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유엔 총회 3위원회 회의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되었다. 이에 22일 북한 1) 조국평화통일위는 남한이 미국을 추종해 벌인 전면적인 선전포고라며 강력 비난하였다. 23일에는 국방위 성명을 통해 초강경대응을 선언하고 미국, 일본, 한국이 그 대상이라며 핵전쟁이 터지면 청와대도 안전할 수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 사실 유엔은 2003년부터 매년 인권이사회 또는 총회 결의안의 형태로 북한인권결의를 채택해왔다. 그럼에도 북한이 이번 결의안에 대해 전쟁을 언급하면서까지 강하게 반발하는 데는 그 이유가 있다. 이번 결의안이 북한 당국의 책임자들을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로 규정하고 국제형사재판소 회부를 권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의 강력한 반발은 단지 정치지도자와 체제에 대한 모독 때문이 아니다. 북한이 핵전쟁을 운운한 것은 모독에 대한 앙갚음을 위해서가 아니라, 북한에 대한 전쟁위협이 구체화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권을 내걸고 시작된 행동이 가장 심각한 권리박탈 상태인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막힌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유엔과 북한인권
북한의 인권문제를 해결하고 그 책임을 묻기 위해 국제형사재판소에서 북한인권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 어떻게 전쟁위협이 되는걸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북한을 둘러싼 국제관계, 유엔에서 북한인권이 다루어지는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91년 남북이 유엔에 동시가입하면서 국제사회에서 독립주권국가로 공식 인정되었고, 유엔의 인권관련 국제조약에 가입하면서 인권보장의 책임의무를 수용했다. 이러한 변화는 50여 년동안 사회주의-자본주의 체제대결을 통해 구조화되었던 한반도 정세가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급변하면서, 진영 간 대결이 아닌 개별 주권국가에 기초해 적대관계를 해소하고자 했던 남북의 정책변화가 반영된 결과였다. 하지만 한중, 한소 수교는 이루어졌지만 북미, 북일 수교는 맺어지지 못한 채, 북한은 홀로 적대관계 속에 고립된다. 그 결과는 끔찍했다. 특히 석유-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의 수입부족은 산업전반의 마비를 가져왔고 화학비료가 없는 농업생산은 각종 자연재해까지 겹쳐 최악의 식량난을 야기했다. 북한 스스로 ‘고난의 행군’이라고 일컫는 90년대 중후반을 거치며 북한 이탈주민이 급증하게 된다.
생존을 위해 북한에서 탈출한 이들로부터 북한인권상황에 대한 증언이 쏟아지면서 2000년대부터 국제사회에서 ‘북 한인권문제’가 대두된다. 유엔은 2005년부터 매년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을 임명해 북한인권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토록 해왔다. 특별보고관의 보고서는 열악한 식량상황 외에도 공개처형, 연좌제, 고문, 정치범 수용소 문제를 제기하며 북한 주민들의 자유권에 심대한 침해가 있다고 보고해왔다. 거의 대부분 북한이탈주민의 증언에 의존하는 수집정보의 한계, 편향성, 사실관계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라는 유엔의 국가별 인권 모니터링 제도는 유엔에서도 문제제기가 있어왔다. ‘망신주기식 접근(naming and shaming)’, ‘국가 간 이해관계에 따른 인권문제의 정치화’가 그것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서남아시아 산유국들의 인권상황은 어떤가. 3대 세습은 명함도 내밀기 어려울 정도로 정치적 권리가 박탈되고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일상화된 곳 아닌가? 사우디는 왕정이니까 괜찮은건가? 석유가 있는 친미국가를 그 누가 건드리겠는가. 상황이 이러하니 국가별 특별보고관 제도가 실질적인 인권개선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특정 국가를 비난하고 처벌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활용된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2006년 유엔인권이사회가 설립되면서 국가별 특별보고관 제도의 폐지가 심각하게 논의되었지만 결국 유지되었다. 그 대신 회원국 전체가 보고서를 제출하여 인권상황을 검토 받는 인권정기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가 도입되었다. 다자적 틀에서 평등하게 인권대화가 이루어질 것을 주장하던 북한은 인권정기검토(UPR)에는 응하고 있다. 북한 역시 자국의 인권 문제 자체를 부인하고 있지는 않으며 모든 국가들이 평등하게 인권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 다자적 인권대화에 응하고 있음에도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매년 임명되어 활동해왔고, 급기야 2013년에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까지 발족하게 된 것이다.
