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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고> 구로경찰서에서 보낸 10시간

5월 31일. 구로역에서 만취한 한 남자가 근무중인 공익요원을 구타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구타를 말리던 내게도 행패를 부렸고 결국 경찰이 출동했다. 현장의 다른 한 사람과 함께 "증언이 필요하니 협조해 달라"는 경찰의 요청으로 구로서까지 가게되었다. 여기까지는 밤거리에서 흔히 있을법한 일이다.

문제는 경찰서에서 시작되었다. 경찰서에서 그 가해자가 주머니에서 꺼낸 뭔가로 느닷없이 내 머리를 10여 회 내리찍었다. 이로 인해 나는 머리와 얼굴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경찰은 병원 후송 후 "바빠서 돌아갈테니 치료는 자비로 하고 가해자 처벌을 위해 반드시 경찰서로 돌아와 달라"는 요청을 할 뿐이었다. 경찰서 내에서 발생한 폭력으로 부상을 입었는데 아무런 책임이 없는 듯한 경찰의 행동에 수긍이 안되었다.

응급환자로 인해 치료를 받으려면 오래 기다려야 한다기에 일단 경찰서에서 이야기를 마친 후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구로서에 갔다. 병원의 사정을 얘기하던 내 귀에 경찰의 통화 내용이 들렸다. "거기 고상만이 자료 좀 보내요" 어이가 없어 "고상만이가 뭡니까"라고 항의했다. "죄송합니다. 급하다보니 그랬네요" 나는 경찰이 당연히 이렇게 말할 줄 알았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내가 그렇게 말하건 말건 당신이 뭔데 통화 내용을 가지고 말이 많아"였고, 반말을 사용하지 말아달라는 내 요청에 "너 되게 똑똑한데 어디한번 보자"라며 나를 폭력피의자로 조작하기 시작했다. 내가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고 앞서 말한 가해자가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어 경찰은 당시 상황을 증언하려 함께 경찰서에 왔던 증인을 밖으로 내몰았다. 물론 경찰은 그를 다시 부르지 않았다. 나는 증인을 내쫓은 것에 항의했으나 경찰은 "그새끼. 더럽게 잘났네. 야. 일해야 하니까 구석에 가 있어"라는 핀잔과 반말로 대꾸했다. 나의 머리 부상에 대해서는 "스스로 컴퓨터에 부딪혀 부상을 입은 것"으로 조서를 꾸미라고 말을 주고받았다. 더 이상의 항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병원에 가게 해 줄 것과 서장 면담을 요청했다. 그러나 경찰은 "너는 피의자니까 48시간동안 여기에 인치할 수 있고 치료도 나가서 해. 서장면담은 못 시켜 줘"라고 했다. 왜 안되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내 맘이다!"

또 한가지, 내 머리에서 흐른 피가 경찰의 컴퓨터에 떨어지자, 경찰은 "야. 이거 니가 묻혔으니까 니가 닦아"라고 말했다. 뭐라고 표현 해야할까? 그 모멸과 치욕감은 지금까지도 내 주위를 뱅뱅 돈다. "제가 실수로 오뎅 국물을 흘린 것도 아니고 여기 경찰서에서 폭행 당해 피를 흘린 것인데 이걸 제가 닦아야합니까?" 경찰의 답변, "그럼 누가 닦아"

길고 긴 10시간이 지나 결국 무혐의로 경찰서 문을 나서는데 무더위 속에서도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오늘 밤 구로서에서 또 어떤 시민이 무슨 일을 겪을런지…


고상만 (반부패국민연대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