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성희롱 사건에서 회사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내려졌다.
26일 서울지법 민사합의 18부(김용호 부장판사)는 2000년 롯데호텔 여성 노동자들이 회사간부 등의 상습적인 성희롱에 대해 신격호 대표이사 및 롯데호텔을 상대로 낸 2억2천2백여 만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회사는 원고에게 2천9백만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는 직장 성희롱 사건에서 가해자 개인뿐 아니라 회사에도 배상책임을 지우는 판결로 직장내 성희롱에 경종을 울릴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회사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통해 주의 의무를 이행했다고 주장하나 성희롱 위험이 상존하는 피고회사의 경우 단순한 성희롱 예방교육을 정례적으로 실시한 것만으로 의무를 다했다고 보기 힘들다”며 “회사로서는 고용 계약상 보호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회사의 책임 범위에 대해서도 “사용자의 보호의무 범위는 직장내 근무시간은 물론 회사가 비용을 지원한 공식 행사에까지 미친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민주노총 법률원의 강문대 변호사는 “직장 성희롱 사건에서 회사의 책임을 묻는 것과 간접 피해자의 피해사실 인정이 이번 재판의 주요쟁점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판부는 회식과 야유회 등도 업무와 관련된 일인만큼 그 과정에서 벌어진 성희롱도 회사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고, 신체접촉 등 직접적인 성희롱 피해자 이외에 성희롱 현장에 있었던 다른 여성들도 성희롱 피해자로 인정했다”며 판결의 의의를 밝혔다.
그러나 강 변호사는 “재판부가 이사 직책 이상의 간부가 주관한 회식에서 벌어진 성희롱에 대해서는 회사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지배인이 주관한 회식에서 벌어진 성희롱에 대해서는 회사가 알 수 없었다는 이유로 회사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실제 여성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람이 지배인이고, 오히려 피해도 상시적인데 이들과 관련된 성희롱에 대해 회사책임이 인정되지 않았다는 것이 강 변호사의 지적이다.
또 롯데호텔 노동조합 이남경 고문은 “이번 판결은 여성 노동자 앞에서 포르노사이트를 본 행위에 대해서도 회사가 알 수 없었다는 이유로 회사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라며 “현재 회사는 사내에서 노조사이트 접속을 막고 있을 정도로 직원들의 인터넷 이용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데, 포르노 사이트를 본 것에 대해 회사가 알 수 없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불만을 털어 놨다.
롯데호텔 성희롱대책위원회 박정자 위원장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 노동자가 안정적인 환경에서 노동할 수 있도록 회사는 책임을 져야하고, 노력해야 함을 보여준 판결”이라며 “직장 내 광범위한 성희롱을 근절하고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지난 2년 동안 성의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던 회사에 유감을 느낀다”며 “회사는 성희롱을 인정한 노동청의 조사도 무시하고 1심 재판까지 보고 얘기하자고 했는데, 이제 회사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 우리가 지켜볼 차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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