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적 직선제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본부'(이하 공투본)의 철도노조 점거농성, 철도노조 집행부의 사무실 탈환, 공투본의 재탈환, 집행부의 대의원대회 강행 공투본의 저지, 이 과정에서 빚어진 물리적 충돌사태 등이 연일 보도되면서 내막을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은 도대체 왜 저렇게 사태가 악화되고 있는가에 의문을 품는다.
그러나 대통령도 87년부터 직접선출하고, 50만 민주노총의 위원장도 직선으로 뽑자고 주장되었던 판국에 찬성칸만 있는 부정투표가 판을 치고, 노조가 사용자측에 돈을 상납하고, 조직깡패를 동원해 직선제를 하자는 노동자들을 습격하는 철도노조의 시계는 분명 거꾸로 돌고 있다. 이 모든 사태의 직접적 계기는 1월 14일 "간선제에 의한 대의원 선출은 무효"라는 대법원의 판례가 나오면서 불붙기 시작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어용으로 점철된 철도노조와 민주노조를 건설하고자 하는 철도노동자의 투쟁의 역사에 있다.
1948년 노조가 설립된 이래 단 한번도 위원장을 전체 조합원의 손으로 뽑아본 적이 없는 철도노조는 최근 드러나는 비리보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철도청, 노동부, 용산경찰서 등과 두루 돈을 상납하는 우호적 지원관계를 형성해 왔을 정도로 부패, 비민주, 관료화, 노동귀족화의 문제가 심각하다.
최근의 사건 악화에도 51%가 넘는 조합원의 총회요구를 묵살하고 조합원 3만3천여 명중에 간선으로 선출된 8십여 명만 모여 자신들만의 대의원대회에서 "규약은 직선제로 개정하되 현재 임원의 임기는 보장한다"는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결정을 강행한 집행부의 잘못이 크다. 그동안의 반노동자적 행태를 반성하고 곱게 물러나도 용서가 안될 처지에 기득권을 보호받기에 연연한 어용집행부에 대해 공투본은 "조합원 찬반투표에 의한 직선제와 그에 따른 총선거"를 성사시키기 위해서 그들만의 중앙위원회와 대의원대회를 저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그러한 대회가 성사되지 못하도록 노조사무실을 농성장소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철도노동자의 고용불안은 외면한 채 민영화에 동조해 왔던 어용노조가 민주화돼야만 생존권 보장투쟁이 가능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기도 하다.
철도, 한전, 체신 등 한국노총 산하 공공부문 거대노조의 민주화 물결은 '민주노조건설, 어용노조민주화'를 내걸고 타올랐던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연장선에 있다. 지금 철도노동자들은 그 마지막 임무를 향해,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라는 새로운 투쟁을 책임지기 위해 전력으로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김혜란(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