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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단식농성 들어간 중국동포들

“절망 끝에 벌이는 필사의 투쟁”


"사람에 등급이 매겨져 있나요? 이 땅엔 평화도, 인권도 없어요." 지난 27일부터 서울에 있는 중국동포의 집에서 '중국동포·외국인노동자 인권피해 보상촉구 단식농성'에 들어간 중국동포들은 짙은 분노를 토해냈다. 돈을 벌기 위해 고국에 와서 당한 온갖 차별과 인권침해가 몸서리쳐지기 때문이다. 경찰, 검찰 등 법 집행기관은 이들을 보호하기는커녕, 되레 가해자들을 싸고돌아 이들의 가슴에 더 큰 멍을 남겼다. 받지 못한 임금, 산업재해 보상 등에 대한 희소식은 몇 해가 흘러도 들려오지 않는다. 하기에 중국동포들은 이번 농성을 절망 끝에 벌이는 '필사의 투쟁'이라고 말하고 있다.

96년 6월부터 97년 12월까지 경기도 안양의 보아설비산업(주)에서 일한 주송암 씨는 아직껏 1800만원의 임금을 받지 못했다. 그 돈을 받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닌 지 벌써 3년 째. 하지만 더 딱한 건 주 씨와 함께 일하다 이젠 이미 고인이 되어 버린 강호봉 씨다. 그는 1500만원의 임금을 받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다 지난 해 10월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 지난해 6월 빚까지 내서 한국에 온 강 씨의 부인 김영숙 씨는 엉겁결에 남편 상을 당하고 중국에 있는 아들에게 보낼 학비가 없어 한숨만 쉰다고 했다.

98년 4월부터 5월말까지 주차장 철근작업을 했던 장영남 씨는 막상 일을 다 마치고 돈을 받을 즈음 강제추방을 당하고 말았다. 공사를 맡겼던 사람이 장 씨를 '불법체류자'로 신고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중국과 한국을 수차례 오가며 검찰에 고소도 해봤지만 공사를 맡기고 돈을 주지 않은 이는 무혐의로 풀려나고 말았다.

경기도 부천시의 동성공업사에서 일하던 최춘복 씨는 지난 해 11월 17일 프레스 칼날에 양손을 잃었지만 회사는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홍춘일 씨는 충북 음성군 삼성면 덕정리 용주산업에서 프레스로 작업 도중 손가락이 잘렸다. 그런데 회사는 홍 씨를 협박해 강제로 합의서에 서명하게 해 놓고 그나마 합의금도 주지 않고 있다. 이처럼 일을 하다 몸이 망가졌는데 보상을 못 받은 이들은 수두룩하다. 또 보상을 해준다 하더라도 회사측은 중국동포들 대부분이 '불법체류자'라는 점을 악용해 터무니없이 적은 돈에 합의하도록 강요하기 일쑤다.

"중국동포도 그렇지만 외국인노동자들도 정말 인간 대우 못 받고 사는 것 같아요. 당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한국에 오래 있기 싫어요." 지난 해 11월 아버지 백광기 씨가 산업재해로 죽은 후 그 뒤처리를 위해 한국에 온 지 어느덧 1년이 넘은 백창현 씨는 고개를 내저었다. 지난 1년, 백 씨에게 비쳐진 한국은 "잘 사는 나라 사람들에겐 더 없이 굽신거리고, 못 사는 나라 사람들은 짓밟는 곳". 이처럼 비정한 나라 한국에 백 씨는 작은 소망 하나를 남겼다. "이곳에 있는 중국동포, 외국인노동자들 합법화하고, 더 이상 차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