4월 저에게 안식년의 차례가 찾아왔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긴 휴식에 대한 반가움보다는 당혹스러움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안식’이 필요한 타이밍이기보다는 더 속도를 내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성원들과 함께 논의하여 안식년은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안식년이라는 조직의 약속은 단순히 쉼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조직이 만드는 힘에 개별 활동가가 동화-동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변과 동료를 돌보고 살피는 시야와 감각을 함께 가져간다는 약속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제야 사랑방이라는 조직을 조금은 알 것 같은데, 열과 성을 다할수록 조직은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과 거리를 두고, 한 호흡 고르며 활동의 새 시즌을 준비해보라고 합니다. 그래야 조직도, 활동가도 건강하게 오래 활동할 수 있을테니까요. 동료들이 너무나 바쁘고 힘들게 움직이고 있고, 30주년을 계기로 사랑방을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많은 분들이 있는 힘껏 지지해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쉼에 미안함이란 감정이 따라붙지만, 일단은 다녀오려 합니다. 30주년을 마쳤다고 사랑방이 엮고 엮이는 일을 멈출 것도 아니기에, 감사한 마음과 동시에 가벼운 마음으로 안식년을 잘 보내고 오겠습니다. 사랑방 활동가로서 조직을 이해하는 저의 시즌1을 마치고, 새로운 시즌을 만들기 위한 몸과 마음을 준비해 다시 인사 나누게 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