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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조율하며, 우리는 간다

매달 셋째 주쯤이면 후원인 소식지 <사람사랑> 기획회의를 합니다. 후원인 분들이 어떻게 읽고 있을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지만 '잘 읽히게' 하려고 이런저런 고민들을 나누지요. 정해진 꼭지가 있어서 대개는 주제와 담당자를 확인하며 마무리하는데, 가끔은 꼭지들을 바꿔보면 어떨까 하는 논의도 합니다. 책이나 음반, 영화를 추천하는 꼭지를 만들자는 제안이 몇 달 전 있었는데 새로 꼭지를 만들지는 못하고 상임활동가 편지의 컨셉을 바꿔보기로 했지요. 지난달에 이미 흐지부지 됐지만 제안한 활동가의 노고(?)를 기리며 머릿속에 이런저런 음반들을 떠올려봤습니다.

 

제가 나름 싱어송라이터인데요. 흐흐. 2007년이었나, 에이즈감염인 인권 문화제를 준비하면서 노래를 부르게 됐어요. 에이즈인권운동이 자원도 네트워크도 많지 않던 때라 같이 준비하는 활동가들이 팀을 만들었죠. 기타, 베이스, 퍼쿠션에 보컬까지, 나름 밴드를 꾸려서 공연을 했습니다. 재미가 붙어서 아예 활동가 밴드를 만들기로 했지요. 이름하여 '이름하나못짓고'. 가끔 공연을 할 때면 이명박이 하도 나쁜 짓을 많이 해서 이름 지을 시간이 없다고 소개를 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디거스의 노래(The Diggers Song; World Turned Upside Down)를 노랫말로 번안한 '우리는 간다'는 꽤 히트를 쳤지요. 인권오름의 [인권문헌읽기]에서 류은숙 활동가가 소개했을 때는 이게 정말 노래인 줄 몰랐는데 전세계적으로 많은 편곡이 있기도 하더라고요. 한국에서는 우리가 처음 소개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생명평화대행진 때 길거리에서 mp3플레이어로 녹음한 버전이 두고두고 행진곡으로 사용되고 있어요.

 

여튼 이때 이런저런 주제의 노래를 만들기도 하고 부르기도 하면서 즐거웠던 것 같은데, 원래 하려던 얘기는 한영애였습니다. ^^; 밴드를 하면서 '조율'을 종종 불렀거든요. 처음 이 노래를 알게 된 게 언제쯤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요. 아주 우연히 알게 됐던 것 같은데 2005년쯤 음반을 구하려고 할 때는 이미 품절되어 있었고, 지금도 이 음반(한영애 1992)은 품절 상태입니다. 가사를 검색하고 코드를 알아내서 연주하기 시작했는데요, 세 개의 코드로 구성된 매우 단순한 곡이지요. 당시만 해도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노래였는데 한참 후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을 통해 꽤 알려졌어요. 최근에는 박근혜 퇴진 촛불에서 한영애 님이 직접 부르면서 웬만하면 다 아는 노래가 된 것 같네요. 아마도 한 번 들으면 잘 잊히지 않는 노래인 것은, 단순한 구성과 인상적인 후렴구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 번 해주세요~" 세상이 엉망인 듯 느껴질 때, 반복되는 이 후렴구는 간절한 기도 같습니다. 워낙 한영애의 노래 스타일이 그렇기도 하지요. 그녀의 목소리와 몸짓을 통해 인간세계와 하늘이 연결되는 것만 같잖아요. 여사제와 같달까. 제가 한영애를 쫓아갈 순 없지만 노래의 힘은 전해지는 것 같아요. 평택 대추리에서, 대한문 앞 쌍차 분향소에서, 장애인과 성소수자들의 집회에서,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서, 강정 해군기지 공사장 앞에서, 세월호 광장에서... 아픈 사람이 더 짓밟히고, 쫓겨난 사람이 더 내몰리고, 그리운 사람은 더 잊히는 세상에서 조율은 얼마나 간절한가요. 고통이 전해지는 무게만큼 희망의 무게를 느끼기 어려운 때에도 노래를 부르다 보면 어렴풋하게 조율된 세상을 그려볼 수 있지요.

