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지법 민사합의42부(재판장 정은환 부장판사)는 국가보안법 전력을 문제삼은 여권발급 지연으로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1억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화가 홍성담(42) 씨의 청구를 “이유없다”며 기각했다.
이번 재판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헌법에서 보장한 ‘거주․이전의 자유’가 과거 국가보안법 전력을 이유로 침해될 수 있는가의 여부를 다룬 것으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원고 홍성담 씨가 “여권법 제8조 제1항 제5호의 요건이 지나치게 막연하며 이를 근거로 장기간 출국심사(신원조사)를 하는 것은 여권제도를 사실상 출국허가제로 운영하는 것으로 헌법에 보장된 출국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고 문제제기한데 대해, 재판부는 “여권법 규정을 보면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현저히 해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자’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여권발급이 지연되거나 거부되는 경우가 있다 하여도 사실상 출국허가제로 이용될 수 있는 위헌규정이라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한 “여권발급신청자신원조사처리규칙과 보안업무규정 시행규칙에 따르면 여권신청자 중 국가보안법 위반자는 안기부에 통보하도록 되어있고, 해외여행자에 대한 신원조사는 안기부의 직무범위에 속하므로 원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밝혔다.
신원조사 30일 초과해도 무방
재판부는 원고가 ‘안기부의 신원조사가 보안업무규정 시행규칙상의 신원조사처리기간을 초과했으므로 위법하다’고 주장한데 대해, “보안업무규정 시행규칙은 법규적 성격을 갖지 않는 행정규칙에 불과할 뿐아니라, 30일 이내 처리하도록 정한 것은 훈시규정에 불과할 뿐 강행규정이나 효력규정이 아니므로 7일간 초과한 것은 문제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홍성담 씨 93년 사면복권
홍성담 씨는 89년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를 담은 슬라이드를 평양축전에 보낸 혐의로 구속되어 징역 3년을 선고받고, 93년 3월 사면복권 되었다. 지난 8월 국제앰네스티의 초청으로 영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안기부가 신원조사를 이유로 여권발급을 지연시켜 출국하지 못하자, 96년 8월 27일 국가를 상대로 손배소송을 청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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