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일이라는 날짜를 헤아려야 하다니……. 어느 날이었나. 아침에 문득, 이제 가을이라는 걸 깨닫고 당혹스러웠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로 파견을 나간지도 다섯 달이 지났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돌아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 어쩌면 세상이 너무 그대로라, 시간이 흘러갔는지 멈춰있는지 분간을 못하고 있다.
가족들도 비슷한 듯하다. 어쩌면 4월 16일 하루만으로도 1년을 산 것 같았을 그/녀들. 그리고 그 후로 이어진 시간들, 하지만 제자리인 듯 맴돌고 있는 이 시간.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특별법 세 번째 합의는 결국 다시 제자리라는 허탈감을 남겼다. 화를 내기에도 지쳤다는 한 어머니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특별법을 제정하라
내 아이가 죽은 이유를 알려 달라. 특별법의 시작은 그것이었다. 아이들이 탄 배가 침몰된다는 소식을 듣고 누구는 바로 차를 몰고 내려갔다. “그때 내 차를 앞지르는 차는 다 부모들 차였지. 내가 200을 밟고 갔거든.” 앞 다투어 내려갈 수 없었던 부모들은 일단 학교로 모였다. 강당에서는 아직 침몰하지 않은 평온한 바다만을 계속 비춰주었다. 모두, 전원이 구조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 어머니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며 누구를 향한지도 모르겠는 기도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팽목항은 달랐다. 구조됐다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구조대원 726명, 함정 261척, 항공기 35대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해경은 선장과 선원들을 고이 모셔 나왔다고 한다. 인근 어선들이 탈출한 승객들을 실어왔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선장과 선원들을 모두가 비난하는데, 알 수 없는 사람이 그들을 데려가 하룻밤을 재웠다. 아이들을 기다리는 체육관에는 정보과 형사들이 가족인 척 들락날락거렸다.
정부 책임자라는 자는 실종자 명단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고, 컵라면에 계란도 안 넣었는데 먹는 게 죄냐는 듯 투덜댄다. 그들을 닮은 자들이 멀지 않아 인터넷에서 거리에서 혐오를 쏟아낼 예정이었다. 대통령이 내려와 최선을 다할 것이며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하는 말은 텔레비전에 나오는데 가족들이 항의하는 모습은 어디에도 전해지지 않았다. 진도대교를 건너 청와대로 가겠다는 가족들은 경찰에 의해 막혔고, 5월 9일 새벽 청운동 사무소 앞에서도 가족들은 같은 현실을 확인했다. 청와대는 멀구나.
멀기만 하면 다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특별법을 제정하라는 요구는 청와대의 코앞에 있었다. 추석 연휴에 즈음해 대통령은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여당이 지금 제시하는 안이 마지노선이라고. 가족의 여한이 없도록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하더니, 할 만큼 했다고 평가했다. 누가 감히 여한을 재단하는가.
특별법은 제정된다
입법운동이 이렇게 대중적으로 이루어진 적은 흔치 않은 듯하다. 2004년의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2008년의 FTA(무역협정이지만 국내법의 효력을 가진다) 반대 운동 같은 것이 그나마 비슷한 경험이다. 이것들도 모두 악법을 없애자는 운동이었지 법을 세우자는 운동은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광범위한 운동은 그 의미를 잘 짚을 필요가 있다.
참사가 발생했으니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은 당연한 과제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바람도 자연스럽다. 그 과정에서 특별법이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특별법은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권한과 방법뿐만 아니라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 참사의 치유와 기억을 위한 노력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법을 둘러싼 쟁점을 압도했으나 법에 담긴 운동의 힘은 그것에 그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다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와 열망이 잠시 특별법의 옷을 입었을 뿐이다.
이번 합의는 그래서 문제적이다. 수사와 기소의 권한이 조사위원회의 안과 밖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가보다.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와 가두려는 의지 사이의 어디쯤에서 특별법이 제정되는지가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밝히는 데 있어서 가족은 그저 피해자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들은 진실의 시작이자 끝이다. 가족의 동의는 법제도의 어디쯤에 가족이 참여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무너질 수 없는 진실의 의지가 가족들이기 때문이다. 가족이 피해자로 환원되어버리고 국가는 다시 심판자가 된 것이 이번 합의의 문제점이다.
그런데 이 심판자들은 위험하다. 대통령은 스스로 7시간을 밝히지 않고, 국정원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해경은 해체가 해결인 것처럼 선포된 후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는 현실에서 여당과 야당은 그저 국회의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되고 있다. 원점. 그리고 10월말까지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한 유병언법과 정부조직법은, 참사에 대한 책임을 왜곡하는 법일 뿐이다. 기업의 이윤 추구를 문제 삼지 않고 뇌물 비리와 같은 범죄로 발생한 재산을 환수하겠다는 것이 유병언법이다. 해경이 해체되어야 하는 이유를 아무도 모르는데, 그것을 포함해 이러저러하게 정부를 제 뜻대로 재구성하겠다는 것이 정부조직법이다. 우리는 책임을 밝힐 기회를 빼앗기고 있다.
특별법이 제정돼도
그러나 이번 합의는 그래서 끝이 아니다. 특별법은 아직 제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설령 합의를 크게 넘어서지 못하는 수준으로 특별법이 제정되더라도 그것이 끝일 수는 없다. 입법운동은 제정된 법이 최종 결과인 것처럼 이해되기 쉽다. 그러나 입법운동은 법으로부터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법을 만들어낸 힘으로부터 평가되어야 한다. 어떤 법도 진실과 안전을 보증할 수 없다. 진실과 안전을 포기하지 않는 힘이 살아있다면 법은 법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금껏 모아온 힘이 사그라진다면, 법은 법만큼의 역할도 할 수 없다.
다시 특별법의 시작으로 돌아가 보자. 내 아이가 죽은 이유를 알려 달라. 아니, 이제 부모들은 조금 달라졌다. 우리 아이들이 죽어야 하는 이유를 알려 달라. 세상 모든 사람의 부모가 되어버린 가족들은 끝낼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싸움을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약속했다. 잊지 않고 행동하겠다고. 특별법이 제대로 제정되게 하는 것도, 진실이 밝혀지도록 하는 것도,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참사 200일을 벌써 헤아린 이유는 그것이다. 11월 1일, 우리 스스로의 힘을 서로 확인할 수 있는 범국민대회가 열린다. 어느 때보다, 광장과 거리가 중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