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 바이 바브시카 Bye Bye Babushka
미국/레베카 프레그 감독/75분/다큐멘터리/컬러
이 영화는 러시아 집단농장에서 일하는 늙은 과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소련 사회주의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주제는 사회주의에 있지 않고 사회주의에서의 여성인권에 있다.
우리에겐 모든 길과 직업이 열려 있다던 과거 레닌의 혁명기에 아직도 감동을 멈추지 않고 있는 할머니가 있는가 하면, 남편이 사하로프의 추방에 반대하는 편지를 쓴 이유로 10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숨진 할머니의 소감도 있다.
여성들은 그 시대 그 상황 중에서 가장 힘든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 러시아에서의 공산주의 건설기에 여성의 ‘사랑의 정’은 우아하지 못하고 매슥거리며 반인륜적인 것이라고 기질을 바꾸고자 하였으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영화는 ‘바바 마리나’라는 한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그녀가 많은 사람들에게 베푼 사랑을 되새기게 한다. 공산주의와 함께 마리나마저 떠나보낸 이곳 바바리노의 여성들은 그들만이 지켜온 ‘사랑의 정’을 키울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것이다. 그 사회의 이름이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 하는 것은 결코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 갈릴리에서의 결혼 Noce En Galilee
프랑스․팔레스타인/1987/미셀 클레이피 감독/116분/극영화/컬러
<갈릴리에서의 결혼>은 정치에서 일상의 관습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게 맞물린 인간사의 모순을 섬세하게 짚어낸 영화다.
이스라엘군의 통제 아래 있는 한 팔레스타인 마을에서 성대한 결혼식이 벌어진다. 이스라엘에 점령당한 땅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팽팽한 긴장감에 더해, 결혼식에서 마저 정치적인 선택의 문제가 끼여든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끝나는게 아니다. 새 신랑은 권위적인 아버지의 위세에 눌려지내는 심약한 자신에 대해 갈등이 많다. 신부는 신부대로 순결을 명예라 여기는 낡은 관습에 대해 불만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남자와 여자, 어른과 청년 세대 등 여러 층위로 얽힌 갈등이 한꺼번에 숨어 있는 것이다.
<갈릴리에서의 결혼>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을 딱딱한 큰 주제로 풀어가는 게 아니라 일상의 문제를 통해 바라보면서 조금 다른 시선을 보여준다. 일상에서 가장 첨예한 정치적 문제들이 충돌하는 모습을 따라가는 이 영화의 풍경은 자세를 바로 잡고 생각해야할 거리를 던져주지만 그래도 결혼식 잔치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