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을 하는 활동가라면 국가인권위원회 홈페이지에 들락날락할 일이 많습니다. 우선 차별 시정 결정례를 참고해야 할 일이 워낙 많으니까요. 어떤 차별사유로 인한 진정이 많아지고 있는지, 개인에 대한 차별 구제를 넘어서 적극적 시정 조치가 권고된 사례들은 무엇이 있는지, 개인이 진정을 하지 않거나 진정이 각하되었더라도 국가인권위가 직권․전수조사를 통해 개입한 차별 사안은 무엇인지… 최근 현황과 사례, 결정 흐름을 살피는 일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에서는 꽤나 중요한 일이랍니다. 특히 차별과 관련한 사회적 쟁점을 제기하고,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과 사회의 변화를 연결하는 반차별 담론 형성을 중요한 역할로 삼고 있는 ‘정책담론팀’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작년 하반기에 정책담론팀은 작심하고 2017~2021년 사이 이루어진 국가인권위 결정들을 20여 가지 차별금지사유별로 샅샅이 검토하고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함께 결정례를 검토할 때의 장점은 동료 활동가들의 시선을 통해 내가 전혀 떠올려보지 못한 쟁점들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개별적인 차별 사안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경향이나 흐름을 발견하기도 수월합니다. ‘이건 지금 제정운동이, 한국사회가 더욱더 주목하고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하지 않을까?’ 몇 개월 동안 이어진 결정례 스터디를 통해 정책담론팀이 발견한 경향 혹은 흐름은 1) 호주제 폐지 이후에도 성차별과 결부된 가족차별은 여전히 공고하게 남아 있고, 2) 성폭력․성희롱 외에도 일터에서의 성차별 양상이 다변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3) 차별 진정과 결정례에서조차 인종차별은 그 심각성과 해악에 비해 극도로 비가시화 되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4)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가 더욱 심화하고 있지만 현재의 반차별 법제에서는 사회경제적 지위나 빈곤의 자리를 아주 구체적으로 떠올리기 어렵다는 곤란함도 느꼈고요. 학력이나 출신학교, 혹은 ‘사회적 지위’에 포괄되는 고용형태로 인한 차별 사안들에서 언뜻 언뜻 연속선을 짐작하고 유추해볼 뿐이었죠. 그래서 ‘우리끼리만 보고 지나가기엔 너무 아쉽잖아?’ 하는 마음에 네 가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릴레이 북토크를 진행해보기로 했습니다. (물론 그때는 몰랐죠. 한 달 반 동안 4권의 책 독파하기 혹은 다시읽기 미션에 쫓기는 나날이 될 줄은…)
서로의 용기를 배우는 시간
‘지금 같은 때에 책을 읽어서 뭐해요~’ 첫 북토크가 열리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지하 1층에 일찍 도착한 『가족각본』의 저자 김지혜 님과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자 울상인 표정을 짓습니다. 워낙 뒤숭숭한 시절이다 보니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인사를 나눕니다. 차제연이 떠들썩하게 활동을 해나가는 것도 아닌데, 책을 읽고 뭔가를 계속 배운다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싶을만도 한데, 이런 자리를 열면 20~40명 사이의 사람들이 꼬박꼬박 자리를 지키는 것이 신기합니다. 차별 시정 사례를 살펴봐도 매년 이렇게 차별에 직면할 용기를 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도 궁금합니다. 4차 북토크에 패널로 온 빈곤사회연대 윤영 활동가는 전세사기 피해자들과 농성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물을 틀었는데 ‘왜 아직도 이렇게 물이 나오지?’ 