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8월로 제가 인권운동사랑방에서 활동한 지 2년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활동은 좀 익숙해졌냐’는 질문 앞에서 머뭇거리곤 하는데요. 뭐랄까, 첫 단추를 어영부영 끼우고선 막 달려나가는 느낌이 든달까요. 때마침 ‘평등과 연대로 인권운동더하기’와 ‘인권재단 사람’에서 <2024 저연차 인권활동가 공동교육 : 인권활동 첫 단추>를 열더라구요. 이제 막 첫 단추를 끼운 저연차 활동가로서 느끼게 되는 막막함을 다른 이들과 나눠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교육에 참여하게 됐답니다.
첫 강의는 ‘인권활동가 도감’ 작성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관심 있는 의제는 무엇인지, 그리고 실제로 어느 지역에서 어떤 키워드를 갖고 활동하는지, 활동가로서 나는 어떤 기술을 갖추었는지 간만에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같은 조 동료들과 도감을 돌려본 이후에는 페미니즘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익숙함 내지는 자연스러움을 질문하며 차이와 차별을 감각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더라구요.
2강에서는 ‘알아두면 쓸 데 있는 인권운동 단어 사전'과 ‘인권보장체제 이해와 인권활동가’라는 두 개의 강의가 진행됐습니다. 1부 강의에서는 캠페인, CMS, 감수성과 같이 활동하며 흔히 접하지만 온전히 이해한 건 또 아닌 단어에 대한 설명부터 논평/서평, 구좌파/신좌파처럼 닮은 듯 다른 단어들의 구분점을 알 수 있었는데요. 잘 모르는 단어를 알게 되었음은 물론, 잘 모르는 단어가 있어도 머뭇거리지 말고 물어봐도 되겠구나 깨달아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단어라는 게 어떠한 사람/조직의 고유한 경험 위에서 정의되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돌아보기도 했구요. 2부 강의는 제게 거의 초면인 내용이었습니다. 결국 권리의 구체적인 실현은 국가, 지역과 같은 지리적 범주에 적용될 규칙 내지는 제도를 세우는 문제이기도 할 텐데요. 현재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한 한국의 인권보장체제에 대한 문제의식과 고민을 나누며 인권활동가의 역할을 무엇인지, 인권보장체제와 인권활동가는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가늠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3강은 "체제, 낯설지 않으신가요?"라는 강의 제목처럼 자신의 운동을 '체제'라는 큰 틀거리로 낯설게 읽어보자는 '체제전환운동'을 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운동이 마주한 곤경이 어떤 조건 위에서 일어나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하단 말이 기억에 남는데요. 운동이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감각, 혹은 이뤄낸 것들이 하나둘 무너지는 상황을 ‘운동의 실패’로 규정하는 걸 넘어서기 위한 시도가 체제전환운동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강이 운동적 고민을 어떤 체제적 문제로 ‘읽어낼지’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면, 4강은 그 문제들을 어떤 사회적 실천으로 ‘드러내볼지’ 고민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싶은지 갈피를 잡았다면, 그 변화를 함께 추동할 동료·지지자를 찾고 모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누구와 동료·지지자로 함께할 수 있을지, 혹은 그 경계에 있는 이들을 동료·지지자로 끌어오기 위해서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 등을 따져볼 수 있었어요. 각자 캠페인을 하나씩 구상한 뒤 공유하기도 했는데요. 주장(내용), 대상, 시기, 목적 등에 따라 캠페인이 수없이 다양해질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4강에서는 구체적인 실천을 기획했다면, 5강에서는 그 실천 행위 자체에 관한 권리를 되짚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바로 ‘집회시위’의 권리입니다. 사실 사회운동에서 가장 핵심적인 건 ‘함께 모이는’ 행위라고 생각하는데요.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라는 법 테두리로 집회시위의 권리를 제약하는 지금의 한국에서 우리의 이야기와 장소를 지키기 위한 고민과 싸움을 이어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습니다.
마지막 시간은 교육에 함께했던 서로의 활동을 보다 자세히 알아가는 집담회로 진행됐습니다. 활동을 시작한 계기, 지금 활동하고 있는 단체·장소 소개와 그 안에서 나의 활동, 활동하며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 마지막으로 이번 교육에서 가장 좋았던 점. 이렇게 크게 4개의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각자의 고유한 활동 경험을 공유해주는데, 활동에 대한 애정과 의지가 저한테까지 전달되더라구요. 모두가 함께 '첫 단추'를 끼우던 순간으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참 다양한 영역과 장소의 활동하는 이들과 연결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HIV/AIDS인권행동 알, 건강돌봄시민행동, 건강세상네트워크, 고양여성민우회,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다산인권센터, 서울인권영화제, 인권재단 사람,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전북청소년인권모임 마그마, 정의기억연대, 청소년인권모임 내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 투명가방끈,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성폭력상담소. 인권운동사랑방에서 활동하며 멀리서 소식을 접하고 또 가깝게 만나기도 했던 곳들의 얼굴을 만나 더욱 반가운 마음이었어요. 그리고 학생부터 사진가까지, 특정 소속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권리를 밝히고 또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를 직접 찾아다니는 다양한 활동가들도 함께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활동을 하다 보면 사방에서 터지는 사건·사고, 쏟아지는 일상 업무 때문에 쫓기듯 활동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솔직히 뿌듯함과 자긍심보다 냉소와 소진을 느끼기 더 쉬운 것 같기도 하구요. (비단 저연차 활동가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겠지요.) 그럴수록 자신이 어떤 이유로 활동을 시작했고, 또 지금은 무엇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게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단추를 성공적으로 끼우는 것보다도 첫 단추를 끼우던 마음을 잘 간직할 수 있도록 해야겠어요. 제게는 저연차 인권활동가 공동교육이 그런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