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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를 넘어 탈핵으로

누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날 거라고 예견했을까. 바다로 땅으로 흘러 들어간 방사능 물질에 의한 피폭 피해는 장기간에 걸쳐 일어나므로 그 규모는 아직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일본 정부가 앞으로 30년 혹은 그 이상, 핵폐기물 처리를 포함한 폐로 작업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문제가 되고 있는 오염수 방류 역시 그 과정 중 하나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의 문제는 현존하는 핵발전소의 운영과 그 관리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라는 관점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오염수 방류에 정당한 이유가 없다

일본 정부는 다른 대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용과 시간을 이유로 방류를 택했다. 이에 대해 정부여당은 ‘과학’에 기반하여 안전성이 검증되었기 때문에 방류는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야당은 굴욕적인 친일외교의 결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험에 처했다고 비판하며 방류 철회 단식에 돌입했다. 정부여당은 제2의 광우병 사태를 걱정하며 85% 가까운 방류 반대 여론을 민주당이 괴담을 퍼트린 탓으로 돌리고 오염수 방류를 과학 대 비과학의 대결 구도로 몰아간다. 다른 한편, 후쿠시마 원전 항만에서 잡힌 우럭이 기준치의 180배에 달하는 세슘이 검출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마치 집앞 횟집의 우럭 또한 그렇게 될 것이라며 과도하게 위험을 강조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정부는 오염수에 관한 근거 없는 ‘괴담’ 유포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양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관해 일일브리핑을 발표하고 정책뉴스포털에 특별페이지를 개설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전문가’로 구성된 ‘가짜뉴스 신속 대응 자문단’도 꾸려 선동적 괴담 생산과 전파를 막겠다고 한다. 정부여당이 과학적 판단을 강조하는 것과 다르게 실제 우리에게 오염수를 위험 혹은 안전하다고 판단할 만한 정보나 과학적 근거, 제기된 우려를 해소할만한 충분한 과정은 없었다. 후쿠시마 시찰단의 현장점검 활동은 시료를 채취해 독자적인 검증 없이, 오염수 및 삼중수소를 희석하는 설비의 작동을 살피는 활동에 그쳤다.IAEA(국제원자력기구)는 3차례 하기로 했던 오염수 시료 분석을 1차례만 하고, 환경 모니터링 결과를 ‘확증’하기 위해 실시한 환경 시료 분석이 끝나기도 전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계획이 국제 안전기준에 부합한다는 최종 보고서를 발표했다. 대통령실은 즉각 원자력 안전 분야의 대표적 유엔 산하 국제기구인 IAEA의 과학적인 검증결과를 존중한다고 밝혔다.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결과를 납득하기 위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조건도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금 정부는 오염수 방류가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현대사회는 다양하고 불확실한 위험에 둘러싸여 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같은 대형 참사에서부터 기후위기, 코로나와 같은 펜데믹까지 불확실한 위험과 안전사고는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일상적 조건이다. 오염수 방류가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게 일본 정부와 IAEA, 나아가 한국 정부도 공유하는 주장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오염수 방류로 인한 피해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 원전 지역 주민들의 갑상선암 발병과 원전 사이 인과관계가 확정되지 않았다고 원전 지역이 안전하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국가는 사회 구성원에게 미칠 불확실한 위험을 예측하고 이를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만들어가야 한다.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는 진실은 진실이 되지 못하듯, 과학적 진실 또한 사회적 논쟁과 의문과 의심이 경합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사회적 구성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최소한의 과정이 전제되지 않는 지금, ‘과학’을 동원해 오염수 방류를 일본 정부도 아닌 한국 정부가 나서서 적극 찬성할 이유는 없다.

 

오염수 방류만 문제인가

오염수 방류가 별 문제 없다는 쪽에서는 이미 국내외 원전의 정상적인 가동에 따른 삼중수소를 포함한 냉각수가 방류되고 있고, 그 양이 후쿠시마 오염수가 포함하고 있는 삼중수소의 양보다 훨씬 많다며 오염수의 안전성을 역설하고 있다. 실제로 해양 생태계는 핵폐기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194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해양 핵실험은 수십 차례 이뤄졌고, 핵폐기물 해양 투기의 문제도 꾸준히 제기되었다. 1993년 일본이 러시아 해군이 동해에 중고원자로 등 핵폐기물 해양 투기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 정부는 일본 정부가 동해로 핵폐기물을 무단 방류한 사실과 그 양이 러시아의 투기양의 10배에 달한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지난 역사는 핵이 인류와 생태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기 위해 해양 핵실험이나 핵폐기물 해양 투기를 막는 국제적인 합의와 기준을 만들어가는 시간이었다. 이제 해양 핵실험이나 고준위핵폐기물을 해양에 투기하는 일은 금지되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일본 정부는 저장 부지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결정했다. 다른 한편 원전을 운영하는 모든 국가가 IAEA 지침에 따라 삼중수소 배출 농도 기준치를 각각 정한 뒤 이에 맞춰 바다에 냉각수를 방류하고 있고, 이러한 국제적 ‘관례’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의 명분이 되어주고 있다. G7 또한 IAEA의 검증을 지지하면서 중대 원전사고에 따른 오염수의 해양 투기를 국제사회가 승인하는 모양새가 만들어졌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사실상 핵 에너지를 이용하며 해양 생태계로 위험을 전가해온 국제 핵발전 공조 시스템의 결과 그 자체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때로는 어민이 생업의 위기를 겪고, 때로는 발전소 노동자와 주변 지역 주민들이 피폭을 경험하게 된다. 오염수 방류는 핵발전을 운용하면서 인류가 마주하고 있는 보편적인 위험의 단면이자 앞으로 계속해서 마주할 일상적인 위험의 한 양상이다. 새롭게 등장하거나 이례적이고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핵발전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부정의한 문제가 오염수 방류라는 형태로 가시화된 것이다.

 

핵발전을 확장하는 힘에 맞서는 계기로

국내에 26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고 3기의 신규 핵발전소가 지어지고 있다. ‘핵발전 확대'가 기조인 윤석열 정부에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핵발전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이 ‘안전’하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기회이기도 하다. 핵발전은 확장일로인데, 사용 후 핵연료를 보관하는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 저장시설은 국내에 단 한 군데도 없다. 2030년까지 고준위핵폐기시설을 확보하지 못하면 원전 운영이 어려워질 거라는 전망 속에서 이를 건설하는 사회적 논의는 시작도 못했다. 자연상태로 돌려보내는데 10만년이 걸린다고 한다. 현재 기술로는 땅 속 깊은 곳에 묻어 영구보관하는 것 외에 방법 밖에 없다. 그로 인한 결과는 불확실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건 핵발전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유일한 주장이기도 하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막기 위해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지금 우리가 넘어야 할 것이 그저 방류를 하지 않게 하는 것으로 그칠 수 없는 문제라는 점을 함께 직시하자. 핵으로부터 자유로운 세계에 살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싸움이 될 때, 오염수 방류의 문제도 근본적으로 해결가능하다. 오염수 방류 저지를 넘어 핵발전을 확장하는 힘에 맞서는 투쟁으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