유엔 조사위원회와 국제형사재판소
이번 유엔 총회 3위원회 결의안 이전에 북한 인권 실태를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해야 한다는 유엔기구의 의견이 올 초에 발표되었다. 유엔인권이사회의 결의로 설립된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2014년 2월 보고서가 그것이다. 지금까지 유엔은 르완다, 수단(다르푸르), 레바논, 리비아, 시리아 등 특히 내전 중 대량학살(genocide)과 인도에 반하는 죄 등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침해가 발생한 지역에 대하여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내전과 같이 일상적인 정부활동이 마비되고 대량의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때, 책임소재를 밝히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전례 없는 경우이다. 북한 정부가 유엔의 다자간 인권대화에 응하고 있음에도 북한에서 심각한 인권침해 행위가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그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한 유엔차원의 행동을 시작한 것이다. 2003년부터 시작된 유엔의 북한인권결의는 2005년부터 매년 이어진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보고서와 권고를 거쳐 2014년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국제형사재판소 회부권고로 이어졌고, 이를 그대 로 받아 유엔 총회 3위원회 결의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국제형사재판소 회부가 당사국의 요청과 안보리의 결정으로만 가능한 현실에서 북한인권에 대한 유엔의 대응은 조만간 열릴 총회 본회의 결의로 마무리될 것이다. 하지만 실제 회부 여부와 상관없이 집단살해죄, 인도에 반한 죄, 전쟁범죄, 침략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국제형사재판소 회부를 유엔이 결의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북한 정부와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소위 국제사회의 윤리적 판단은 내려졌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10여 년 전 대량살상무기라는 조작된 정보를 가지고 세계 평화와 이라크 국민의 인권과 자유를 뻔뻔하게 내세우며, 유엔조차 반대한 침략전쟁을 일으켰다. 그 결과는 지난 10년 동안 우리가 목격한 바와 같다. 북한은 국가수립 이후부터 미국과 정치군사적으로 적대하고 있으며, 최근 20여 년 동안에는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그 대립이 더욱 격렬해졌다. 그런 상황에서 보편적 인권의 이름으로 유엔은 북한 정부와 정치지도자들을 심각한 인권침해를 저지른 반인도적 범죄자들로 규정한 것이다. 그 동안 유엔 조사위원회의 보고서와 유엔 결의는 목전의 학살과 폭력을 막아야 한다며 가해자 처벌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왔는데 이는 유고슬라비아, 리비아, 시리아 등에 대한 나토와 미국의 전쟁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최종보고서가 지난 2월 발표된 이후, 북한은 15년 만에 유엔 총회에 참석하여 자체적인 인권보고서를 제출하고 10월 7일 유엔 총회에서 개최한 북한 인권 관련 설명회를 통해 인권문제와 관련하여 국제사회와의 대화와 협력을 지속해나가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구체화된 전쟁위협 앞에서 북한으로선 어떻게 해서든 유엔 총회 결의를 막아서야 할 절박함이 있었던 것이다. 유엔총회 결의를 눈앞에 둔 지금, 이제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적어도 명분이 아닌 실행과 결단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인권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
마이클 커비 북한인권조사위원회 위원장은 위원회 설립 이후, 오로지 사실에 근거한 조사활동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조사위원회는 북한인권문제 조사의 핵심지역인 북한과 중국은 방문하지도 못했다. 한국, 일본, 태국, 영국, 미국에 산재한 민간인권단체들과 북한이탈주민의 증언에 기초해 보고서를 발간했다. 북한 당국 책임자들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 회부를 권고한 보고서의 내용 치고는 빈약하기 그지없다. 위원회는 방문을 거부한 북한과 중국 탓을 하지만 이는 앞서 언급한 국가별 인권보고관, 조사위원회 제도의 근본적인 한계이다. 실질적인 인권개선을 위한 포괄적이고 협력적인 인권대화를 하자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반인도적 범죄자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취조와 심문을 하겠다는 유엔의 제안에 어떤 당사국이 쉽사리 협조할 수 있을까.
유엔뿐일까. 국제형사재판소장과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하며, 이번 결의안에서도 큰 역할을 한 한국사회의 북한사회에 대한 범죄화, 악마화, 타자화는 극에 달해 있다. 70여 년 동안 국가보안법 체제 속에서 살아온 한국인들에게 북한은 전쟁 대상 또는 동정 대상일 뿐이다. 인권은 값싼 동정이나 인도주의가 아니다. 권력관계 속에 놓인 상호주체성 속에서 형성 변화되는 우리 모두의 권리다. 한국은 북한과 상호주체적인 관계에서 교류한 경험이 일천하다. 북한이 이번 유엔 총회에 제출한 조선인권협 명의의 인권보고서가 <조선중앙통신> 웹사이트에 게재되어 있다고 하는데 볼 수가 없다. 한 입으로 빨갱이 사냥을 외치면서 북한인권개선을 주장하는 처연한 현실이다.
1) 지금 편의상 북한이라고 표기하였으나, 정식명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북에서는 남북을 각각 남조선-북조선으로 칭한다. 남조선, 북한은 존재하지 않는 일방적인 명칭이므로 남북간 대화에서는 남측, 북측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