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원
흔히 쓰는 ‘자존심을 세운다’ 내지는 ‘부린다’라는 표현을 들으면 ‘자존심’이 부정어처럼 들리는데, 심리학적으로는 자기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의미한다고 한다. 고로 자존심을 세우는 건 자기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가 타인으로부터 부정되는 경험 때문이 아닐는지.
민선
난 자존심이 센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제 자존심이 허락되지가 않네요” 양회동 열사가 남긴 말에서 자존심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나를 지키는 마음, 자존심을 세거나 약하거나처럼 크기로 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몽
'마지막', '남은', '지킨다'. 자존심을 떠올리니 앞뒤에 가장 많이 붙는 말들이 자연스레 따라온다. 가장 밑바닥에, 가장 중심에 남아 있는 것이기에 그만큼 소중하고 가장 절박한 것. 그리고 남아 있기 때문에 지킬 수 있는 것. 그걸 계속 잊지 않으려 한다.
어쓰
자존심이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이라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은 스스로를 존중할 수 없게 만드는 상황에 대한 저항일 테다. 국가가 나서서 노동자의 자존심을 짓밟는 지금, 노동자가 자기 자신을 존중할 수 없다면 대체 누가 그럴 수 있을까.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미류
2016년 동료의 죽음을 품고 노조 파괴에 맞서 싸운 유성기업 노동자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노동조합 파괴에 맞서 최전선에서 잘 싸우는 노동조합이라는 말도 들어요. 밖에서 그런 시선으로 보는 게 부담스러울 때도 있어요. 창피할 때도 있고. 그냥, 안 싸울 수 없는 거예요. 우리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거, 끝까지 싸우겠다는 각오만 다질 뿐이에요.” 함께 지켜야 지킬 수 있는 것이 있다.
해미
나의 ‘존엄’을 짓밟으려는 ‘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는 마음. 자존심. 그 마음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 죽음뿐이었던 건설노동자. 한 명의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지키려는 마음조차 기어코 짓밟은 공권력을, 언론을, 혐오와 차별을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다. ‘우리’의 자존심을 기어코 지켜내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
정록
민중가요 가사 중에 ‘노동자의 긍지와 눈물을 모아’라는 게 있다. 긍지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좋았다. 반면 자존심은 나에게 어색한 단어였다. 하지만 결국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우리 모두의 자긍심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