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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할 자유! 연대할 권리!를 위해 희망의 버스는 여전히 운행 중

6월 16~17일 희망과 연대의 날을 준비하며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대학 신입생 때였다. 모든 게 신기하고 처음 접하는 일 투성이였던 그 때, 과방이라고 불리는 학생공간에는 학번별로 서로의 이야기를 적는 노트가 있었다. 일종의 인터넷 게시판과 같은 노트였다. 인터넷 서핑 하듯, 다른 학번들의 노트를 보다가, 스크랩된 낡은 신문 기사 하나를 봤다. 대충 'MBC 파업에 함께하는 정은임 아나운서'라는 제목의 간략한 인터뷰 기사였던 것 같다. 라디오를 거의 듣지 않았던 난 정은임이 누구인지도 몰랐고, 스크랩된 기사를 보고 그냥 학과 선배인가 보다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90년대 라디오키드들에겐 정은임, 정성일 콤비의 '정은임의 영화음악실'은 전설이었다.

정은임이 누군지도 몰랐던 나에게 대학 신입생 때의 스크랩된 기사를 환기시킨 건, 희망버스였다. 희망버스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가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고,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 오르게 된 이유, 크레인에 먼저 올랐던 김주익 이야기, 그리고 2003년 10월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로 복귀한 이튿날 방송된 다음과 같은 오프닝 멘트까지. 김진숙, 김주익, 정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새벽 세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 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구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 2003년 10월 22일.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오프닝.


희망버스는 동시대인들의 뜨거운 연대

정은임이 김주익에게, 하루하루를 버틴 이들에게 건넨 말은 희망버스가 김진숙에게, 정리해고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2003년 정은임이 방송국 아나운서/대기업 노동귀족이라는 구획을 넘어서 동등한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겨우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를 버틴 사람들'에게 가슴 깊은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면, 2011년 희망버스는 공감과 위로만이 아닌 시민/전문시위꾼/경쟁력 없는 조선소 노동자라는 구획을 넘어 자본의 셈법 속에서 삶이 휘둘리고 파괴되는 동시대인들의 뜨거운 연대였다.

김진숙을 살리기 위해, 한진노동자들의 투쟁을 알게 된 이상 외면할 수만은 없어서 희망버스에 탔던 많은 사람들은, 그 속에서 오히려 해방감을 느꼈다. 이 지독한 자본의 폭력에 맨몸뚱이 하나로 맞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리고 자신도 그 사람 중 한 명이 되면서, 힘없는 사람들이라도 이렇게 모이면 조남호도 불러내고, 국회의원도 불러내고, 언론도 불러내고, 사람도 살릴 수 있음을 느꼈다. 희망버스는 특정 조직이 아닌, 자발적 개인들이기에 강력한 게 아니다. 희망버스야말로 가장 강력한 조직이었다. 85호 크레인에 공감하고 연대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정리해고를 철회시키고 조남호를 무릎 꿇릴 수 있을지만 고민하고 고민한 그대로 행동했다.

언젠가부터 대규모 집회에서 의례히 등장하던 경찰과의 협의, 일정 수준에서 멈추는 투쟁, 빤한 집회 일정은 희망버스와 거리가 멀었다. 희망버스는 차벽에 막히면 돌아가고, 공장 담을 넘어가고, 경찰 앞에서 밤새 버티면서 기어코 목적지에 도착했던, 경찰이 예상할 수 없는 강력하고 유연한 조직이자 연대였다. 실제로 경찰은 2012년 집회시위 관리지침에서 희망버스를 '예측 곤란한 집회'로 규정하고 있다.


희망버스 사법탄압 맞선 '돌려차기'

지난 한 해 동안 '연대의 힘'을 실감했던 저들은 그런 '연대'를 산산조각 내기 위해 '희망버스'를 '김아무개'라는 개인으로 나누어 각개격파 하려고 한다. 희망버스에 함께 했던 수많은 이들의 집으로, 직장으로 소환장을 남발해 검찰과 경찰 조사를 진행했고, 이미 150여명을 약식기소 했다. 그 중 10여 명은 정식기소되어 재판을 진행 중이다. 그렇게 광범위하게 경찰 조사를 하고 벌금명령을 내리면, 우리가 겁먹을 줄 알았나보다. 그래서 보란 듯이 지난 5월 9일 기자회견을 했다. 니들이 원하는 대로 겁먹고, 벌금내고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있지 않겠다고 말이다. 희망버스 사법탄압에 맞선 '돌려차기'를 시작한 것이다. 벌금명령에는 가능한 모두 정식재판을 청구해서 왜 이 벌금을 낼 수 없는지, 집회할 자유와 연대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음을 주장하려고 한다. 그래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도 있는 정식재판비용을 희망버스에 함께 했던 모두가 공동부담하기로 했다.

'돌려차기'는 함께 했던 투쟁에 대한 탄압에, 함께 맞서겠다는 아주 당연하면서도 상식적인 대응이다. 그럼에도 '돌려차기'가 특별한 이유는 그런 상식적인 대응이 지금까지 잘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그 대응을 개인들의 재판비용 지원에 가두지 않는 사회적 투쟁으로 만들어내겠다는 계획 때문이다. 국가는 사인(私人)간의 분쟁이라며 세입자/개발조합, 노사 간 갈등과 문제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지만, 억압받는 사람들의 투쟁은 언제나 적극적으로 탄압하고 공적(公的)인 질서를 어지럽힌다며 형사처벌 해 왔다. 투쟁하는 노동자, 농민, 철거민들은 집시법, 도로교통법 위반죄로 기소되는 일을 늘 당해온 것이다. 그리고 검․경은 희망버스의 경우와 같은 사회적 연대에 대해서는 특히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약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돌려차기'는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제약을 투쟁하는 이들이 늘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으로 '익숙하게' 여기지 않는다. 집회시위의 자유가 얼마나 비상식적으로 침해되고 있는지, 저들이 말하는 자유가 얼마나 기만적인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법정에서, 거리에서 투쟁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끈질기게 싸워나갈 것이다. 6월 16-17일 '희망과 연대의 날'이 그 시작이다.
덧붙임

정록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에서 발행하는 <질라라비>에도 동시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