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범죄에 대해 굴욕적인 태도로 일관한 경찰관들
「주한미군범죄근절을 위한 운동본부」(상임공동대표 전우섭, 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는 3일 서울지방검찰청에 서초 경찰서 소속 형사 채학식․박찬식․최병일 씨를 미군병사에 의한 김국혜 씨 강간치 상 사건과 관련해 직무유기, 허위공문서 작성으로 고발했다. 채학식 씨 등은 지난해 5월 29일 발생한 미군병사 죤 로저 살로이스 병장의 김국혜(53)씨 강간치 상 담당수사 팀이다.
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는 이들이 고의 또는 과실로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강간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인멸한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조재학 간사는 “미군범죄를 처리하는데 있어 한국정부의 굴욕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하면서 “사건현장에서 피해자가 팬티와 팬티스타킹이 벗겨진 채로 발견된 점과 자정이 넘어 영업이 끝난 시간에 혼자 있는 피의자를 찾아온 점등 성폭행 혐의가 뚜렷한데도 단순히 폭행죄만을 적용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항의했다.
특히 로저병장이 낸 항소심에서 채학식 형사를 증인 심문하는 과정에서 사건초기 인지보고서를 통해 ‘성폭행의 혐의가 지어 피해자의 질 분비물을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 의뢰했다’고 보고했으나 의뢰사실을 번복하는가 하면 영동세브란스 병원의사에게 부탁했는데 의사가 누구인지 모르고, 감정결과가 어떻게 났는지 보고조차 하지 않아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일반적으로 목격자가 없는 강간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질 분비물에 대한 감정결과가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하는데, 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는 피고인들이 이 부분에 대한 감정의뢰를 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증거를 인멸시켰고, 수사인지보고서를 통해 피해자의 질 분비물을 채취, 감정의뢰 했다고 허위공문서를 작성했다고 보았다.
무엇보다 김국혜 씨 사건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은 담당검사들의 수사과정,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태도인 것으로 지적되었다. 경찰에서 강간치 상으로 송치된 사건을 윤정석 담당검사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단순폭행으로 기소했고, 재판과정에서 조영선 공판검사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징역 7년을 구형했다. 피해자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진술을 묵살한 채 조검사가 어떠한 보강수사도 하지 않자, 하광호(서울형사지법 6단독)판사가 직권으로 피해자를 증인으로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조검사는 결심구형대로 7년을 구형해 재판부가 “이 사건을 법률에 의해 징역 15년까지 볼 수 있다”며 검사의 구형을 제지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이에 당황한 검사가 징역 10년을 구형했고 결국 재판부는 “피해자가 성폭행 당한 것이 인정된다. 폭행죄를 적용하되 이 점을 감안해 징역 10년에 처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지난 6월경 로저 병장의 항소로 재판이 열렸는데 성폭행여부를 밝히기 위해 서울형사지법 항소5부의 증인 채택으로 채학식 형사가 나왔다.
이 재판에서 가해자의 질 분비물에 대한 사실이 밝혀져 문제로 제기되었다. 또한 검사의 요청으로 나온 피해자 김씨가 성폭행사실을 주장했으나 검찰은 추가기소나 공소장 변경 없이 항소를 기각했다. 10월26일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1심 판결의 강간죄에 대해서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원심 징역10년을 파기하고, 폭행죄만 받아들여 최고형인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 김씨는 2차례나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강간에 대해 증언하는 등 고통을 당했다. 사건 당시 김씨는 뇌를 크게 다쳐 후유증으로 1년이 지난 지금, 후각장애, 정신장애 등을 보이고 있다.
한미행정협정의 개선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가운데 주한미군범죄의 한국 재판권 행사비율과 주한미군범죄에 대한 형사사건 처리결과는 그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9월말 한미행정협정의 문제점과 개정방향 공청회에서 배금자 변호사의 발표에 따르면 주한미군범죄 재판권 행사비율은 91년 발생한 1천3백57명의 범죄인중 18명, 92년(1-8월) 발생한 6백55명의 범죄인 중 6명에 대해서만 재판권을 행사해 행사비율은 1%를 기록했다. 또한 형사사건 처리결과는 징역형이 90년엔 3백33건 중 30건, 91년에는 7백33건 중 8건, 92년(1-8월)에는 3천3백35건 중 6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