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 김광식 씨가 구속됐다. 경찰에 자진출두하기 전 김 위원장의 기자회견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편집자주>.
지난 36일간의 뜨거운 열기를 발전적으로 승화시켜 내부적 단결과 노동조합의 발전을 위한 토대를 갖춰주지 못한 채 이 투쟁의 법적 책임을 위하여 스스로 감옥으로 가야만 하는 오늘의 현실에 깊은 좌절과 회한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저에게 도의적 법적 책임을 물음으로서 더 이상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수배와 구속, 징계와 해고 등의 고통과 희생은 끝나야만 합니다. 그것은 노사정간의 합의사항이자 현재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호소하고자 합니다.
노사정간 모두의 공멸을 피하기 위하여 노동조합은 정리해고 수용이라는 제 살을 도려내는 중대결단을 내렸습니다. 노동조합은 내부의 엄청난 반발을 무릅쓰고 오늘의 이 경제적 어려움과 공권력과의 충돌로 인한 인명피해를 막아보고자 정리해고 수용이라는 중대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노사정간의 합의사항을 농성대오의 해산이후 회사는 하나씩 파기하고 있어 더 이상의 교섭을 통하여 진전될 것이 없는 상황에서 조합원의 총의를 통한 이 투쟁의 마무리는 지도부의 욕심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투쟁대오가 해산한 지금, 합의정신 보다는 엄연히 힘의 논리가 관철되고 있는 현실에서 조합원의 동의를 통한 투쟁의 마무리조차 위원장의 욕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노사정 합의정신을 파기한 회사측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큰 틀에 대한 노사정간의 합의만 이루게되면 그 다음의 구체적 세부적 사항은 어렵지 않다고 판단하고 농성대오를 해산한 것이 지금에 와서는 뼈아픈 회한을 가지게 하고 있습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농성대오를 푼 것은 위원장인 저의 순진함과 실수였던 것입니다.
지금 회사측은 후속사항인 고용안정기금과 고소, 고발, 징계, 가압류문제에 대하여 정상조업이 진행중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가시적인 조치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노사간의 협의를 통하여 진행해야할 사항인 전환배치 문제를 무기로 하여 전환배치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정상조업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며 합의사항을 파기한 채 이번 투쟁을 주도해온 무급휴직자 동지들과 현장활동가 동지들에게 무차별적인 체포, 구속, 징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합의정신의 파기이며 노동조합내부의 어려움을 틈타 노동강도를 강화하고 현장 노동자들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장악하여 밑으로부터 노동조합을 무력화 시켜나가려는 비열한 행동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를 강력히 촉구합니다. 평화적 해결의 결과가 대량구속과 수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부와 집권여당이 평화적 해결이라는 정치적 성과는 챙기고 보수 기득권층의 비난여론 때문에 스스로가 감당해야할 약속과 책임은 이행하지 않는 무책임한 노동행정이라 비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개별폭력엄벌의 시퍼런 사슬은 파업을 지키기 위하여 우발적으로 진행된 노동자들에게만 겨눠지고 있으며 정몽규 회장의 폭력에 대한 고소고발문제에 대해서는 조사조차도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며 이것은 법이 편파적으로 집행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파업이 평화적으로 해결되어 정상조업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노동부장관과 정부 중재단이 약속한 사법적 책임의 최소화는커녕 오히려 갈수록 수배자는 늘어나고 구속자가 늘어나고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이번 파업투쟁에 대한 모든 사법적인 책임은 위원장인 본인에게 지워져야 하는 것이 노사정간의 합의정신이자 정부의 책임 있는 태도라 하겠습니다.
36일간의 기나긴 고용안정투쟁은 회사나 노동조합 모두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낳았으며 노사정간의 합의정신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음으로서 재연의 불씨를 지피고 있습니다. 이번 투쟁을 매듭짓지 못하고 상처와 아픔만을 남겨둔 채 감옥으로 가야만 하는 저의 심정은 심장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미 수많은 동지들이 감옥에 있으며 또 수많은 노동자들이 수배자로 떠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조합원들이 회사에서 쫓겨나 길거리를 헤매고 있습니다. 이러한 동지들과 조합원들을 보호하지 못한데 대하여 위원장으로서 깊은 회한과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이제 제가 들어감으로서 더 이상의 수배와 투옥의 고통은 끝나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회사와 정부에 촉구합니다. 이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는 길은 더 이상 노동조합에게는 없습니다. 제가 매듭짓지 못한 것은 이제 회사와 정부가 풀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이번 투쟁의 상처와 고통이 치유되어 노사간의 평화가 유지가 될 것이며 더 이상의 이러한 아픔이 재연되지 않을 것입니다.
1998. 9. 12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 김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