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제와 탄력근로제, 대체 무슨 관계인가?
현행 법정근로시간은 하루 8시간, 1주 44시간이다. 만약 노동자들이 법정근로시간대로 규칙적으로 일을 한다면 1달 총노동시간은 1백76시간이 된다. 그런데 근로기준법(아래 법) 50조 2항에 따르면, 1달 총노동시간이 1백76시간을 넘지 않는 조건에서 사용자는 하루 12시간, 1주 56시간까지 일을 시켜도 노동자에게 초과근로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
정해진 총노동시간 안에 사용자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노동시간을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는 제도, 이것이 바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다. 탄력근로제 아래서도 노동시간이 하루 12시간, 1주 56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규정을 두고 있지만, 이는 법 52조 2항과 3항에 의해 무력화된다. 그에 따르면 사용자는 노동자의 합의 아래 노동시간을 1주 68시간까지 늘일 수 있고,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노동부장관의 허가와 노동자의 동의를 얻어 노동시간을 제한없이 연장할 수 있다.
1주 68시간 노동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현실인지는 조금만 상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월∼토 6일 동안 매일 11시간 20분씩 일을 해야 68시간이 나온다. 여기서 점심·저녁시간을 1시간씩 포함시키면 그 주 노동자들은 13시간 20분씩 일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 다음주 내내 유급휴일을 준다고 해도 결코 수용하기 힘든 조건이다.
예를 들어, 1달 임금 1백만원을 받고 고용된 노동자는 월∼금 주중 8시간씩 일하고 토요일 4시간 노동을 한다고 기대하며 살아갈 것이다. △월 1백만원의 안정적인 수입 △규칙적인 노동에 따른 여가생활의 영위, 이것이 이 노동자의 삶의 토대일 것이다.
하지만 하루 업무량이 늘상 똑같지 않아, 어떤 때는 하루종일 노동해도 일이 끝나지 않는가 하면, 어떤 때는 하루 4시간만으로 일이 끝나는 경우가 있다. 아마 4시간만으로 일이 끝나는 날은 다른 때보다 여유있게 일을 할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가 8시간을 초과해 노동함으로써 애초 기대했던 여가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됐을 때, 사용자는 당연히 그에 따른 보상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법에서는 '초과근로 할증률' 제도를 두고 있다.
따라서 초과근로시간에 대해 수당으로 지급하는 것을 대신해 다른 날 법정근로시간에서 빼 주겠다는 탄력근로제의 취지는 정당하지 않다. 첫째, 초과근로를 하면서 침해받은 여가생활이 다른 날 그만큼 덜 일한다고 해서 회복되지 않는다. 둘째, 초과근로시간만큼 다른 날 덜 일하는 것은 침해 당사자인 노동자들이 원하는 보상 방식도 아니다. 셋째, 노동자들은 이전의 장시간 노동에 따라 다른 날 좀더 여유있게 일할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당한다.
그런데 정부는 노동자의 삶을 근본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3개월로 늘리는 법 개정안을 예고했다. 여기에 재계는 한 술 더 떠, 아직도 단위기간을 6개월 또는 1년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불규칙해지고 초과근로수당만큼의 임금삭감 효과는 더욱 커진다. 이는 애초 장시간노동을 줄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주5일 근무제의 도입취지와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조치다. 도대체 주5일 근무제와 탄력근로제가 무슨 관계란 말인가? 정부는 재계를 달래기 위해 주5일제 도입을 조건으로 탄력근로제의 단위시간을 확대하려는 기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