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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해방 60주년과 700만 빈곤층의 절망

이제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은 더 이상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11일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15%인 700만 명이 빈곤층으로 집계됐다. 7명중 1명은 빈곤층이라는 것이니 이제 빈곤층은 나 자신을 포함해 가족, 친구나 친지들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조사는 정부의 공식조사임에도 불구하고 평소 빈곤층을 500만 명으로 추산한 것보다 200만 명 많은 것이어서 정부가 빈곤에 대한 대응을 새롭게 설계해야할 필요성을 한국사회에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사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국민총생산(GDP)이 세계11위 규모를 차지하지만 생계형 자살은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돈이 없어 전기와 수돗물을 사용할 수 없는 사연이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고 있다. 뼈 빠지게 일해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절망이 지금 우리의 어깨를 누르고 있다. 그럼에도 해방 60년을 기념한다며 서울시청을 빼곡이 도배한 태극기를 보면 누구를 위한 축제인지 되묻고 싶어진다. 여전히 경제가 성장하면 빈곤이 사라질 거라는 환상, 일하지 않으니 빈곤하다는 편견, 복지를 실천하려면 돈이 들어간다는 오해가 현재 한국사회에 팽배해 있으며 결국 이런 '통념'이 빈곤을 '구조'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무능력과 나태'로 인식하게 한다. 그렇다보니 대안으로 제출되는 빈곤 극복 방안도 경기활성화에 따른 일자리 창출이나 노동을 강제하는 사회보장 프로그램, 끊임없이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고용정책을 반복하고 있다.

정부의 각종 조사와 통계에서 보듯이, 한국사회에서 빈곤의 역사는 '양적 확대'와 '질적 심화'로 요약할 수 있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거치면서 등장한 노동시장의 유연화, 공공부문의 민영화 등에 따른 저임금 불안정 노동과 높은 실업율이 바로 오늘의 빈곤층으로 나타난 것이다. 지난 시기 정부의 대책이 빈곤층만을 확대, 재생산, 심화시켰다면 이제 새로운 틀을 설계할 때이다. '빈곤'에 대응하는 국가의 책임과 역할을 다시 만들자. '체제위협세력'에 대한 관리가 아닌, 노동을 통한 빈곤탈출이 아닌, '인권에 기초한 접근'을 시작하자. 식량, 주거, 의료, 교육 등 기초적인 공공영역에 대해서는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해야할 필수서비스로 만들고, 이것의 보편적 실현은 모든 사람들의 권리보장을 이루는 방식으로 구현하자. 사회공동체의 일원인 개인에게 노동에 대한 기여에 상관없이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를 보편적으로 확대하는 길만이 한국사회가 직면한 빈곤 해결의 열쇠이다.

빈곤은 단순히 소득이 없다는 것을 넘어 인간으로서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빼앗는다. 빈곤은 인간답게 살 권리의 박탈이며 인권을 부정하는 인권침해다. 700만 명 빈곤층의 절망을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