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 정부는 화염병 시위자는 물론 집회, 시위 주최자에 대해서도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병행하여 불법폭력시위 방지 대책을 강화한다는 이른바 ‘화염병 시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에피소드 2: 서울지검은 불법 폭력시위 피해자들이 집회를 주도한 단체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불법 집단행동 피해신고센터’를 청사 내에 설치, 운영하고 있다.
에피소드 3: 서울지방법원 민사50부는 삼성생명이 해고노동자들을 상대로 낸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 사건에서 “현관에서 직원들과 몸싸움을 하고 확성기로 회사를 비방하는 구호를 외쳐 업무를 방해한 점이 인정되므로 해고노동자들은 사옥 100m 밖에서만 시위하라”고 판결했다.
집회, 시위의 자유를 위협하는 것은 비단 국가권력만이 아니다. 오늘날 집회, 시위의 자유는 ‘법과 질서’를 내세우는 개인들의 발빠른 대응에 의해 무력화될 위기에 처해있다. 위장집회 신고를 제출하여 집회장소를 독점하는 것은 물론, 업무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이나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통해 집회, 시위 주최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렇게 하도록 국가도 나서서 돕고 있다. 검찰이 발벗고 나섰고 법원이 맞장구를 친다. 에피소드 3에서처럼 법원은 집회, 시위와 관련한 일련의 민사사건에서 민법을 헌법 위에 올려놓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법원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헌법에 의해 보장되고 있는 기본권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였다. 기본권은 국가권력을 구속할 뿐만 아니라 개인들 간의 사법관계에 대한 해석에서도 지침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는 얘기다. 집회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민사상의 문제’에 대해 집회주최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그리고 집회참여 자체가 개인적으로 엄청난 민사상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된다면 집회, 시위의 자유는 현격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독일의 헌법재판소와 연방대법원은 민사배상, 가처분 사건 등에서 법원은 집회, 시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해석을 해야 한다고 거듭 밝히고 있는데 이러한 법리를 그저 남의 나라 얘기로만 치부해야 할 것인가?
집회, 시위의 자유에도 물론 한계가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권위주의적 ‘집시법’과 ‘소유적 개인주의’에 빠져있는 민법의 논리 하에서 그어지는 한계는 문제가 있다. 집시법은 개정해야 하고 자유를 소유의 발 아래 놓는 낡은 법리는 극복해야 한다. 그러한 전제 위에서 냉정하게 민사책임을 따져나가야 한다. 물론 이 경우 법원은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한쪽 당사자만의 얘기가 아니라 중립적 기구가 제출하는 증언과 기록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집회의 경과를 기록, 촬영하고, 당해 집회를 중립적으로 평가, 공개하는 기구를 우리의 집회, 시위 현장에서도 만날 수 있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이계수 : 울산대 법학부 교수,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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