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활동 이야기

체제전환운동포럼이 남긴 숙제

 

 

시간이 어떻게 흘렀던 건지, 벌써 까마득하면서도 어제처럼 생생하다. 본격적으로 준비한 기간이 두 달 남짓이고 보면, 정말 많은 열정과 관심이 모인 시간이었다. 공동주최로 함께한 단체들, 각 세션을 준비하기 위해 모인 이들, 포럼 홍보와 진행을 맡아 모인 이들이, 마치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이들처럼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대관한 장소의 좌석 수를 훌쩍 넘기며 참가 신청이 쏟아졌던 것도 그런 기운이었을 거다. 무언가, 다르게, 함께, 만들어가고 싶은 마음들. 그것을 ‘체제전환운동’이라 불러보자는 이들이 포럼에 모였다.

 

서로 가로지르며 자본주의 체제 너머를 그리다

《2024 체제전환운동포럼》은 일곱 개의 ‘가로지르길 세션’과 한 개의 ‘종합세션’으로 구성되었다. 모든 세션에 앞서 열린 오프닝 세션 <이때다 체제전환!>은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이 ‘자본주의 체제’라는 점을 밝히며 시작되었다. 자본주의는 ‘경제’에 한정되지 않는, 시대의 다른 이름이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분석과 비판의 틀을 확장하며 우리 앞에 드리운 위기를 더욱 분명히 이해하고, 적대와 모순이 드러나는 양상과 현장을 살피는 게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각 세션이 어떤 고민을 담고 있는지를 소개했다. 자본주의 ‘체제’가 입체이므로 체제전환운동도 평면일 수 없다. ‘가로지른다’는 문제의식은 여러 주제나 운동을 나열하는 방식을 넘어서보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세션마다 기획 의도나 문제의식은 조금씩 달랐다. 세션을 함께 준비한 사회운동의 조건이나 고민이 달랐기 때문이다. 첫 세션인 <주거권과 가족구성권, 하나의 지도 만들기>는 주택이라는 재화의 소유와 분배를 중심으로 활동해온 주거권운동과, 가족이라는 관계를 안팎에서 재구성하며 활동해온 가족구성권운동이 한국의 주택/부동산 시장 구조에서 어떻게 만나게 되는지를 찬찬히 살피는 시간이었다. 두 번째 세션인 <불평등을 가르치는 학교에 저항하는 연대를 위하여>는 ‘학교’라는 현장에서 이미 마주치고 있는 운동의 주체들이 점점 더 연대하기 어려워지는 조건을 살피며 운동의 전망을 재구성하고 주체를 새롭게 호명해야 할 필요성을 함께 토론했다.

둘째 날 오전에 열린 <자본에 포획된 농업으로부터 정의로운 전환>은 주제 자체로 환호를 받은 세션이었다. 땅, 농사, 먹거리 등 우리의 삶을 순환시키는 바탕이었던 ‘농(農)’이 한국 자본주의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무너지고 훼손되었는지 살피며 ‘농민’의 운동이 아닌 모두의 운동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살폈다. 둘째 날 오후 <지금 여기, 체제전환 페미니즘>은 참여 신청이 가장 많았던 세션이다. 체제의 모순과 적대가 어떻게 구성되고 발현되는지 살피는 사상으로서 페미니즘을 사유하는 운동들이 지금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을 통해 본 체제전환의 과제가 무엇일지 활발한 토론이 이어졌다. 이어진 세션 <기후위기 시대, 공공재생에너지로 체제전환운동을!>은 토론의 쟁점을 던지기보다 공공재생에너지운동을 통해 체제전환운동을 전면화해보자는 제안을 다양한 위치에서 건네는 시간이었다. 둘째 날 저녁에 열린 <체제전환을 향한 노동/운동의 도전>에서는 체제전환운동이 ‘노동’을 말하는 이유를 다시 질문하면서, 자본주의 체제가 규정하는 ‘노동’의 의미망을 넘어선 담론의 가능성을 탐색하며 운동의 도전이 어떻게 이어지면 좋을지 토론했다.

