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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또 다시 함께할 내년 기후정의행진을 기다리며

907기후정의행진 후속 토론회 후기

 

지난 9월 7일 토요일, 예년보다는 조금 이른 시점에 기후정의행진(이하 ‘행진’)이 열렸다. 벌써 두 달이나 지난 행진 이야기가 또다시 사랑방 소식지에 등장한 이유는 행진의 정말 마지막 일정인 <907기후정의행진 후속 토론회>가 지난 10월 17일에 열렸기 때문이다. ‘9월 기후정의행진과 기후정의운동의 과제‘라는 이름으로 준비된 토론회의 주요 고민은, 매년 9월 ’기후정의행진'이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이 대중집회가 올해 세 번째를 맞이하며 다양한 질문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는 점에 있다. 관성화, 대중성, 앞으로의 목표와 방향을 두고 기후정의행진에 함께한 이들과 성과와 과제를 돌아보는 자리가 토론회였다.

 

 

2019년 9월, 기후위기 해결을 정부에 촉구하기 위한 대중집회가 ‘기후위기 비상행동‘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곳곳에서 열렸고, 뒤이어지는 정부의 한계적인 행보에 대한 문제의식이 짙어졌다. 정부는 ’기후위기 해결’을 내세우지만 실속 없음은 물론 되려 과생산과 과소비를 부추겨 기후위기를 가속해 온 기업자본에게 돈 벌 기회, 그것도 ‘그린워싱’으로 돈 벌 기회를 제공해왔다. 기후위기 문제를 ‘부정의‘의 문제로 접근하며 풀어내야 한다는 의견이 모이며 ‘기후정의행진’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집회가 이어진 배경이다. 올해 행진의 슬로건이었던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가 이 지점을 잘 보여준 것 같아 좋았다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그런데 이 구호가 ‘세상’을 문제삼기 위해 ‘기후’ 문제를 가져다 쓰는 데 불과한 기후정의행진의 한계를 보여준다며 우려하는 이도 있었다. ‘기후‘ 문제를 다양한 사회구조적 문제들과 같이 이야기하는 건 기후 문제를 부차화하는 것과 같다는 우려이기도 했다. 유사한 맥락에서 혹자는 기후정의행진에 다양한 주체들이 자신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기후정의으로 엮어내며 기후정의운동의 전면에 나서는 게 문제적이라고도 한다. 기후 문제가 ‘아닌‘ 문제를 기후 문제로 비추며 기후 문제를 모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기후정의행진이 “백화점식”이라는 비판도 마찬가지일 테다. 그러나 기후위기 문제는 다른 사회적 문제들과 동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올해 평화활동가들은 평화를 상징하는 탱크 조형물을 기후정의행진에 들고 왔다. 무기거래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막대하게 배출되며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반대로 기후위기로 자원이 고갈되는 상황에서 전쟁이 부추겨지기도 하는 세상에 저항하자는 움직임이었다. 장애여성운동의 활동가들은 이윤 축적이라는 유일무이한 목표하에 수많은 생명이 생산성과 성장 추구하도록 착취되고 있으며, 기후위기는 그 결과 중 하나이기도 함을 계속해서 짚어주고 있다. 기후위기가 기후만의 문제가 아닌데, 기후위기 해결에 있어 기후위기’만'을 해결할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공감대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다.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수많은 이들은 ‘system change/체제전환‘을 요구하고 있고, 토론자였던 조진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국장이 짚어줬듯 올해 행진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60%의 응답자가 ’다양한 사회운동의 폭넓은 연대와 결집‘을 행진의 의의로 꼽았다.

사실 기후정의행진에 대한 나의 고민은 그보다는 기후정의행진이 그저 하루 이벤트로 그치지 않기 위한 ’전후 과정‘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있다. 가령 지난 3월 30일에 충남 태안에서 열렸던 <330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충남 노동자 행진(이하 ’330 행진‘>이 떠오른다. 현재 한국에 있는 석탄화력발전소가 하나둘 폐쇄되고 있다. 대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발전소의 폐쇄는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가 주목할만한 진보적 행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해당 산업에 기대어 삶을 일궈온 노동자와 지역주민에 관한 정부 대책은 소극적 지원, 불확실한 권리 보장에 그치는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는 그저 ’대의를 위해, 보다 급한 일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일 뿐일까? 당장 내년 12월 폐쇄를 앞두고 있는 충남의 석탄화력발전소의 노동자들은 산업 전환 과정에서 중요한 주체들을 소외시키지 않는, 그래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안’을 찾아나섰다. 그렇게 희생이 강요되는 상황을 넘어 노동자, 지역주민에 대한 대책을 ‘공공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엮는 흐름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 330 행진은 기후정의를 외쳐온 수많은 이들이 그에 끄덕이며 함께하는 자리였다. 이처럼 기후위기가 어떤 경로로든 삶의 위기로 들이닥치고 있는 이들이 기후위기 해결에 나서는 직접적인 주체로 자리잡는 경험이 기후정의행진 전후로 만들어지며 서로 좋은 시너지를 내는 게 필요한 듯하다.

그런 흐름은 이미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년 기후정의동맹에서 기후정의선언운동을 진행할 때만 해도 ‘기후정의’라는 단어 자체에서부터 많은 질문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단어가 추상적이다, 뜻이 모호하다/복잡하다, ‘기후위기’라는 대중적인 단어를 두고 이 말을 앞세워야 하는 이유는 뭘까 등등. 이제는 각자의 경험과 목표에 기반한 다양한 기후정의의 이야기들을 들고 오고 있다. 주거권과 반빈곤을 외치는 홈리스, 장시간 노동(=‘과생산’이기도 한) 폐지를 외치는 노동자와 활동가들은 스스로 세미나, 실천단을 꾸려 행진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행진이 “관성화”되고 있는 건 아닌지, 혹은 “대중화”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다. 내년에도 진행될 행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그건 우려와 회의가 아니라 기대에 가까운 고민들이다. 우리가 기후정의를 위한 체제전환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무엇을 함께하면 좋을까? 내년 행진을 기다리며 동료들과 함께 채워나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