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진광장을 다녀온 주말 저녁이었던가요. 귀가 후 동거인에게 읊조리듯 고백 비슷한 걸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랑방이 하고 있는 체제전환운동 너무 중요한 거 같아. 근데 아무래도 나는 투철한 변혁 운동가가 되진 못할 거 같아.”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저의 확신에 저 스스로 조금 놀랐습니다. “근데…! 중요한 건 나 같은 어중이떠중이가 많아져야 이 운동도 잘될거라는 거야. 그래야 세상이 바뀔거야.” 순간 저조차 그 말의 의미를 쫓아가지 못하는데, 그 말을 들은 상대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뼉을 치는 시늉을 했다지요.
‘어중이떠중이’는 제가 ‘활동’에 입문하면서 줄곧 느끼는 감각입니다. 이는 사랑방 운동을 하면서 조금 더 강화된 거 같습니다. 운동의 사상적 뿌리가 단단하지 않고 딱히 어떤 운동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역사의식도 없었기 때문이죠. 다른 동료들에 비해 운동에 대한 종합적인 시야도 부족하고, 사회 변혁에 대한 고민이 얼마나 깊고 진지한 것인지 늘 의문이랍니다. 그러니 지난 6년은 끊임없이 사랑방 활동가로서의 자격과 자질을 심사하고 다그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운동을 지속하는 게 맞나? 나 같은 어중이떠중이가 왜 이렇게 빡센 데 와서 사서 고생인가? 징징거릴 거면 그만두자? 그래도 재밌지 않아? 그래도 이만하면 너 많이 컸다?’ 그렇게 어르고 달래는 시간이 6년이 쌓였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나 같은 어중이떠중이가 많아져야 이 운동도 잘될거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막상 1년이라는 안식의 시간이 주어진다고 하니 얼떨떨합니다. 기다린 적 없는 시간이 기척도 없이 도래했달까요. 그건 어쩌면 제가 ‘닥치는 대로’ 사는 사람인 까닭이겠습니다. 그렇다고 막살았다는 건 아니에요. 사랑방이라는 공간,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 이곳을 채우는 운동의 내용 덕분에 딱히 제 삶을 의심하지 않고 그 시공간의 흐름에 적당히 몸과 마음을 내맡길 수 있었습니다. 비록 1년의 8할은 ‘에라이, 힘들어서 못해먹겠다’, ‘나랑 안 맞아!! 때려칠거야!!!’를 외친다 해도 돌아서 ‘그래도 이만한 데가 없지’라며 안도하는 그런 생활공간 말입니다.
이제 그 떠올려본 적이 없는 ‘안식’의 시간을 계획해야 할 거 같아요. 머리가 하얗네요. 막상 뭘 좀 해볼까 살짝 떠올려보니 또 너무 많은 게 떠올라서 괴롭습니다. 저라는 인간이 이렇게 단순하고도 복잡하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계기도 만들고 싶네요. 무엇보다 다시 돌아올 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안식년 내내 '변혁'을 고민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팽팽 놀긴 좀 그렇잖아요? ((웃음)) 뭘 좀 읽고 쓰고 토론하는 자리를 찾아다녀야 할 거 같아요. (좋은 자리 주선 환영합니다?)
요 며칠 전 마지막 상임활동가 회의에 참석했을 때 동료들이 잘 쉬고 오라며 선물을 주더군요. 반듯한 집이 그려진 어딘지 센스있는 유리잔이었습니다. 무슨 의미냐는 질문에 ‘집에서 잘 쉬라는’ 뜻이라는 동료의 임기응변에 물개박수를 쳤습니다. 함께 동봉된 편지에는 ‘한창 활동에 물이 올랐는데, 마지못해 안식년을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라는 놀림과 함께 더 너른 시야와 마음을 품고 1년 후 돌아올 제 모습을 기대한다는 메시지가 담겨있었습니다. 갑자기 빈 잔이 묵직하게 느껴지더군요.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습니다.((웃음))
아…. 이제 정말 떠날 시간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사랑방과 물리적으로 단절하는 시간일 텐데, 이건 아마 더 잘 연결되기 위한 시간일 테지요. '나 같은 어중이떠중이가 많아져야 운동이 잘될거'라는 그 자신감의 근거를 찾는 시간이기도 할테고요. 다들 건강히, 무사히 이 험난한 시절을 각자의 자리에서 잘 보내고 만나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생각보다 더 자주 거리에서 볼지도요. 그럼 모두 당분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