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빈곤의 여성화'는 아이엠에프 이후 '진행형'을 넘어 '고착화' 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전체 빈곤인구 중 빈곤여성의 비중은 55%를 차지하고, 빈곤가구 가운데 여성가구주 비율은 45.8%이다. 또한 여성가구 중 빈곤가구 비율은 남성가구 중 빈곤가구 비율 7%에 비해 무려 3배인 21%를 차지하고 있다. 빈곤에 있어서 여성이 주류가 되고 있는 '빈곤의 여성화'는 빈곤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성인지적 관점이 필수적임을 제기하고 있다.
빈곤 여성가구주 급속히 확산…대책 시급
지난 3월 9일 민주노동당이 주최한 사회포럼에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석재은 씨는 성인지적 관점에서 빈곤문제의 원인과 해결을 위한 정책과제를 제시해 주목을 받았다. 석 씨는 "이혼과 사별에 의해 여성가구주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빈곤한 여성가구주에 대한 해결이 없으면 빈곤문제 해결은 없다"며 "여성가구주에 대한 사후적인 빈곤대책도 필요하겠지만 사전적인 개입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석 씨는 '빈곤의 여성화'를 촉진하는 원인으로 시장과 가족 내에서 여성이 사회·경제적 지위가 불평등하다고 지적했다. 즉 여성이 가정에서 수행하고 있는 보살핌 노동에 대해 사회가 경시하고, '남성-생계부양자, 여성-가정주부' 라는 성별분업 체계에서 여성은 노동시장 자체에 진입이 불가능하며, 설사 진입해도 불안정 노동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
게다가 노동시장의 불평등한 구조는 사회보장제도로 이어진다. 석 씨는 "한국의 연금은 경제활동을 수행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서 전업주부는 배제되어있다"고 말했다. 또한 여성이 경제활동에 참여해도 대다수가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보장의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 현재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보험 적용비율은 20%내외이다. 석 씨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따라서 완전고용 상태에서나 통했던 지금과 같은 사회보장의 틀을 계속 가져갈 필요가 있는지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안으로 석 씨는 기존의 사회보장 체계에서 수급권자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까지 사회보장의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며 "전국민 1인1연금제도로 가야하고, 조세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시장에 대한 기여도가 아닌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사회보장의 권리를 확대하자는 것으로 이 방법이 대다수의 빈곤여성 문제를 해결하는 길임을 강조했다.
빈곤에 있어서 성 격차 해소는 '가족'보다 '개인'에 초점 맞추어야
'빈곤의 여성화'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던 다른 나라의 사례는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0년 코피 씨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18개 국가를 대상으로 성 정책모델을 유형화 해 경제활동 참여 측면에서 여성과 남성간에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분석했다.
남성은 생계부양자, 여성은 가정주부라는 성역할 분업 모델에 기초한 '가족모델'을 따르고 있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은 여성의 연령, 결혼상태, 돌볼 자녀 여부에 관계없이 경제활동에서 성적 격차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맞벌이 부부를 모델로 하는 개인모델을 따르는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등은 성적 격차가 매우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석 씨는 "성 정책 모델이 가족모델보다 개인모델일 경우 노동시장 접근에 있어서 훨씬 더 성평등하고, 노동시장 접근이 수월해 경제적 자원에 대한 접근과 독립성 확보에 성친화적이다"고 평가했다.
1994년 케스퍼 씨 등은 8개 국가의 빈곤율의 성적 격차를 비교·분석 했다. 이 연구에서 스웨덴은 세계적으로 빈곤의 성적 격차가 가장 작은 국가로 분류된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여성의 높은 고용율 △여성이 일과 가정을 병행할 수 있도록 제공되는 유급휴가 △아동 및 노인에게 제공되는 풍부한 사회보호 서비스가 있었기 때문. 또한 여성과 남성의 빈곤율 차이가 0.1%에 불과한 네덜란드의 경우, 노동시장의 실적과 연계하지 않은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사회보장제도가 존재했다. 즉 노동시장에서 기여한 것과 상관없이 사회보장 급부를 제공한 것이 빈곤에 있어서 성적 격차를 줄일 수 있었다.
소수자에 대한 사회·경제적 차별은 빈곤을 부른다. 차별을 경험한 사람은 결과적으로 가난할 수밖에 없다. 사회·경제적 차별의 고리를 끊어내는 일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인간다운 생존이 가능할 수 있도록 사회적 급여를 보편화하는 것이다. 가족단위가 아닌 개인단위로, 노동시장에 대한 기여에 상관없이,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주어지는 기본소득은 '빈곤의 여성화'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다.
인권하루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