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31일 인권운동사랑방 30주년 행사를 마침과 동시에 떠났던 안식년을 무사히 마치고 2024년 4월부로 사랑방에 복귀했습니다. 지난 안식년을 돌아보면서 ‘정말 야무지게 잘 놀고, 잘 쉬었다. 미련 없이 복귀하자!’라는 마음과 함께 출근을 시작했는데요. 그리곤 고개를 앞으로 돌려 현실을 직시하려니 왜 이리 캄캄한지 모르겠습니다. 사랑방 활동을 시작할 때 무턱대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결심을 떠올리기도 했는데요. 그때는 뭘 해야 하는지 몰라서 뭐든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컸던 거 같은데, 지금은 아는 맛이라 그런지 활동가의 생활을 다시 시작하려니 두려움이 상당히 크네요. 그래도 동료들 덕에 안식년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던 만큼 복귀도 동료들을 믿고 일단 잘 따라가 보자는 마음을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복귀 직전 사랑방 동료들과 주변의 활동가 친구들을 만나다 보니 아차 싶더라고요. ‘설마, 내가 지금 가장 무서워해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동료들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꾸준하게 사랑방 소식을 받아보시는 후원인께서는 무슨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공백의 시간을 보낸 저에게 사랑방 활동이 1년 만에 급격하게 바뀐 느낌이 들었거든요. 우리가 사는 사회도 운동도 이대로는 아닌 것 같다는 감각에서부터 출발해서 다르게 움직일 수 있는 길을 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길내는 모임’을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그 모임이 좌충우돌,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작게나마 새로운 동료들을 만나고 야금야금 길을 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불과 1년 만에 길을 내는 정도가 아니라 체제를 전환하자는 운동으로 나아가고 있더라고요.
요즘같이 어지러운 세상을 살면서 세상 좀 바뀌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어떻게 바뀌는 게 필요한지 구상하고, 그렇게 바꿔나가기 위해 누구랑 무엇을 해나갈지, 무엇보다 직접 실천으로까지 옮기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는 점이 어려움인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의 동료들은 어렵다고 아무것도 안하면 세상 바뀌겠느냐 싶었는지 과감히 세상 바꾸고 싶은 사람 모여보자고 외치기 시작했더라고요. 우리 동료들이 원래 포부가 작은 친구들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는 했는데, 제 예상보다 훨씬 크더군요. 덜컥 겁이 나긴 하더라고요. 내가 동료들처럼 잘해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말이죠.
아시다시피 사랑방은 물론 체제를 바꾸고 싶은 활동가들이 모여서 궁리하고, 준비해 외친 결과 체제전환 포럼과 정치대회가 성황리에 개최되었습니다. 저도 안식년 복귀 전 예습하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참여했는데요. 체제전환이라는 거대한 담론까지 나아가려면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조건부터 따져봐야 한다는 이야기부터, 또 과거 사회운동이 체제를 바꾸기 위해 모이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동반해왔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무수한 이야기가 모이는 장이 펼쳐졌습니다. 연결과 교차만이 아니라 배치되고 상반된 이야기까지 쏟아지는 가운데, 이 많은 이야기를 체제전환을 위한 발판으로서 끊이지 않도록 엮어내는 활동을 만드는 동료들에게 박수를 보내게 되더군요. 불과 1년 만에 여기까지 달려온 동료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애썼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네요.
복귀와 동시에 태풍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지만, 당장 지금 22대 총선만 보더라도 체제전환이라는 태풍은 아직은 작기만 한 것 같습니다. 더 크고 강력한 바람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겁이 나는 마음은 내려두고 태풍으로 뛰어들어야 할 텐데요. 그렇다고 당장 큰 바람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해서 너무 조급해하거나 초조해지는 마음도 갖지 않으려고 합니다. 저는 체제가 전환되는 과정을 상상할 때 정해진 정답을 찾는 과정보다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와서 연결되는 모양을 먼저 떠올리는데요. 누구도 남겨두지 않고 함께 평등한 체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모두가 연결될 수 있는 풍성한 이야기가 가득해야 할 것만 같아서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한숨 고를 여유를 가져야 체제전환 하자고 한발 먼저 나선 동료들에게 곁을 내어줄 여유도 남겨두고, 저도 차근히 활동가로서 저의 이야기를 꺼낼 준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체제전환의 길에 이제 막 올라서지만 다채로운 색깔을 지닌 이야기들이 마주할 수 있는 길이라는 기대를 품고 한발 한발 나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활동의 자리에서 만나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