 

그런데 노래를 부르다 보면 그냥 기도이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한 번 들으면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후렴구 덕분에 공연 때마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함께 부르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깨워야 할 하늘님이 우리 안에 있다는 걸 느끼게 되곤 해요. 지난 12월 3일 촛불의 광장에서 한영애의 '조율'을 따라 부르던 사람들의 마음에 찾아든 감동도 그런 것 아닐까요? 내 안의 하늘님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어디쯤에서 다른 이의 하늘님들을 만나게 될까. 함께 기도하다 보면 그것은 구원자를 향한 기도이기를 멈추고 우리 스스로의 다짐이 됩니다. 세상을 조율하겠다는 연대의 노래가 되기도 하지요.

이제 조금은 조율된 세상이 된 것일까요? 촛불 대선의 결과로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문재인 정권에서 지금까지 나왔던 정책 중 제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위험의 외주화'를 멈추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청노동자들이 더욱 위험에 내몰리는 현실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나 작업중지권 현실화 등을 통해 일하다가 다치거나 죽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발표가 몇일 전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사회운동이 요구해왔던 것이긴 하지만 운동 안에서도 주요한 과제로 여겨지지 못했던 것 같은데, 예상보다 앞서 내놓는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4.16세월호 참사가 일깨운 생명과 안전에 대한 권리를 향해 한 발씩 나아가는 건가 싶기도 했습니다.

 

그간 사회운동이 제기하고 싸워왔던 것들이 차츰 제도화되고 있으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조율된 채로 멈추면 안될 텐데 하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제도화된 권리를 이용하는 서비스 대상이 아니라, 인권의 주체가 되어가야 하니까요. 조율을 하는 하늘님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저마다의 삶과 우리의 세상을 조율할 수 있는 역량을 가꾸고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하니까요. 인권운동이 이제 나서야 하는 길은 인권의 조건들을 바꾸는 길이 아닐까 합니다. 개별 권리의 목록으로 환원될 수 없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세우기 위해 필요한 구조적 변화를 일궈야 한다는 고민이지요.

 

노동이 자본에 의해 일방적으로 조직되지 않고 존엄을 이루는 활동이 될 수 있도록, 누군가를 배제하고 혐오하면서 권리의 성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평등의 가치가 사회의 기본 원리가 될 수 있도록, 안보를 이유로 자유를 통제하는 습속을 버리고 자유롭고 평등할 때에야 안전할 수 있다는 감각을 얻도록, 조건들을 만들기. 세상을 더욱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싸움을, 그러나 구체적으로 시작해야 할 듯합니다. 앞으로도 토론과 모색이 이어져야 하겠지만, 저는 그 열쇠가 차별금지법 제정, 국가보안법 폐지, 노조할 권리의 실질화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싸움들을 통해 87년 체제를 넘어서는 2017년 체제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조율은 동사라는 걸 기억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간다!

우리는 간다

우리는 간다 인민의 의지

우리는 도전한다 법과 질서 억압의 굴레

우리는 간다 빼앗긴 사람들

우리의 것 되찾기 위해 나간다

 

 

 

저들의 땅 착취와 살인

누구도 땅을 사고 팔 권리를 갖지 않는다

재산은 죄악 경멸할 뿐

그들의 땅에 두른 벽을 허물라

 

 

 

우린 일어섰다 가난한 우리

일하고 함께 먹는 우리 바로 자유인이다

어떤 무기도 필요치 않아

우리는 당신들에 절하지 않아

 

 

 

우리는 평화 우리는 하나

만물을 공유한다 필요한 건 용기뿐이다

우리는 간다 저들의 세상

뒤엎어진 세상을 바로 세운다 

우리는 평화 모두의 땅

씨앗을 뿌려 황무지를 갈고 일할 뿐이다

나눠진 땅 이것은 원래

모든 사람들의 공동의 창고

 

 

 

그들의 법 우리를 가둬

탐욕의 신은 부자들을 배불릴 뿐이다

굶주리는 자 가난한 우리

우리는 법을 경배하지 않는다

 

 

 

이제 일어서라 군대가 온다

우리를 짓밟고 무너뜨리고 파괴하려고

이제 일어서라 우리는 간다

뒤엎어진 세상을 바로 세우러