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높은 굴뚝들이 가장 많은 곳, 구로 공단의 굴뚝마다에는 많은 사람의 땀과 소망이 상처와 아픔과 부딪치며 뿜어진 연기가 끊임없이 하늘로 오르고 있다. 그 연기와 함께 오르며 이 지역과 호흡을 함께 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80년대의 민주화 투쟁 속에서 의식있는 기독인들의 사회참여를 고민했던 청년들이 모여 향한 곳이 구로 공단이었고, 이 지역에서의 구체적 참여를 고민하게 되었다. 민중교회를 설립하고 문화공간을 마련하고 노동청년의 모임을 가지던 중 89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구로 지역의 다른 많은 단체들도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구체적 개입을 하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이에 91년 11월 23일, 공단지역선교(Urban Mission)를 통하여 공단지역의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희년(해방)을 선포하여 인간화와 복음화의 실현을 기하도록 만들어진 곳이 희년선교회(Jubilee Mission Fellowship for Urban Mission)이다. 이들은 특히 제3세계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문제를 돕거나 협력함을 통하여 총체적 선교사역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그래서 ‘인권’이란 이름으로 찾아갔을 때 “우리가 하는 일이 ‘인권운동’이라 불릴 수 있나요”하는 겸연쩍음 속에서도 ‘성서에서 말하는 공평‧평등에 근간을 두고 공단지역에서의 인권‧복지적 측면을 위해 일해야 하는바’를 힘주어 말한다. 이점은 이들이 하고 있는 사업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첫째, 사방 벽이 책으로 가득 차 있는 사무실 자체가 ‘마을도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눈에 봐도 만만한 장서량이 아니다. 본인을 책을 보러온 주민으로 생각하고 맞아준 친절한 미소도 만점이고, 조명이며 책걸상이며 화단처럼 꾸민 실내장식이며 하나같이 아늑함을 자랑하고 있다. 이곳은 도서관뿐만 아니라 기획영화제와 교육프로그램(한글교실, 영어교실, 중국교포예배, 성경공부모임 등) 이 열리는 모두의 문화공간이다.
둘째, 앞면 벽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구로 지역의 맞벌이주부와 저소득 가정을 위한 ‘희년놀이방’이 있기 때문이다.
세째, 외국인 노동자 인권상담부와 의료진료소가 있다. 대화 중에도 외국인 노동자 임금문제를 상담하는 전화통화 때문에 여러 번 의자에서
일어섰던 강명규 간사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우리나라의 악덕기업주가 저지르는 개인적 잘못인양 인식하는 데에 강한 반론을 제기한다. 주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중‧소 제조업자들 자신이 산업구조조정의 피해자로서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기업주’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도 딱한 형편인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노동에 대한 대가는 지불해야지, 외국인이라고 적당히 넘어가려 하거나 이들의 약점을 잡아 괴롭히는 행위에는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고 본다. 3D현상이나 제조업의 위기, 노동자책임론 등의 강조와 그에 대한 반대 등 여러 입장이 맞물린 틈바구니 속에서 외국인노동자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처하게 된 것이다. 희년 선교회는 이들에게 항상 열려 있으며 임금체불, 폭행, 산재, 사망 등 가장 시급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도와주고 있다. 상담을 통해 만난 이들, 네팔인, 방글라데시인, 파키스탄인, 필리핀인, 미얀마인, 인도인 등 수십여 명이 정기적 모임을 갖고 있기도 하다. 임금문제뿐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장 큰 고통을 받는 부분은 의료문제이다. 산재적용이 되기는 하지만 법적 장치가 이제 마련됐을 뿐 실제 적용은 아직 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부분 주중의 외출이 허락되지 않고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는 등 병원에 갈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희년선교회에서는 1달에 두번 정기진료소를 마련하고 있으며 여기에 참여하는 의원들이 연결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필요하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다. 의료진료에는 10여 명의 전문의들과 20여명의 인하대 의대생들이 참여하고 있고, 의료진료시 방문하는 인원은 평균 80-100여명에 이른다. 지금까지 해온 일들 중에서 대표적인 사례로는 필리핀인 노동자 로돌프에 대한 폭행사건, 호세델가도외 4명의 필리핀인에 대한 억울한 구속사건을 도와 해결하였고, 그동안 공식집계된 것만도 49건에 이르는 외국인 노동자의 사망사건들을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등과 협력하여 해결 또는 상담 중에 있다.
이 모든 일들은 한국교회의 도움과 후원회원의 후원으로 유지되고 있다. 희년선교회의 조직은 크게 이사회(이사장-홍정길 목사), 실행위원회(위원장-이만열 교수), 후원회(회장-손봉호교수)로 이루어져 있고, 상근간사(대표간사 강명규) 4명, 비상근간사 3명, 자원봉사 40여명이 봉사하고 있다. 국제연대조직에는 전문선교단체인 WEF(세계복음주의협의회)가 있으며, 매월 소식지인 <희년의 소식>을 발간하고 있다.
억눌린 자, 빼앗긴 자, 노예된 자, 빚진 자에게서 억압의 쇠사슬을 풀어준다는 희년! 우리는 우리의 무엇을 빼앗기고 살고 있으며 외국인 노동자에게서는 무엇을 빼앗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손익계산이 아니라 해방의 터가 될 우리의 공동체의 토대가 어떠한지를 시험해보고자 함이다. 해방의 터를 갈고 일구는 희년선교회의 힘찬 나팔소리에서 희년의 선포를 들어봄직하다.
< [인권운동사랑방] 류은숙 >
- 140호
- 류은숙
- 1994-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