신기했다고 합니다. 각개전투 모든 것을 알아서 감당하고 살아야 하는 엉망진창 아슬아슬한 세상인데, 아직 아무도 수도에 독을 풀거나 수도관을 폭파하지 않고 상수도는 유지되고 멀쩡하게 물이 나오는 일상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진다고요. 어쩌면 이런 자리는 어떻게든 안간힘을 써서 직면하고 있는 각자의 현실 속에서 서로의 용기를 배우는 시간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 번의 북토크에서 다룬 수많은 논의를 요약‧압축할 역량은 없지만, 그것만큼은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1회차 <사라진 호주제? 공고한 가족질서를 넘어서>에서 『가족각본』의 저자 김지혜 님은 무엇보다 현재의 사회적 불평등에서 핵심고리가 ‘가족 불평등’일 수 있다는 점을 떠올려보게 합니다. 개개인들에게 왜 가족이 변화가능한 제도라기보다 바뀌기 어려운 규범으로 여겨지게 되었는지를 가족 내 ‘며느리’라는 여성적 지위, 성소수자의 존재와 가족실천, 법률혼 외부에서 태어난 아동의 관점 등 다양한 차원에서 다시보기를 요청합니다. 결국 사람을 ‘인구’로 여겨온 유구한 역사 속에서 가족이 부양․돌봄․친밀성에 기반한 관계가 아니라 성별로 분업화된 제도가 되고, 이러한 가족을 벗어난 관계나 생명이 불행한 삶이라고 낙인찍고, 그 불행의 책임자로 가족제도 밖 시민들을 지목하는 구조를 바꾸어야 하는 문제이죠. 한국여성민우회의 류 활동가가 제안한 두 가지 방향은 친밀성과 돌봄 위기의 시대를 돌파하는 핵심이기도 합니다. 기존 법제도와 복지체계가 가족이 아닌 ‘개인’을 기반으로 재구성되어야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원하는 돌봄과 생계, 상호의존의 관계를 ‘가족을 구성할 권리’로서 확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관계를 지지하고 지원하는 것으로 국가의 역할을 설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2회차 <일하는 여성들의 딜레마, 평등으로 전망 찾기>에서 일하는 2030 여성들의 삶에 대한 김현미 님의 이야기가 읊어질 때마다 곳곳에서 탄식이 새어나왔습니다. 『흠결 없는 파편들의 사회』에 빼곡히 담겨 있지만 많은 여성들에게 일터는 자신의 성장과 삶은 안정성을 얻기 위해 가야하는 ‘목적지’이기도, 부정의와 경쟁이 기본이기 때문에 또한 도망가고 싶은 ‘격전지’입니다. 산업구조, 가족가치관, 여성의 생애주기도 모두 변화했지만 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회, 사회안전망은 없고 모든 것이 상품화된 사회에서 여성들은 ‘고비용 라이프스타일’을 적응하거나 과시하며 분투합니다. 일터는 여전히 평평하지 않은 경기장이고 사다리는 부러져 있지만, 신자유쥬의의 자기 개선 요구에 스스로 부응하기 위해 애쓰죠. 생애 전반의 불안정성은 더 높아졌는데 능력으로 무장된 자아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자아를 오가며 심리적 위축감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김현미 님은 바로 여성들이 겪는 모순과 괴리를 사회가 해석하고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우리 자신에 대한 당부도 있습니다. ‘페미니스트 타이밍’에 대한 막연한 약속을 하기보다, 지금 일터의 성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해결을 촉구하고 공통적인 페미니스트 실천이 집결될 수 있도록 만들어가자고 제안합니다. 직장갑질119 젠더폭력특별대응위원회 여수진 님 또한 평등과 민주주의에 대한 기업과 사용자 책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파편’들이 모여서 목소리를 내자는 용기를 전해주셨고요. 여수진 님 기대처럼 차별금지법의 ‘성차별적 괴롭힘’이 일터의 민주주의에 도전하고 권리를 확보하려는 여성들에게 목소리를 더해줄 수 있기를 바라게 됩니다.
