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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특집> 국민인권기구, 호주의 현황과 한국의 전망③

정부 및 민간단체와의 관계


국민인권기구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로부터 독립해 있을 것과 민간단체와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할 것이 요구된다.

국민인권기구의 주요 업무는 인권의 관점에서 국가기관들의 정책이나 행위를 문제삼고 그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정부 독립성은 국민인권기구의 업무 수행을 위해 필수적이다. 인권위원회의 위원에 대해 임기 보장, 해임 제한등 강력한 신분보장책이 주어져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국민인권기구도 정부의 조직 및 예산 통제를 받는 국가기구의 하나인만큼 정부의 이해와 협력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국민인권기구의 진가는 역시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할 때, 즉 정부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직언할 때 드러나는 법이다. 국민인권기구는 이런 경우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게 된다. 실제로 민감한 인권문제에 대해 직언하지 못하는 국민인권기구란 정부의 하수인이나 대변인으로 전락한 또하나의 관료적 국가기구일 뿐이다.


대정부 독립성 필수적

법령으로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어도 그 실효성은 위원 개개인의 독립성 수호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나아가서 국가의 전반적 통치구조가 얼마나 민주주의에 충실한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이를 가늠해볼 수 있는 가장 현실적 척도는 국민인권기구와 인권관련 민간단체와의 관계다. 즉, 국민인권기구가 민간단체와 긴밀한 협력적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면 일단 위원 개개인의 독립성 수호 의지가 강하고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가 민주적이라 보아 무방할 것이다. 민간단체들은 인권 관련 현장 정보와 교육의 통로이자 원천이다. 국민인권기구가 이들 단체를 통하지 않고 '국민'들과 직접 접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실제로는 이들이 바로 국민인 것이다. 따라서 일반대중이나 공동체에 뿌리내리고자 하는 국민인권기구는 일차적으로 민간단체들의 이해와 협력을 구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들의 강력한 지지와 성원이 없이는 어떤 국민인권기구도 정부의 부당한 압력과 요구를 이겨낼 정치력을 가질 수 없다. 또한 민간단체들의 강력한 비판과 감시가 없이는 국민인권기구 역시 타락하기 쉬운 국가기구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민간단체와의 관계가 가늠자

호주 국민인권기구도 민간단체들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민간단체들에 대한 홍보와 대화를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민간단체들도 인권위원회를 쉽사리 접근할 수 있는 기구로 여기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호주의 경우 민간단체와의 협의는 비공식적으로 이뤄질 뿐 법적으로 강제되거나 일정한 방식으로 제도화된 것은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많은 민간단체들이 아쉬워했다. 정례화, 제도화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아가서 호주의 민간단체들은 인권위원 임명에 대해서도 아무런 공식 권한이 없었다. 추천권도, 비토권도, 청문권도 없었다. 이러한 권한을 부여할 경우 민간단체와 위원회가 너무 밀착할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민간단체들에 대해 공식적으로 후보 추천권이나 청문권을 부여한다고 해서 독립성이 손상되거나 양자의 역할에 혼동이 초래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예산의 독립성 확보도 관건

예산의 독립성 확보도 독립성과 관련한 중요한 문제의 하나다. 호주에서는 지난 96년 3월에 출범한 보수연립정부가 자신들의 집권기간중(3년간) 무려 42%의 예산을 삭감한다는 방침 아래 국민인권기구의 조직과 인원을 대대적으로 축소하고 있는 중이다. 원주민 인권이나 반차별정책을 '무책임할 정도로 지나치게' 옹호해온 죄값이란다.

반면 노동당 정부가 집권했던 지난 13년간 호주의 국민인권기구는 예산과 조직 면에서 대대적인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국민인권기구가 행정부에 속해있는 이상, 정권의 성격에 따라 가용예산과 조직이 어느 정도 바뀔 수밖에 없기는 하겠지만 이러한 현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관련법에 국민인권기구의 예산에 대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독자성을 인정할 것이 요구된다는 취지의 문언을 넣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정부와의 긴장관계 불가피

요컨대 제대로 기능하는 국민인권기구는 정부와 어느 정도 긴장과 갈등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는 국민인권기구는 민간단체와의 협력관계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민간단체의 지지를 통해 확인되는 국민의 성원이 없이는 어떤 국가기구도 정부와의 긴장관계를 감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민간단체들은 국민인권기구의 성과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 점에서 국민인권기구는 민간단체들과도 일정한 정도의 긴장관계를 면할 수 없다.


곽노현(방송대 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