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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올해의 목표?

1. 

4월의 어느 날이었다. 함께 자리에 있던 친구가 “올해의 목표가 뭐냐”고 묻는데 말문이 막혔다. 올해의 목표? 사랑방 30주년을 잘 치르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당황했다. 이제 4월, 30주년을 핑계 삼으면서 그동안 미뤄둔 일들을 마주하며 비로소 올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 같은데, 올해의 목표는 벌써 이룬(?) 상황이라니! 아직 반도 넘게 남은 올해의 목표를 찾아야 할 것 같은 기분으로 그 자리를 나섰다. 어느덧 6월, 올해의 절반을 통과 중인 지금까지 이렇다 할 목표가 떠오르지는 않고 있다. 목표를 세워도 늘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닌데, 목표를 찾고 싶은 이 마음은 뭘까 싶다. 아마도 2023년을 어떤 해로 기억하게 될지, 조금은 더 선명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지 않을까.

 

2.

“제가 오늘 분신을 하게 된 건 죄없이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되지가 않네요”

노동자의 날인 5월 첫날, 양회동 열사의 분신 소식과 함께 유서로 남겼다는 글을 처음 봤을 때 어떤 상황이지 싶었다. 연초부터 계속 이어지는 압수수색, 각종 소식방에는 탄원서 연명 요청이 끊이질 않았다. 고용안정 요구를 ‘강요죄’로, 노조활동 보장 요구를 ‘공갈죄’로, 이러한 요구로 교섭하고 집회하는 것을 ‘협박죄’로 만들면서 현재까지 1000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기소되어 조사 받고, 20명에 이르는 이들이 구속됐다. ‘건폭’이라 지칭하며 ‘강경대응’을 주문한 윤석열 정권에 발맞춰 윤희근 경찰청장은 50명 특진을 내걸었고 원희룡 국토부장관은 건설업체에 ‘악명 높은 노조’를 신고하라며 포상금제도 도입도 밝혔다.

2년 전 철거 중이던 건물이 무너져내리면서 17명이 죽고 다친 광주 학동 참사에서 평당 28만 원이었던 철거 비용이 평당 4만 원까지 줄었던 다단계 하도급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드러났다. 작년 초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참사로 불법 다단계 하도급 속에서 무리한 공기 단축이 관행이 된 건설현장의 문제가 다시금 짚어졌다. 얼마 전 인천 검단 아파트 공사현장에서는 설계와 다르게 시공하면서 철근을 누락하며 지하주차장이 붕괴되는 일도 있었다. 건설회사가 더 많은 이윤을 가져가기 위해 하청에 재하청을 거쳐 빠르게 더 적은 비용으로 공사를 진행하며, 그 위험은 중대재해 절반에 이르는 건설노동자에게로, 부실시공된 건물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전가되어 왔다. 현장에서 이를 감시하고 제대로 시공할 것을 요구하며 싸워온 건설노조는 건설노동자의 안전과 더불어 우리 사회의 안전을 지어왔다.

3.

양회동 열사를 죽음으로 내몬 정부와 경찰은 그 책임을 촉구하는 건설노동자의 집회를 ‘평온한 일상을 훼손하고 불편을 초래한 불법집회’라며 강력처벌을 말하고, 집회를 통제하고 억압하겠다는 의지만을 세우고 있다. 건설노동자 국가폭력을 규탄하는 인권단체 기자회견에 함께 했던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이 싸움의 끝이 무엇이어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현장에서 일할 때 우리는 이름이 없었습니다. 잘해야 아저씨, 아니면 여기요 저기요 라 불렸고, 기분 나쁘면 이 새끼 저 새끼라고 불렸습니다. 건설노조를 하고 나서부터 드디어 이름으로 불릴 수 있게 됐습니다. 누구누구 씨, 반장님 존칭을 듣게 됐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면서 욕을 듣지 않게 됐습니다.”

“건설노조를 하고 나서 가족과 저녁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연한 일상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바로 노가다라 불려온 우리였습니다. 건설노조를 하면서 내 집과 가까운 현장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고 일 끝나고 가족과 저녁을 먹게 되는 일상을 누릴 수 있게 됐습니다.”

“탄압하는 정권과 경찰, 검찰에게 말합니다. 탄압하고 싶으면 하세요. 우리는 버틸 겁니다. ‘다시는 노가다로 돌아가지 않겠다’, 사람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권리도 누리지 못했던 과거로 돌아갈 것을 거부합니다. 이게 바로 열사의 뜻입니다. 그때까지 질기고 질기게 투쟁해서, 결국은 건설노동자의 인간다운 권리를 더욱 확장시킬 것입니다.”

기자회견에 함께 했던 건설노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건설노조가 쌓아온 시간은 한 사람으로 이름을 되찾고 존엄을 세워온 시간이구나, 그렇게 양회동 열사가 지키고자 했던 ‘자존심’을 더 생각해본다. 건설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이름을 되찾고 존엄을 세워온 시간을 자긍심으로 계속 이어가는 것, 그렇게 이 싸움의 끝을 우리가 함께 만들겠다는 다짐을 세운다.

4.

올해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 떠올리며 세우고 싶었던 목표는 아직 손에 잡히지 않는다. 건설노조, 구속되고 기소되는 조합원들, 그리고 양회동 열사 모두의 ‘사회적 명예회복’ 문제이기도 하다는 지금의 투쟁에 나의 자존심을 함께 엮고 싶다. 우리의 자존심으로 저들이 무너뜨리려는 것을 함께 지킨 오늘을 보내고 싶다. 그렇게 올해를 기억할 수 있길 바라며, 몸을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