3회차 <그림자 속 온실, 이주민과 평등의 단서>에서는 오랜 반차별 운동의 동료인 이영, 정혜실 님을 만났습니다. 『그림자를 찾는 사람들』에는 이영 님이 인터뷰한 40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목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실제로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QR 코드가 담겨 있습니다. 정책담론팀이 한국사회 인종차별의 특징을 ‘비가시화’라고 짚었던 것처럼, 이영 님 역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목소리가 감춰져 있다고 생각해서 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열악한 일자리와 주거시설의 참혹함은 우리가 익히 알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족동반을 허용하지 않는 제도의 비인간성, 강제퇴거의 두려움이 항상 자리하고 있는 일상은 ‘이주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라, 외주화를 통해 손쉽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한국사회의 문제입니다. 최근 알려진 자유통일당 박진재 국회의원 후보 일당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불법단속과 감금․갈취․폭력 사태는 더 나아가 인종차별을 정치화하려는 극단적인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정혜실 님도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노동현장에서 내국인과 외국인 노동자가 서열화, 분절되고 연대의 가능성이 약해진 현실 또한 개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제도화된 인종차별이 촉발한 근본적인 차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빈곤과 양극화, 외주화로 모두를 이끄는 자본주의 체제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 이영 님이 힘주어 말한 질문이 계속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4회차 <빈곤, 취약한 삶들과 마주한다는 것>은 가장 많은 사람들의 참여로 이루어졌습니다. 『빈곤 과정』을 쓴 조문영 님의 고민처럼 차별금지법의 여러 차별금지사유들과 빈곤을 동일한 차원에 놓을 수 있을까, 빈곤과 차별의 관계를 어떻게 인식해야 할지를 마주하고 싶은 분들이 함께한 자리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빈곤‘과정’이라는 책 제목에서 짐작해볼 수 있듯이, 빈곤은 어느 한순간을 포착한 스냅샷 형태로는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마냥 무기력한 상태에서 다다른 결과만도 아니지만, 계속 뭔가를 시도하고 다른 삶에 대한 기대 속에서 한 걸음 내딛는 과정은 잘 상상되지 못합니다. 가장 핵심적인 기초생활보장제도는 한국사회가 ‘수급’을 경유해서만, ‘수급자’에 부착된 의미망을 통해서만 빈곤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빈곤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요. 조문영 님은 우리가 빈곤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어떤 빈곤이 어떤 방식으로 쟁점화되거나 외면되는지를 주목하고,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지금 이 시대의 빈곤의 모습에 우리가 더 다각도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열렬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연구비, 장학금, 프로젝트 사업비, 예술지원금 등 다양한 수당 형태의 분배정치 속에서 살아가는 불안정 노동자들의 문제는 빈곤이 예외적 존재들의 문제로 한정될 수 없다는 걸 역설하고 있습니다. 빈곤사회연대 윤영 활동가의 지적처럼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은 20년 넘게 확장되어 온 신자유주의의 시간 그 자체를 맞이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공공 공간이 계속 사라지고 죽을 듯이 경쟁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실패라고 인식하게 된 사회에서 빈곤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 어쩔 수 없는 문제로 여겨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과 공동의 미래를 열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계속 질문하는 연습을 하자는 윤영 님 제안을 마음에 품고 돌아간 참가자도 많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기필코 일어나는 일
“핍박받은 사람들이 권리를 말하고 인간다운 삶을 지향하는 일, 기필코 일어나는 일”
문정현 신부님과 평화바람 활동가들이 40일 동안 순례하며 만난 전국 각지의 투쟁 현장과 싸우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봄바람 프로젝트 - 여기, 우리가 있다>(2022)에 등장하는 말입니다. 4~5월에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진행한 4회차의 릴레이 북토크 <평등 픽! 이 주의 도서>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이 문장을 가끔 떠올렸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이 이전보다 그래도 한 발 내디뎌 왔다면 바로 ‘기필코 일어나는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가능했던 일이겠죠. 그래서 북토크는 차별과 불평등을 ‘원래 그런 것’ 혹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남겨두지 않고 변화시켜야 할 것으로 상정하는 것 또한 매우 의식적인 사회적 분투 속에서 가능하다는 점을 매번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제정운동 또한 다른 운동들과 계속 그 분투하는 과정에 함께하는 것으로, 기필코 일어나는 일을 더 많이 엮어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