 

종합세션 <자본주의를 질문하기, 체제전환을 모의하기>

[사진] 종합세션 <자본주의를 질문하기, 체제전환을 모의하기>

셋째 날 오전은 <도래하는 전쟁위기에 맞서 사회운동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국제질서의 변동과 동아시아 전쟁위기 등을 살피기 위한 여러 고민이 제기되었다. 오후 종합세션은 <자본주의를 질문하기, 체제전환을 모의하기>였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자본주의가 어떤 변화를 만들어왔는지, 사회운동의 대응이 어떤 곤경에 처하게 됐는지를 살피며 체제전환을 위한 민중의 세력화에 나서자고 제안했다. 이어진 폐막식 <봄을 부르는 편지>는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마무리되었다.

 

체제전환운동의 정치를 기대하며

모든 세션이 200~250명의 참여로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세션마다 시간이 부족해 쫓기듯 발제와 토론이 이어진 아쉬움이 모두에게 남았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서로 다른 고민을 나누며 함께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만큼 모이는 자리가 드물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활동가들이 모여있는 채팅방에는 끊임없이 토론회, 간담회, 강좌와 같은 홍보물이 올라오지만 어떤 영역이나 의제를 넘어서 가로지르는 시도들이 적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각자 노동운동, 여성운동, 인권운동, 기후운동 등을 하지만 ‘사회운동’의 일원으로 무언가 함께 도모하는 경험은 귀해진 것이다. 어떤 운동도 저홀로, 저절로 체제전환을 이룰 수 없다면 서로를 가로지르며 자본주의 체제의 역동을 더욱 구체적으로 발견해내고 투쟁을 조직하고 공동의 실천을 만들어가는 긴 과정에서 운동들이 상호의존의 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숙제로 남았다.

거기서 체제전환운동의 정치가 시작되는 게 아닐까. 한 단체의 자원활동가가 포럼에 참여한 후 ‘정치적 감각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정치라는 것이 나와 무관한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움직이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일이라는 감각. 그건 우리가 ‘개인’이 아닌 어떤 ‘세력’으로 서로를 인지하는 과정을 통해 가능해진다. 내가 겪는 문제를 타인이 부딪친 문제와 연결하고, 세계에 대한 감각 속에서 문제의 해결 방안을 찾는 일. 누가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움직일 때 세계가 달라질 수 있겠다는 기대. 이런 경험들을 끊임없이 조직하고 확장하고 축적하는 것이 체제전환운동의 정치일 것이다.

포럼에서는 여러 차이들도 확인되었다. 각자의 경험이나 위치에 따라 다른 생각, 다른 평가들을 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바로 그 차이가 발견되는 자리가 함께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리가 된다. 하지만 차이를 확인하는 만큼 토론을 회피하게 되는 경향은 현실적이다. 차이를 반기며 토론을 이어가는 방향으로 바꾸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이 역시 체제전환운동이 만들어낼 변화여야 한다. ‘우리의 대안을 조직하자’는 체제전환운동포럼의 제안은 그저 정책들을 모으는 것일 수 없다. 대안이 현실이 되어가는 시간을 함께 만들어갈 세력을 조직하는 것이어야 한다.

숙제가 남아서 설레는

공동집행위원장이라는 역할에 더해 종합세션 발제를 맡게 되면서 꽤나 무리를 했다. 체력이 한 계단 아래로 떨어지는 걸 실감하면서도, 함께 준비한 시간이 무척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처음 만난 사람은 드물었지만 오래 같이 일해본 사람도 드물었다. 서로 사용하는 언어나 운동에 대한 감각이 다르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낯설고 어색하던 시간이 서서히 다른 언어와 감각을 배우는 시간으로 변화해간 경험이랄까. 짧은 준비기간에도 이런 시간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함께하는 이들이 모두 간절한 마음이었기 때문인 듯하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 어렵게 시작한 자리에서 서두르기보다 꾸준히 함께 가볼 힘을 잘 만들어가야겠다. 3월 23일 토요일에 열릴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가 그런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라며 준비하고 있다. 많은 숙제가 남았지만 혼자 하는 숙제가 아니라 꽤나 설렌다. 

 

함께하러 가실래요? :) 체제전환운동 홈페이지로 살피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