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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특집> 국민인권기구, 호주의 현황과 한국의 전망⑤-끝

새 정부의 방침과 인권운동의 의무

국민인권기구의 설치는 100대 과제 중에서도 새 대통령의 민주개혁의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핵심과제의 하나다. 국민인권기구 설치를 미룰 경우 인권과 민주화를 향한 새 정권의 의지가 퇴색한 것으로 오인되기 쉽다.

다행스럽게도 국민인권기구 설치는 새 정부의 100대 과제중 하나로 이미 확정, 공표되어 있는 상태다. 국민인권기구는 하지만 '장기과제'의 하나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에 그 실현 여부를 전혀 낙관할 수 없다. 국민인권기구 창설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새 정부의 방침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는 듯하다. 첫째, 현재의 경제난국이 지속되는 이상 정부기구를 신설하는 것은 부절적하다는 것으로 일종의 상황론이다. 둘째, 국민인권기구에 대해 충분히 연구,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일종의 신중론인 셈이다.

인권운동의 입장에서는 국민인권기구 설치를 이처럼 미뤄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오히려 금년 12월 10일(인권의 날)까지는 필요한 입법을 완료하도록 새 정부에 최대한의 압력을 가해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민인권기구의 설치는 100대 과제 중에서도 새 대통령의 민주개혁의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핵심과제의 하나다. 국민인권기구 설치를 미룰 경우 인권과 민주화를 향한 새 정권의 의지가 퇴색한 것으로 오인되기 쉽다.

둘째, 유례없는 경제위기를 맞아 인권도 위기상황에 처해있다. 벌써부터 갖가지 고용차별이 기승을 부리는가 하면 인권은 뒷전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인권기구 설치를 미루는 것은 인권침해를 조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셋째, 금년은 50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룩한 해이자 헌법이 제정되고 세계인권선언이 반포된지 50년이 되는 해이다. 국민인권기구의 취지가 헌법과 세계인권선언에 실효성을 부여하자는데 있는 것이니만큼 국민인권기구를 설치하기에 금년만큼 좋은 해는 없다.

넷째, 99년서부터 내각제 개헌으로 몸살을 앓을 예정인 새 정권 아래서는 '장기과제'의 실현 여부가 매우 불투명한 상태다. 설령 내각제 개헌정국이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해도 국민인권기구처럼 개혁적 색채가 짙은 핵심과제의 경우 기득권세력의 저항이 덜한 정권 초기에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늦출 이유가 없다

국민인권기구에 대해 충분한 연구검토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서두르면 연말까지 얼마든지 법안을 작성하고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필요한 입법절차를 마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국민인권기구 설치를 늦출 이유가 없다.

다만 국민인권기구를 설치할 때 다음 사항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첫째 대정부 독립성을 보장해야 하며 사회경제적 인권도 관장하도록 해야 한다. 이는 호주의 교훈이다.

둘째, 국내인권법을 정비하는 것은 물론 무엇보다도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여 국민인권기구의 활동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헌법과 노동법의 추상적 차별금지 조항을 제외하고는 구체적 차별금지입법이 없는 상태다. 그 결과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불합리한 차별행위에 대해 실효성 있는 구제방법이 없는 경우가 많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이러한 상태를 종식시키는데 필수적이다. 그밖에도 행정정보공개법이나 사생활정보보호법등 인권관련법들을 대폭 정비하여 국민인권기구의 활동기반을 강화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이미 존재하는 관련위원회들과의 관할권 중첩문제를 처리해야 한다. 이는 특히 고충처리위원회, 언론중재위원회, 노동위원회, 남녀고용평등위원회, 각종 장애인관련위원회 등의 권한과 관련하여 검토될 필요가 있다.


'타락'을 피해야 한다

끝으로 국민인권기구의 문제점은 자칫 또 하나의 관료적 국가기구로 타락하기 쉽다는 데 있다. 이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국민인권기구는 한편으로는 국내민간단체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인권기구들과 부단히 접촉함으로써 스스로의 국가기구적 성격을 최대한 약화시켜야 한다. 즉, 국민인권기구는 보다 토착적인 국내인권단체를 통해 밑으로부터 수혈 받아 '국민'인권기구가 되어야 하며, 나아가서 보다 보편적인 국제인권법을 통해 위로부터 수혈 받아 국민'인권'기구가 되어야 한다. 이럴 때만이 국민인권기구는 인권의 전(前)국가적 성격과 초(超)국가적 성격을 동시에 반영하면서 국제인권시대의 인권파수꾼 노릇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한마디로 국민인권기구는 국제사회와 시민사회의 국가내 접속 통로로 고안되었으며 그렇게 기능해야 한다. 향후의 국민인권기구 설립과정은 이러한 인식을 확산하고 실질화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곽노현(운영위원, 방송대 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