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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환란과 곤란 사이의 ‘좋은 기분’

윤석열이 파면된 지 나흘 째 되는 날에 이 글을 씁니다. 지난 4개월 여 간의 환란, 내일부터도 눈뜨면 코앞에 있는 곤란을 ‘활동가의 편지’에 담기에는 참 적절하지 못한 타이밍이죠. 그래서 채 정리되지 않는 소회는 뒤로 하고, 개인적으로 그 사이 있었던 ‘기분 좋은’ 장면을 떠올려보려고요.

지난 2월 7일에는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 주최로 <2025 체제전환운동포럼>이 열렸습니다. 네, 윤석열 퇴진 투쟁으로 정신없는 그 와중에도 열렸어요. (준비팀 만세) ‘광장과 페미니즘’ 첫 번째 세션 사회를 맡은 저는 사실 발제문과 토론문을 당일 새벽에서야 열독했답니다. 사정은 대충 이해하시리라 생각하며…. “광장과 페미니즘,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주는 과제는 폭주하는 남성성을 어떻게 사유하고 비판하고 극복할 것인가” 한국성폭력상담소 오매 님의 발제가 적합한 분석과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면, 민주노총 권수정 님의 토론문의 작은 각주 하나는 제 눈길을 오래 잡아끌었습니다.

“평등과 연대라는 광장의 시대정신에 그동안 진행되어 온 차별금지법제정운동이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는 따로 논문이 나와야 하는 주제다.”

이 문장이 왜 이리 기쁠까,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해봤습니다. 이 말은 ‘평등과 연대의 시대정신을 담은 최저선이 차별금지법’이라는 토론문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사실 차별금지법을 핵심 주제로 한 논문이 적지는 않습니다. (Ctrl+A 해보니 제 폴더에만도 147개가 있네요.) 그런데 사회운동분석, 반차별 운동이나 차별금지법‘제정운동’에 대한 연구는 흔하지 않습니다. 몇 안 되는 소중한 연구들도 보수개신교 반대운동과의 대척점에서 ‘영향력의 크기’ 혹은 제도정치의 외곽이라는 한정된 차원에서 다루기도 하고요. 차별/평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특정한 형태로 생성되거나 변화하는 과정, 사회가 이를 거부하거나 수용하게 되는 과정, 제도화의 과정에 운동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이걸 잘 정리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오래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제정운동은 분석되고 연구될만한 가치가 있고 그것은 중요한 사회적 지식이다’라고 말해주는 이가 있다면… 왜인지 간이고 쓸개고 다 꺼내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활동가는 자기 현장의 연구자이기도 하고, 운동은 활동가 스스로가 이론화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며 뭐라도 하자고 답삭 두 손을 붙잡고 싶어집니다.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또 하나는 4월 4일 윤석열 파면 선고 당일의 장면입니다. 사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입장을 미리 준비해놓기로 하고선 밤에 잠이 들어 선고 당일 아침 7시에 눈 떴을 때는 너무 당황스러웠거든요. (이후 3시간은… 상상에 맡깁니다.) 부랴부랴 광장으로 향해서 동료들과 LED 화면을 지켜보다가 뒤늦게 친구가 보내준 메시지를 읽었습니다. 최근 제가 친구들에게 건네는 선물이라곤 죄다 운동권 굿즈인데요, 한동안 단골 선물은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에서 만든 양말 세트였습니다. 그런데 두 친구가 윤석열이 파면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원을 담아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그 양말을 꺼내 신었다고 인증샷을 내주었습니다. 그래서 윤석열 파면이 선고된 11시 22분, 그보다 전부터 저는 이미 몽글몽글한 기분이었던 거죠. 'go system change'가 뭐라고… 양말이 예쁘기라도 해서 다행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나에게 예쁘고 좋은 걸 같이 예쁘고 좋다 해주면 또 간이고 쓸개고 내주고 싶어지는 이 기분….

이런 지지대 위에서 4개월 여 간의 환란을 지나왔습니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제정운동의 방향을 잡아야 하는 지금은 ‘매우 곤란’인데요. 늘 결정적인 순간에 대책이 없는 저로서는 앞으로의 시간도 ‘어찌어찌 되겠지’ 하는 심정입니다. 분명한 건 정신줄이 뚝 끊기지 않도록 시간을 이어주는, 기분 좋은 순간이 있다는 거죠. 그래서 오늘도 안도의 숨 한 번 쉬고 갑니다.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