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형사3부(주심 강민구 판사)는 지난 20일 '구국전위' 사건에 연류돼 1심에서 징역 3년6월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은 이광철(43) 씨 항소심에서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국가보안법상 국가기밀의 개념과 적용범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대법원의 판례는 그 적용 범위가 광범위하고 모호해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므로 헌법에 합치되도록 축소·제한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판결요지를 발췌해 싣는다<편집자주>.
(중략)
라. 당원(본 재판부를 말함)의 판단
① 먼저 반국가단체가입의 점에 대하여 본다.
피고인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검찰이래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어, 결국 이 부분 공소사실에 대한 증거로는 위 류낙진과 안재구의 진술 및 이에 기초한 위에서 본 판결사본의 기재가 있을 뿐이다.
무릇 형사재판에 있어서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할 수 있는 증거능력을 가진 증거를 기초로 하여야할 것이다.
먼저 위 류낙진의 원심 법정에서의 진술에 의하면, 1993. 1. 경 류낙진은 전주쪽에서 통일운동하는데 쓸만한 사람이 있으면 추천해 달라는 공소외 안재구의 제의를 받고 자신이 그에게 피고인의 신원에 관하여 이야기한 사실은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그때까지 피고인의 대학에 대하여 알고 있던 경력 사항 등을 피고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위 안재구에게 이야기 한 것이며, 또한 피고인과 자신이 1993. 6.경에는 만난 사실이 없고, 같은 해 5. 초경 마지막으로 만났으며, 그 당시 피고인에게 구국전위에 가입할 것을 권유하거나 구국전위의 강령규약 등을 보여준 바도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하면서, 검찰에서의 피고인이 구국전위와 관련이 있다는 일부 진술은 안전기획부에서의 조사당시의 억압된 심적 분위기가 연장되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
한편 위 류낙진은 검찰 수사 초기단계에서는 자신의 안전기획부에서의 진술을 답습하다가, 제7회 피의자신문조서 작성시에 이르러 공소외 박화국 등에게 구국전위의 강령규약 등이 담긴 필사본을 보여주면서 조직의 유형에 관하여 설명한 사실은 있으나 피고인을 위 구국전위에 가입시킨 사실은 없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
그리고 안재구의 원심 법정에서의 진술에 의하면, 자신의 종전 검찰 진술 등을 모두 부인하면서, 피고인이 구국전위에 가입한 사실은 없다는 취지로 일관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면, 위 류낙진, 안재구의 검찰에서의 일부 진술만으로는 피고인이 위 구국전위에 가입하였다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위 류낙진의 원심법정에서의 진술도 그 전체적인 취지에서 피고인의 변소에 부합되고 있어 이를 가지고 피고인에 대한 유죄의 증거로 삼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다른 증거도 없다.
② 나아가 국가기밀누설의 점과 반국가단체구성원과의 회합의 점에 관하여 본다.
이에 관한 증거로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은 당원이 믿지 않는 류낙진의 검찰에서의 일부 진술 외에는 달리 이를 인정한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다.
나아가 설사 피고인이 1993. 6. 경 위 류낙진을 만나 그에게 순창농민회의 활동을 이야기하였다 하더라도,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이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이거나 그 지령을 받은 자로서의 지위가 인정되지 않음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결국 피고인에게는 국가보안법 제4조(목적수행) 제1항 제2호 나목 소정의 국가기밀누설죄의 구성요건 해당성이 결여된다 할 것이고, 또한 그 당시 피고인에게 위 류낙진에 대하여 그가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이라는 점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워 반국가단체구성원과의 회합의 점도 인정할 수 없다.
한걸음 더 나아가, 피고인에게 위 법 소정의 국가기밀누설죄의 주체의 지위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위 숭창농민회의 활동상황과 같은 내용이 과연 국가기밀이 되는지 여부에 관하여 본다.(중략)
이와 관련하여 종래 대법원은, 국가보안법 제4조 제1항 제2호 소정의 국가기밀이라함은 반국가단체에 대하여 비밀로 하거나 확인되지 아니함이 대한민국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정보자료로서, 순전한 의미에서의 국가기밀에 한하지 아니하고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 각 방면에 관한 국가의 모든 기밀사항이 포함되며, 그것이 국내에서의 적법한 절차등을 거쳐 널리 알려진 공지의 사항이라도 반국가단체인 북한에게는 유리한 자료가 되고 대한민국에게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면 국가기밀에 속한다. (대법원 1993. 10. 8. 선고 93도 1951판결, 1994, 4.15. 선고 94도 126판결, 1995. 9. 26. 선고 95도 1624판결 등 참조)는 취지로 폭넓게 국가기밀의 개념을 정의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론은 "국가기밀"이라는 문언의 내재적 한계 내지 문의적 한계를 훨씬 벗어나고 "기밀"의 실질적 요건을 헐어버리는 것으로서 그 적용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모호하여 일반 국민에게 무엇이 금지되고 처벌되는 행위인가에 대하여 명확한 예측가능성을 제공하는 기능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법적용당국의 자의적인 법해석·적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결국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므로 이를 헌법에 합치되도록 축소·제한하여 해석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위 나목 소정의 "국가기밀"은 "일반인게 알려지지 아니한 것으로서 그 내용이 누설되는 경우 국가의 안전에 명백한 위험을 초래한다고 볼 만한 실질가치를 지닌 사실, 물건 또는 지식"이라고 한정적으로 해석되어야 마땅하다.(헌법재판소 1997. 1. 16. 선고 92헌바6, 26, 93헌바 34, 35, 36 결정 참조)고 당원은 판단한다.
위와 같은 견지에서 보면, 위에서 본 이 사건 순창농민회의 활동사항은 도저히 국가기밀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 하겠다.
결국 이 부분 공소사실은 어느 모로 보나 죄가 되지 않거나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 (중략)
인권하루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