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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경찰, 노동자 수배전단에 주민번호 공개

주민번호 도용 피해 속출…민주노총, 경찰청장 고발


경찰이 지난해 6월과 올초 노동자들을 수배하면서 검거에 무관한 주민등록번호까지 유출, 최근 이것이 사이버 범죄에 도용되고 있음이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15일 민주노총은 경찰이 수배자들의 개인정보를 고의로 공개 유출해 피해를 줬다며 경찰청장 등을 서울지검에 고발했다.

지난 9월 민주노총 서울본부 한혁 조직부장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인 한미르(www.hanmir.net)에 가입을 시도하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아이디를 개설했음을 알게 됐다. 더군다나 그 아이디는 음란물을 배포하고 불법수집한 주민등록번호를 무차별 배포하는 등 사이버 범죄에 이용되고 있었다. 다른 사이트들도 조사한 결과, 한 씨는 다음, 버디버디, 하나포스, 네이버, 네띠앙, 리니지 등에도 자신의 주민번호를 도용한 아이디가 개설돼있음을 확인했다.

어떻게 모르는 사람들이 한 씨의 주민등록번호를 알게 된 것일까? 한 씨 이름으로 다음 사이트에 'O----' 아이디를 개설했던 양모 씨는 경찰이 배포한 지명수배 전단에서 한 씨의 개인정보를 수집, 이를 도용했다고 지난 3일 MBC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밝혔다.

경찰은 지난 해 6월 한 씨를 비롯해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 이홍우 민주노총 전 사무총장 등 6명을 노동 관련 사안으로 지명수배하면서 수배전단에 사진과 이름 외에도, 주소, 본적에다 주민등록번호까지 기입해 전국 경찰서와 파출소 벽보, 공공 벽보, 전봇대 등 공공장소에 게시했던 것이다.

민주노총 최세진 정보통신부장은 "한 씨 뿐 아니라 당시 수배자였던 다른 사람들의 경우도 본인들이 알
지 못하는 수십개의 아이디가 이미 개설돼 있는 걸 확인했다"라 밝혔다.

경찰은 올해 초에도 발전회사 노동자 24명을 지명수배하면서 수배전단에 주민등록번호까지 기입해 전국
에 수만부 배포했다.

이와 관련, 민주노총은 고발장에서 "이름과 주소, 주민번호만 있으면 새 아이디 개설말고도 신용정보도 개설할 수 있고, 또 개인정보를 보관했다 나중에 이용할 가능성도 있다"며 주민번호 공개로 인한 피해는 확인한 것보다 더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정보통신부장은 "다른 지명수배자와 달리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다 유출하고 지난해에만 그친 게 아니라 올해 초 또 되풀이 된 것은 고의성이 짙다"며 이는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의 일종"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관계자는 "살인, 강도, 강간범 등 중요지명 피의자들을 공개수배할 때 신장, 이름, 체형 정도가 나가지 주민번호는 나가지 않는다. 노동자 쪽은 왜 그렇게 된 건지 잘 모르겠다"고 말해, 노동자 수배자에 대한 주민번호 공개가 이례적인 것임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

더구나 한 씨 등 지난 해 6월에 지명수배된 사람들은 지난해 8월 초 검찰에 자진출두해 수배사유가 해제됐는데도, 경찰은 11월까지 경찰서 벽보 등에, 올해 3월까지 경찰청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수배전단을 계속 게시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고발장에서 "지명수배자라 할지라도 명의 도용에 의한 피해가 충분히 예견되는데도 주민등록번호 등을 공개했다"며 경찰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않을 권리 등 헌법 제10조, 11조, 17조와 주민등록법 제18조의 3의 3항 등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주민등록법 제18조의 3의 3항은 '주민등록업무에 종사하거나 했던 자 또는 그밖의 자로서 직무상 주민등록사항을 알게 된 자는 다른 사람에게 이를 누설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