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이룸은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네이버 지식인에 올라온 성매매 관련 질문을 분석하는 연구사업을 진행하였고, 관련 포럼을 개최하였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지식인에서의 성매매 현실과 경험>이라는 제목의 행사 홍보를 위해 흥겨운 웹자보를 만들면서 당시 갓 대통령이 되신 MB 소유 건물에 성매매업소가 있었음을 풍자하는 내용을 포함하였다. 공무원과 경찰, 개인적 인연들까지 등장해서 웹자보를 수정할 것을 압박해왔고, 결국 수정된 웹자보를 올리게 되었으며, 이룸활동가들에게 그 경험은 커다란 상처가 되었다.
그 일이 있은 4개월 후에, 우연인지 필연인지 “집결지 자활사업에서 지원을 받고 있는 여성들의 주민등록번호를 제출하지 않으면 사업을 종료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팩스를 받았다. 여성들의 주민등록번호는커녕, 머리털 한 개라도 내어줄 생각이 없었던 이룸의 전농동 성매매집결지 자활지원센터는 그렇게 정리되고 말았다. 그 후로도 소소한 캠페인, 행사를 할 때마다 정보과에서 전화오고 행사장에 경찰들이 찾아왔었다.
민간인 사찰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고 수사가 진행되면서 농담 삼아 “야, 이룸도 사찰당한 거 아닐까?” 얘기한 적은 있었는데, 막상 검찰의 입으로 이룸이 사찰명단에 있다는 얘길 들으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피해의 기준?
검찰 조사관은 나에게 “피해 받은 사실을 말하라”고 했다. 나는 열심히 당시 얼마나 무서웠는지, 공무원들의 압력이 얼마나 심했는지, 이야기를 했지만 이룸이 겪은 고통은 검찰이 생각하는 ‘피해’가 아니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심드렁하게 “그게 전부입니까?” 라고 재차 되물었고 나는 말문이 막혔다.
민간인 사찰을 폭로하고 증언한 피해자들의 경험은 목숨이 왔다갔다하고, 회사와 재산을 잃고, 인간관계마저 파괴된 참담한 것이었는데, 그 참혹함만이 ‘피해’의 기준이 된다면 이룸이 겪은 일은 무슨 말로 설명해야 할까. 정부의 사찰에 의해 ‘피해’를 받아야만 ‘피해자’인가?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사찰이 범죄라면 그 범죄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룸은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습관처럼 ’피해‘를 검열하게 된다. 나의 피해는 얼마나 끔찍한가? 말해도 되는 피해인가?
목숨이 왔다갔다 해야 피해를 받았다고 말이라도 꺼내 볼 수 있는 상황은 성매매 여성들의 경험 속에서는 비일비재하다. 심리적인 공포부터 물리적인 폭력까지, 양상과 층위가 다양한 성매매 여성들이 경험하는 피해를 이야기하면 세상은 심드렁하게 “그게 전부입니까?” 물어온다. 이렇게 질문이 되돌아오면 심드렁한 이들을 깜짝 놀라게 할, 더 처참한 피해를 얘기하거나 아예 소통 자체를 포기하고 입을 닫아버리는 수밖에 없다. 이룸의 상담소를 이용하는 많은 여성들이, 경찰서나 법원,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겪는 단절의 경험은 이런 모습이다. 억울함만 가득안고 어찌할 바를 몰라 상담소를 찾았는데, 나의 억울한 경험이 다른 사람들도 많이 경험하는 ‘피해’라는 설명을 듣고 힘을 내 말해보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지겹도록 “그게 전부입니까?”라는 소리를 들으며 활동가와 당사자 여성 모두 한없이 소심해 진다.
자꾸 피해자, 차별의 대상이 된 사람들만 못살게 구니까 짜증나는 거다. 무슨 피해를 입었는지 말해보라더니, 용기를 내서 얘길 해주면 흡족해하지 않는 세상을 자꾸만 만난다. 피해가 가벼우면 가볍다고 무시하고, 피해가 지나치게 무거우면 감당할 수 없다며 외면당하는 와중에, 결국 침묵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질문의 방향을 바꾸었으면 좋겠다. 피해자에게, 차별의 대상이 된 사람에게, 경험한 고통의 경중을 따지게 하고 그 괴로움이 실재하였음을 증명해 낼 것을 요구하고, 저항하고 도망칠 책임까지 묻는 것은 제발 이제 그만! 가해자에게 행위의 의도가 무엇인지, 무엇을 기대하여 그런 행위를 한 것인지 집요하게 추궁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싶다.
덧붙임
보리 님은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