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부산 앞바다, '아무한테도 알리지 말아라'
3년 전 우리나라에서 미군 핵잠수함이 급부상하면서 일반어선을 침몰시켰다는 사실이 문화방송 보도국에 의해 뒤늦게 밝혀졌다.
지난 98년 2월, 부산영도 앞바다 6마일 해상을 지나던 27톤 급 연안어선 영창호(선장 정창수)는 갑자기 떠오른 미 제7함대소속 7천 톤 급 핵잠수함 라홀라(당시 선장 데이비드 존스)호를 채 피하지 못하고 충돌했다. 라홀라호가 갑작스레 부상해 미리 소너(Sonar)로 탐지할 수도 없었고, 달리 대처할 방법도 없었기 때문이다.
피해자 정 선장만 입건
두 선박의 충돌로 영창호는 배 밑 부분에 큰 구멍이 뚫렸고, 순식간에 거의 수직 상태로 침몰했다. 승선 중이던 정창수 선장과 나머지 선원 4명은 바다에 빠졌다. 정 선장 일행은 라홀라호 승무원들에 의해 겨우 구조됐으나 정작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진해항에 정박한 라홀라호는 정 선장 일행을 부산해경에 넘겼고, 이들은 업무상과실 등 혐의로 입건됐다. 그러나 막상 침몰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미군은 입건하지 않았다. 한미행정협정(SOFA) 형사재판권 규정에 미군범죄에 대한 1차적 권리를 미국이 갖고 있고, 미군 작전수행 중 저지른 범죄에 한국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SOFA, 작전 중 미군범죄 처벌 난망
미군은 이후에도 한국 정부의 합동 조사 요구를 거부하고 보안상의 이유를 들어 핵잠수함의 사고부위 사진촬영 요구조차 거부했다. 미군은 일본에 있던 미 제7함대 조사단을 급파해 자체조사를 실시했으나 조사내용은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국방부 해군 고위관계자는 "미군의 자체 조사 결과 잠수함 측의 잘못이 드러나 함장과 부함장이 해임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한편 입건된 정 선장은 해경에서 한 차례 조사를 받았으나 크게 문제되지 않았고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이에 자신의 처지를 억울해 하던 정 선장은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직접 미국무성에 피해보상을 요구, 98년 10월 피해 금액의 절반 정도인 2억 2천여 만원의 보상을 받았다. 그러나 정 선장은 이미 사고 직후 선박허가증을 빼앗긴 상태라 속초에서 다른 사람의 배를 타야하는 처지가 됐다.
정 선장은 13일 소파개정국민행동, 매향리범대위, 전민특위 주최로 광화문 열린시민마당에서 열린 '소파전면개정' 집회에서 이 사연을 털어놨다.
경찰, '아무한테도 알리지 말라'
정 선장은 "일본 배가 침몰했을 때는 일본 정부가 앞장서서 사과를 받아냈었는데, 나 때는 경찰이 와서 '이 일을 아무한테도 알리지 말라'는 말만 했다"며 "우리나라 법이 대체 어떻게 돼 있길래 잠수함에 받힌 내가 가해자 취급을 받으며 피해를 받아야하나"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집회참가자들은 영창호 사건과 관련 당국에 △진상규명·미국의 공식 사과 △정 선장에 대한 물적·심적 피해 보상을 요구했다. 소파개정국민행동 오두희 상임집행위원장도 "정창수 씨 사건은 불평등한 소파로 인해 생긴 필연적인 권리 침해 사건"이라며 "진상을 파악하고 사안이 어떻게 처리되었나를 확인해 미흡한 점이나 위법한 부분이 발견되면 한국·미국 정부에 법적 대응을 비롯 영창호 사건의 부당함을 알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