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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한상희의 인권이야기

법원은 진정 인권탄압의 선봉에 설 것인가-고 배달호씨의 사망사건에 부쳐-


지난 9일 노조간부인 고 배달호씨가 분신'자살'한 사건은 권위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연속에서 질곡된 우리 노동현실의 한 단면을 이루는, 동시에 그것은 시민사회와 동떨어져서 자기들만의 폐쇄회로속에 안주하면서 형식적인 법률논리를 통하여 사법권력을 휘두르는 우리 법조관료들의 반역사성, 무비판성, 무반성성을 너무도 잘 드러낸다. 법원이 신종 인권탄압의 수단이자 통로로 변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간 우리 사회는 권위주의적 통치를 딛고 민주화로 지칭되는 일련의 개선조치들을 통해 국가부문에 관한 한 미흡하나마 인권보장의 틀을 나름으로 구축하여 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민간부문은 과거의 정경유착을 대체하여 자신의 이익을 담보할 수 있는 새로운 장치를 찾아야 했다. 노사갈등이나 권력에 대한 비판적 표현행위 등 경찰권력으로 통제될 수 있었던 인권담론들을 다시 자신의 지배영역으로 재포획하기 위한 또다른 방법을 찾아내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요청에 적극 부응한 것이 가처분.가압류제도를 활용하는 법원의 맹신적 법률실증주의이다.

지난 3년간 사용주들은 노동권과 관련하여 39개 사업장에 대하여 1,264억원에 이르는 가압류를 하였다(오마이뉴스). 또한 일부 기성언론권력은 자신에 비판적인 발언자들에 대해 재산가압류의 방식으로 그들의 입을 막고자 한다.

가처분의 경우는 더욱 기가 막힌다. 하역업주가 도급의 방식으로 기존의 하역노동자들의 작업권을 박탈하였음에도 법원은 이에 항의하는 노조원들에 대하여 작업장출입금지가처분을 내렸다. 평화롭고 안정된 노동의 권리를 주장하는 노조원들이나 비판과 대안제시의 자유를 주장하는 비평가 혹은 기자 개개인들에게 우리의 법원은 가압류·가처분이라는 조치를 통하여 생활과 활동의 근거를 박탈하며 종국에는 그 권리와 자유의 행사를 본원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신종 인권탄압'수단이 법률과 법원의 재판이라는 점이다. 인권보장의 틀이 인권의 법적 제도화라고 한다면, 그리고 최후의 인권수호자가 법원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인권은 민법과 민사소송법의 전횡에 의하여 그리고 법조관료로 둘러싸인 법원의 맹신적 '법률'만능주의에 의하여 철저하게 배신당하고 있는 것이다. 최고의 법가치인 인권이나 헌법상의 기본권의 관념은 그대로 사라져버리고, 민법이나 민소법만이 마치 최고법인 양 기업의 이익을 위한 선봉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여우를 피하니 범을 만나는 격'이라고나 할까? 권위주의적 통치의 고통을 이제 겨우 벗어나려고 하는 참에 그것도 법과 법원에 의하여 새로운 억압이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우리의 법원은 국가권력이 기업의 경제권력에 의하여 대체되는 이 변화의 양상을 굳이 알고자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인권이나 헌법보다는 민법이나 형법을 우선하는 법률관료, 법조관료의 틀에 안주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의 법원에 관한 한 아직도 권위주의는 끝나지 않았다. 아니, 우리의 법원이 법률만능주의와 법률실증주의라는 고착된 틀 속에서 인권을 향한 시대적 요청을 보지 못하는, 그럼에도 자신의 판단에 대한 비판을 열어두지 않는 태도를 지속하는 한 신자유주의에 편승하는 반인권적 작태는 더욱 빈발할지도 모른다.

-필자는 건국대 법대학장으로 재직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