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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누가 레미콘 노동자 안동근을 죽였나?


5일 오전 7시 40분 전국건설운송노조(위원장 장문기, 레미콘노조) 인천지부 안동근 사무처장은 서울대 병원에서 끝내 숨을 거뒀다. 92년 9월 전국믹서트럭협회 창립, 94년 5월 불량레미콘폭로, 2000년 9월 레미콘노조 결성, 2001년 4월 운송노조 전면파업에 이르기까지, 레미콘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곳에는 항상 안 씨가 있었다. 레미콘노조 파업 150일째, 레미콘노조 유진지회 파업 200일째인 5일. 그는 파업의 끝을 보지 못한 채 레미콘 노동자를 위해 바쳤던 지난 10년의 생을 마감했다.

현재 그의 주검은 인천 가좌성모병원에 안치돼 있다. 동암역에서 마을버스로 10분을 달려 도착한 그곳은 의외로 인적이 드물었다. 가좌성모병원은 조용히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었고, 고즈넉한 분위기는 레미콘 노동자들의 답답함을 그대로 느끼게 해 주었다.

병원입구에서 만난 서용호 부위원장은 계단에 앉아 담배 한 개피를 입에 물고 초점 없이 먼 하늘을 바라봤다. 이윽고 안 씨를 죽음으로 내몬 계기가 된 ‘3월 9일’을 시작으로 기막힌 저간의 사정을 풀어놨다.


용역깡패 폭행과 투병생활

“그날 안 동지는 부천 유진지회 지원차 나갔어요. 당시 구사대와 용역깡패들이 조합원들을 집단폭행했었죠. 저도 안 동지랑 현장에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졌어요. 나중에 눈이 주먹만큼 붓고 가슴이 멍들고 온몸이 다 짓밟히다시피 해서 (용역깡패에 의해) 들려나와 집어 던져졌죠. 거의 반죽음 상태였어요. 그래서 제가 112에 신고를 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 있는 경찰들한테 도움을 청하라는 거예요. 조합원들이 맞고 있는 걸 뻔히 보고만 있는 놈들한테….”

그때 지금 주검이 있는 가좌성모병원에 입원했던 안 씨는 장에 멍이 들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질 파업투쟁을 병원에서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는지, 그는 상태가 다소 호전되자 바로 퇴원해, 4월 10일 집회의 사회까지 보면서 이번 파업투쟁을 손수 열어 젖혔다.
레미콘노조의 파업이 끈질기게 장기화되듯, 폭행의 후유증도 그를 끈질기게 따라다녀 4월 하순 가좌성모병원에 또 입원했다. 이때 복수가 차 하루에도 몇 번씩 물을 빼내고 간과 콩팥이 제 기능을 못하는 지경인데도 병명도 밝혀지지 않았다. 이후 인하대 병원을 거쳐 서울대 병원으로 옮기고 나서야 그의 병명은 단백질과 관련된 희귀병으로 판정됐다.


“없는 놈들은 하소연도 못한다”

“없는 놈들은 매맞아도 하소연할 곳도 없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우리 레미콘 노동자들은 지금까지 11명이 구속, 60명 불구속 그리고 300명 정도가 벌금형을 받았어요. 우리는 대화를 하자는 데, 저들은 돈과 힘으로 무조건 억압하죠.” 서 부위원장의 이야기는 눈물만 없을 뿐이지 울분에 가까웠다.

“회사는 임금은 죽어도 못 올려주겠다면서, 한 사람 당 하루에 20만원씩이나 주며 용역깡패를 고용해 폭력을 행사했어요. 정부는 노조필증을 내 줬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데, 사용자를 지도하거나 처벌할 생각은 안 합니다. 아무리 고소․고발을 해도 검찰은 대법원 판결 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고….” 이때 서 부위원장은 다 피운 담배꽁초의 필터를 잘게잘게 찢으며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좋아요. 백 번 양보해서 구속, 벌금, 용역깡패. 다 좋다고 합시다. 우린 다 처벌받았어요. 그런데 사용자들은 뭡니까? 불량레미콘, 불법매립에 고소고발을 숱하게 해도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있는 자들 논리 앞에 정부도, 법도 무기력하죠. 정말 썩어도 너무 많이 썩었어요. 이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결코 잊지 못한다

검․경, 정치권의 묵인 아래 ‘노조는 절대 인정 못한다’고 버티는 사용주 앞에서 노동자들의 투쟁도 힘겨울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많은 조합원들이 파업대오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서 부위원장은 단호히 말한다. “조합을 떠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요. 끝까지 투쟁해서 이길 수 있는 싸움을 접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생존의 문제와 가족 때문이지요. 그 끝을 보지 못하고 울분을 삭이면서 중간에 접는 동지들을 조합을 떠난 사람으로 보면 안 되죠.”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는 현재 먹고 사는 문제를 무조건 도외시할 수 없는 상태에서 레미콘노조는 투쟁의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이에 따라 6일 조합원 총회를 열어 향후 투쟁방향을 결정한다.

“어떤 식으로든 조합원들은 복귀할 겁니다. 그리고 집행부는 끝까지 투쟁할 거예요. 조합원들은 150일이 넘는 파업을 쉽게 잊지는 못할 겁니다. 파업을 오래 끌면 노조가 와해될 것이라고 짐작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서 부위원장의 약속은 7일 아침 발인을 하는 안동근 씨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기에 충분한 듯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